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감상 노트 (66)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성범죄자 모친상에 대통령부터 온갖 정권 유력자들이 화환을 보내고, 전세계 아동 대상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사이트 운영자 범죄인 송환이 불발되고, 3선 서울시장이 성추행 혐의를 받자 운명을 달리했다. 이렇게 심란하고 잠이 잘 오지 않는 때에는 책에나마 맘을 기대본다. 같은 인간으로 대접 받기가 이렇게 힘든거였나. 우리는 선량한 자들로부터 너무 오랫동안 차별 받아왔다. 서평을 쓰려고 맘 먹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김지은입니다'를 다 읽고나서는 서평을 꼭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성폭력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저 멀리 국딩(초딩) 시절까지 가야한다. 하교 길에 집에..
“순물을 장에 붓고 고루 섞어 버무려 다시 항아리에 채우니 허리, 다리, 어깨 안 아픈 데가 없지만 기분은 어찌 이리 평온하고 행복할까.” “해마다 올해까지만 이렇게 하고 나이들어서는 만들어놓은 것들로 즐기기만 하자며 남 보기 부끄러울 정도로 일을 했다. 자리잡은지 10여년, 어느 정도 모양이 잡혀졌다. 돌동산, 풀동산, 나무동산이었던 장소다. 이제 아침이면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고생담을 이야기 나누는 그럴듯한 밭이 됐다.” “그런데 세상에 김장을 도와주러 온 양반들이 항아리에 넣으려는 갈치김치를 통에 담고 먼저 먹으려던 젓갈김치를 항아리에 넣어 묻어버렸다... 김치를 썰어 담으며 갈치가 나오면 얼른 주워 버리곤 했다.” “가끔 우리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이러라고 정해진 것도 아닌데, 안해도 상관없고 ..
“눈물의 넓고 풍부한 의미와 절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다.” -작가 서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 때문에 오히려 살아가는 게 무기력하게 느껴지던 때 인생 선배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지 살고 싶어서 난 사람은 없지 않느냐” 이 말을 듣고 속이 조금은 시원해졌다. 내 인생에 대해 너무 기대하지도, 부채의식을 갖지도 말자고 생각하게 됐다. 인생아 아무리 네가 나를 압박해도 나는 너를 짊어지고 살지 않으마. 연초부터 무슨 책을 볼까 하다 예전에 헌책방에서 사다놓고 안 읽고 있던 ‘인생’을 꺼내들었다. 줄거..
"나도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족이 보고 싶었고, 내 집의 친숙함이 그리웠다. 매일 먹고 자는 일을 걱정하는 것도 지겨웠고, 기차와 버스도, 낯선 사람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도, 끊임없이 당황하고 길을 잃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라는 사람과의 재미없는 동행이 지겨웠다. 요즘 버스나 기차에 갇혀서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대는 내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나 자신을 내팽개치고 도망가고픈 충동을 얼마나 많이 느꼈던가? 동시에, 나는 계속 여행을 하고 싶다는 비이성적인 충동을 강하게 느끼기도 했다. 여행에는 계속 나아가고 싶게 만드는, 멈추고 싶지 않게 하는 타성이 있다." 국내 여행을 가기 전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해당 부분을 읽어보고 가곤 하는데 확실히 책을 읽었을 때와 안 읽었을 때 여행에..
어떤 때는 홀린 듯이 무슨 일을 하게 될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 아니었나 싶다. 오전부터 내리쬐는 햇빛이 너무 따가워서 그랬다. 뭐 햇살이 강해서 살인도 하는 판에... (뜻을 대충 추측해보면 영어로 'The greatest hits'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황작가가 데려간 서울 레코드페어에서 산 중고 LP인데, 68~76년 사이 브라질 히트곡 컴필레이션 앨범 중 하나라고 판매자가 직접 손글씨로 앨범 겉 포장에 라벨지를 붙여 설명을 적어놨다. 이 앨범 뿐만 아니라 모든 앨범에 그렇게 꼼꼼하게 기록을 한 걸 보면 참 친절한 음악 애호가 레코드점 주인인 것 같다. 거기다 이 음반을 집어들자마자 다섯번째 음악이 정말 달콤하고 좋다고까지 덧붙이기까지 하는데 안 살 수는 없는 노..
"인류 문명사는 변방이 다음 시대의 중심이 되어 온 역사이다. 오리엔트 문명은 변방인 지중해의 그리스·로마로 그 중심을 옮겨 간다. 그리고 다시 갈리아 북부의 오지에서 합스부르크 왕조 600년의 문화가 꽃핀다. 그리고 근대사의 중심부는 해변의 네덜란드와 섬나라 영국으로 옮겨 가고, 다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으로 이동한다. 새로운 시대는 언제나 변방으로 변방으로 그 중심을 이동해 온 것이 인류의 문명사였다.동양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중국은 황하 유역을 중심부로 삼아 공간적 이동이 없다고 반론하지만 중국역사 역시 고대의 주(周), 진(秦)에서부터 금(金), 원(元), 청(淸)에 이르기까지 변방이 차례로 중심부를 장악한 역사였다. 그러한 변방의 역동성이 주입되지 않았더라면 중국 문명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
꼭 밤 1~2시까지 술을 진탕 마시다 보면 김 선배는 내 어깨에 팔을 걸고 그랬다. "로얄아 언니네 가서 한 잔 더 하자." 고주망태 둘이 들이닥친 집에서 형부는 부지런하게 맥주캔을 꺼내 왔고 우리는 또 날새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면서 냉장고를 털곤 했다. 그래서 다음날 새벽에 선배 집을 나와 큰 길에서 그 건물을 처음 봤을 때는 내가 술이 취해서 뭔가 세상이 휘어 보이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더랬다. 바로 이 건물. 눈을 껌벅거리면서 보다가 택시를 탔던 기억이... 이후로 그 동네에 갈 때마다 복도라도 한번 올라가보자고 맘 먹고 있었다. 어차피 이제는 주변에 갈 일이 많으니 한 번은 갈 일이 있을 줄 알았다. 기회가 되면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래집 지붕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궁금하고. 겨..
"어느 젊은 여자가 즐거운 기분으로 쾌활하게 전혀 위험하지 않은 댄스파티에 갔었는데, 나흘 후에 그녀는 살인자가 된다. 사실 잘 들여다보면 그것은 신문 보도 때문이었다." -작가는 카타리나블룸에 대한 사건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책을 읽기 얼마 전에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제는 특종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기자라고 해봐야 SNS보다는 한참 늦을 뿐. -불분명한 사실들에 대한 보고가 넘쳐나면서 정말로 뭐가 옳은 건지 옳지 않은 건지 알 수 없게 된 상황. 상대는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언론사와 기자가 더 필요한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에 대한 내 생각은 그걸 추구하는 기자가 누구인지도 불분명하게 물타기가 난무하는 세상이 됐고, 사실 기자들..
화물트럭 운전수가 돼 대륙횡단을 해봐야겠다고 처음 생각한 게 교코를 읽고서다. 아마 대학 때인걸로 기억 나는데 이 소설을 읽고는 뉴욕, 미국, 트럭운전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품었던 것 같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았나보다. 유로트럭이라는 게임까지 출시된 걸 보면. 물론 그거 하던 사람들이 부모님들한테 등짝을 숱하게 맞았다는 걸 보면 그리 뽀대나는 직업이 아닌것만은 분명하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트럭 운전수를 꿈꾼다. 라디오를 벗삼아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길을 달린다. 언제나 목적지는 있으니 불안할 것도 없는 삶. 하지만 길 위에서는 온갖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재미있는 세상. 언젠가는 트럭 운전수가 되리라는 꿈을 다시 한번 꾸게 됐다. 올해 안에 면허를 따야겠다.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서태지, 아니 태지오빠는 로얄이가 유년시절을 함께 뒹굴면서 보낸 존재다.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 "태지오빠, 태지오빠" 노래를 부르고 다녔으니, 20년 넘는 세월동안 태지오빠 목소리를 듣고 태지오빠 얼굴을 보고 서태지와 함께 자란 셈이다. 당시에는 어떨 땐 우악스럽기까지한 언니들이 무섭고 또 지하철 타는 법도 몰랐기 때문에(;;) TV 프로그램을 녹화해서 돌려보고 또 돌려보고 없는 용돈 모아서 잡지 사고 브로마이드 모으고 테이프를 주구장창 들었다. 그래서 노랫말 하나하나, 드럼이든 베이스든 음 하나하나를 모조리 기억했다. 오늘도 박자 하나 안 틀리고 서태지와아이들 시절 곡을 기억했던 걸 보면 참 많이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공연이 열리는 잠실 주경기장에 들어서서 보니 어쩐지 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