목록감상 노트 (66)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돌봄과 살림을 공짜로 제공하던 엄마들의 시대를 지나, 사랑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던 아빠들의 시대를 지나, 권위를 쥐어본 적 없는 딸들의 시대를 지나, 새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랐습니다. 아비 부의 자리에 계집 녀를 적자 흥미로운 질서들이 생겨났습니다. 이 질서를 겪어볼 기회를 소설에게 주고 싶었어요. 늠름한 아가씨와 아름다운 아저씨와 경이로운 아줌마가 서로에게 무엇을 배울지 궁금했습니다. 이슬아 작가는 낮잠 출판사를 설립해 모부를 직원으로 채용했다. 이슬아는 경제권을 가지고 집안 대소사를 결정하는 가녀장이고, 낮잠 출판사의 사장이자 직원인 복희와 웅이의 고용인이다. 소설은 낮잠 출판사와 세 주인공의 집안 내력, 주변인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각 캐릭터가 재밌는 사람들이라 깔깔 웃으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
무엇을? 조성진이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피협 3번 실황을. 한국에서는 그리 보기 어렵다는 조성진을 마드리드에서는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다니. 여기 사람들 너무 부럽고 부럽고 부럽다. 첫 음부터 은쟁반 위에 옥구슬이 굴러가길래 역시 조성진~ 이라고 생각했는데 음악이 점점 고조되면서 소리가 확 바뀌었다. 피아노 때려 부술듯이 휘몰아침. 또 다시 천국에서 즐기는 만찬의 배경음 같았다가 3악장 마지막에 줄달음칠 때는 심장이랑 호흡이 같이 머리 위로 빨려 올라가는 줄 알았다. 그동안 나는 조성진은 기교가 매우 좋고 매끄러운 음을 깎은 듯이 잘 표현하는 연주자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연주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한 곡 내에서 강약 조절을 하면서도 힘과 에어지를 엄청나게 내뿜었다. 정말 피아노 부서지는 줄 알았다니까..
이슬아 작가가 20대 초중반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에 용감하게 뛰어든 연유부터, 글쓰기 교사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엮어낸 책이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지겨울 때 서고에 가서 그때그때 맘에 드는 책을 골라서 야금야금 읽는데, 박경리, 박완서 같은 대작가들 책을 좀 읽다보니 한편으로는 좀 피곤해서(박경리 선생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찾아가서 한번 여쭙고 싶다. 왜그렇게 등장인물을 못 살게 구시냐고ㅎㅎㅎ 하나같이 운명이 참 얄궂어서… 박완서 선생은 사람 참 낯부끄럽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으시고ㅎㅎㅎ 차마 쪽팔려서 꺼내기 힘든 속마음을 왜 자꾸 들추세요;;) 가벼운 에세이를 찾아보게 됐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이슬아 작가.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크게 관심은 없었고 언젠가 한번 기회되..
문화 예술에 왜 꼭 ‘감동’이라는 게 있어야 해? 라는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그냥 공감 좀 되거나, 모르던 세계를 알게 해주거나, 특이한 상상력으로 재미을 주거나 아니면 무의식 속에 일말의 정의감이나 인류애를 심어주거나 그런 정도면 되지 않는건가? 싶었다. 근데 그건 감동이라는 것을 사전적 정의 그대로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이라고 해석해서라는 것을 이제야 이해하겠다. 참 깨닫는 데 오래 걸려요. 위에 표현한 모든 것이 사실은 인간의 손길을 거친 한 예술작품과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의 주파수가 어떤 지점에서 맞아 떨어져서 동일한 파동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이걸 감동이라 한다면 ‘감동’은 문화 예술의 기본값이 되는 게 맞겠다. 그런데 이 감동이라는 말이 정말 크게 느끼어 마음을 움직이는 경우도 ..
(제목은 어디서 본 걸 베꼈음) 마블 영화를 영화관 가서 다 보고. 오래 살 일이다. 양조위가 나온 영화라면 한국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로맨스물이랑 코믹물까지 되는대로 찾아봤던 나날이 있었더랬다. 아무리 영화가 재미 없어도 참 재밌는… 뭐 그런 효과를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멋진 배우다. (아흠.. 멋져요) 감독도 그랬던 걸까. -마블 영화 감독을 맡았는데, 평소에 흠모하던 토니량과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이것은 마블 영화! 낼모레 환갑인 액션배우도 아닌 배우를 주인공 시키자니 좀 그렇고. 그래 그럼 빌런을 시키면 되겠다. 그런데 그 빌런한테 서사를 몰빵하고 등장 빈도도 주인공보다 더 높여보자! 그런데 그 빌런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양조위잖아. 양조위 그 눈빛, 그걸 또 써!먹!고! 싶단 말이지..
오춘기인지 육춘기인지 모를 시절을 보내고 있다. 다 맘에 안 들고 다 때려치우고 싶고 다 부질없어 보이는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 이게 끝이 날지 끝이라는 게 있을지 모르겠다. 왜 사십살이나 먹어서 이러고 있는지 참. 맘이 들썩들썩 하고 불안하고 웬지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고 뭐 그렇다. 불혹이 아니라 다혹의 시절일세. 짧다면 짧은 인생(예전에는 평균 수명이 40대였다고는 하지만..)을 살면서 알게 된건데, 이런 시절에는 그냥 훌륭한 작가들 책이나 읽는 게 제일 낫다. 울렁거리고 어디 한군데 머물지 못하는 방황하는 마음을 좀 달래고 얼러준다. 요즘 내가 어쩌지 못하는 답답하고 억울하고 풀리지 않는 마음 때문에 자다가도 깨는 등 나름 괴로웠는데 김연수 작가가 쓴 ‘시절일기’가 그런 심정을 싸르르 ..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니... 내 주변 사람들은 왜 이 책을 그동안 나한테 추천 안 해줬나. 원망 아닌 원망을 하게 될 정도로 재밌었다. 앞으로 몇 번은 더 읽게 될 것 같다. 주인공 마리오가 오가는 길을 따라 아름다운 시어들이 반짝이는 물결처럼 흐른다. 평범한 것들이 언어를 만나서 빛이 난다. 나는 남미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칠레 어딘가 태평양 연안에 있을 이슬라 네그라라는 곳의 풍광 묘사는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 책이 1985년 첫 출간될 때 제목은 '불타는 인내'라고 한다. 책의 도입부부터 중반까지는 '불타는 인내'라는 제목이 의아할 정도로 즐겁고 유쾌한 사건들이 이어진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서정적인 이름에 꼭 알맞는 분위기다. 소설은 1970년 칠레의 첫 사회주의 계열 대통..
자주 찾아 읽는 칼럼니스트 박권일씨가 기고문을 엮어서 단행본으로 낸 책이다. 침대 옆에 두고 조금씩 조금씩 한달여에 걸쳐서 읽었다. 글이 그렇게 길지는 않은데 순간순간 곱씹어보거나 잘 이해가 안 돼서 다시 읽거나 하는 부분들이 꽤 있어서 다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칼럼집이라 그 때 그 때 주류 담론이나 현상들을 짚어주고 있는데, 어쨌거나 이 분의 칼럼은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다. 내가 이해한 바를 요약하자면, “자기 삶이 구체적으로 변하지 않는 축제에 정신이 팔렸다가 탈진하기를 반복하는 것은 그만 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자. 그러려면 개인들이 해야 할 일은, 기득권들이 은폐해 온 나의 계급성을 인식하고, 기존의 사고 프레임을 전환해 좌파-평등주의적 기획에 동참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워낙 다..
정세랑 작가 '시선으로부터'를 진주문고 갔다가 샀는데 재미도 있고 문장도 쉬워서 금방 읽었다.(진주문고는 큐레이션을 참 잘하더라. 디스플레이를 보면 막 사고 싶고 읽고 싶음) 읽은지 거의 한 달 된 것 같은데 이제서야 간단하게 서평을 남긴다. 인간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고, 좀만 깊이 들여다보면 다들 괜찮은 사람들이다. 또한 인간을 어떤 특정한 가치로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그나마 숨이라도 쉬고 할 말 하고 살 수 있는 건 심시선 같은 파격주의자가 있었던 덕분이다. 나도 편견 때문에 억압받을 누군가를 위해 어떤 때는 불편하고 드센 사람이 되는 걸 감수해야겠다. 이어서 최근 단상. -오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8.15 집회에 갔던 노인들에 대해 탓하고 욕하는 게 '인간적으로' 타당한 일인..
신기한 책이다. 처음에는 너무 짧게 칸칸이 나눠진 옴니버스형 소설이라고 생각했다.(요즘 단편은 잘 안 읽게 되는데, 읽고 나면 뭔가 아쉬워서 그렇다. 좀 더 탐구했으면 하는 인간을 보여주다 만 느낌?) 조금 읽다보니, 요즘 페미니즘이 유행이라 이런 소설이 범람하는구나 싶었다. 작가가 글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최근 출판계 주류가 페미니즘 아닌가. 특히 가끔씩 '여초' 카페라는 데에 접속해서 글이나 댓글들을 읽곤하는 나에게는 그냥 나왔던 여러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정도의 글로 다가왔다. 그래도 길지 않고 술술 잘 읽히니 후딱 읽어나보자 했다. 중반쯤 책 읽기를 했을 때, 이 책은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이후에는 뇌가 상당히 복잡해졌다. 이런 짤막짤막한 시시껄렁해보이는 이야기들이 서로 엮이면서 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