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maximo de sucess8s 본문
어떤 때는 홀린 듯이 무슨 일을 하게 될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 아니었나 싶다. 오전부터 내리쬐는 햇빛이 너무 따가워서 그랬다. 뭐 햇살이 강해서 살인도 하는 판에...
(뜻을 대충 추측해보면 영어로 'The greatest hits'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황작가가 데려간 서울 레코드페어에서 산 중고 LP인데, 68~76년 사이 브라질 히트곡 컴필레이션 앨범 중 하나라고 판매자가 직접 손글씨로 앨범 겉 포장에 라벨지를 붙여 설명을 적어놨다. 이 앨범 뿐만 아니라 모든 앨범에 그렇게 꼼꼼하게 기록을 한 걸 보면 참 친절한 음악 애호가 레코드점 주인인 것 같다.
거기다 이 음반을 집어들자마자 다섯번째 음악이 정말 달콤하고 좋다고까지 덧붙이기까지 하는데 안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음악가는 음악으로 감동을 주고 레코드 파는 상인은 음악을 설명하면서 마음을 움직인다.
사실 그 박스에 있던 LP 중에 세르지오 멘데스도 있었는데 현금이 똑 떨어져서 고민고민하다 이 앨범을 골랐다. 얼마나 달달한 음악인지 꼭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
이렇게 또 뭐에 낚인 듯이 결제를 한 곳이 있는데, 직접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려주면서 파는 재즈 상점이다. 어차피 재알못이라 그냥 훌훌 LP들을 넘기면서 표지를 구경하고 있는데 눈 앞으로 슥 헤드폰이 들어왔다. 직접 들어보라는데 뭐... 들어봐야지 어쩌겠어... 좋은 음악이니까 한국에까지 초판본이 들어와 있겠지... 사야지 뭐... 맨하탄 트랜스퍼 '브라질' 초판본을 소장하게 됐다.
비틀즈도 LP로 들으면 더 맛깔 나려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황작가가 직접 앨범을 하나 골라주겠다고 한다. 'Verve's choice' 엘라 피츠제럴드 중고판도 결제 완료!
LP판 3장이 든 봉지를 손목에 덜렁덜렁 끼우고 나서는데 LOOMY라는 작가가 제작했다는 책자랑 묶어 빌에반스 CD 2장 세트를 팔고 있네? 여긴 또 좀 달라요, 헤드셋이 아니고 그냥 스피커에 바로 틀어주면서 호객을 하고 있네. 거기다 무려 300장 한정판!이라니! 어머 이건 사야해! 빌에반스는 언제들어도 좋은, 일 할 때 배경음악으로 틀어놔도 집중력을 방해하지 않는, 그렇지만 맘을 들뜨게 해주는 그런 연주를 하잖아!
맘씨 좋은 음악 애호가 황작가는 맨하탄 트랜스퍼 하나 더 들어보라며 맨하탄 트랜스퍼 'Vocalese' 중고 CD를 하나 선사해줬다.
쇼핑을 하고나면 웬지 어깨가 펴진다. 의기양양하게 행사장을 나서는 길. 따가운 햇빛 때문인지 황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나 울 것 같아." "응 나도, 햇살이 너무 강하다."
황작가가 울고 싶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제오늘 쇼핑 때문에 남은 월급을 거의 탕진했기 때문이다. 황작가는 어제 친구한테 부탁해서 한정판 LP도 사고 오늘도 봉지가 찢어져라 이 앨범 저 앨범을 샀다. 음악 애호가라도 자금 사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로얄이는 지금 울 것 같은 기분이다. 저 브라질 컴필레이션 앨범의 다섯번째 곡을 들을 방법이 없다. 막상 들어보면 "이게 뭐야, 세르지오 멘데스 앨범이나 살걸!"이라고 원망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궁금해서 미치겠다. 누구 안 쓰는 턴테이블 넘길 사람 없을까나.
P.S 서울레코드페어는 매년 6월에 하는 것 같아서 앞으로는 매년 6월을 '음악의 달'로 정하고 음반을 수집하기로 했다. 취미생활 하나를 또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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