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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노트

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로얄곰돌이 2017. 6. 16. 01:11

"인류 문명사는 변방이 다음 시대의 중심이 되어 온 역사이다. 오리엔트 문명은 변방인 지중해의 그리스·로마로 그 중심을 옮겨 간다. 그리고 다시 갈리아 북부의 오지에서 합스부르크 왕조 600년의 문화가 꽃핀다. 그리고 근대사의 중심부는 해변의 네덜란드와 섬나라 영국으로 옮겨 가고, 다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으로 이동한다. 새로운 시대는 언제나 변방으로 변방으로 그 중심을 이동해 온 것이 인류의 문명사였다.

동양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중국은 황하 유역을 중심부로 삼아 공간적 이동이 없다고 반론하지만 중국역사 역시 고대의 주(周), 진(秦)에서부터 금(金), 원(元), 청(淸)에 이르기까지 변방이 차례로 중심부를 장악한 역사였다. 그러한 변방의 역동성이 주입되지 않았더라면 중국 문명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변방과 중심은 결코 공간적 의미가 아니다. 낡은 것에 대한 냉철한 각성과 그것으로부터의 과감한 결별이 변방성의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한 결정적 전제는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부에 대한 환상과 콤플렉스가 청산되지 않는 한 변방은 결코 새로운 창조 공간이 될 수 없다. 중심부보다 더욱 완고한 아류(亞流)로 낙후하게 될 뿐이다."


신영복 선생은 2011년 경향신문에 '변방을 찾아서'라는 기행기를 연재했는데, 그 글을 모아 단행본으로 펴냈다. 자신이 쓴 글씨가 있는 곳을 찾아 그 장소의 유래와 역사성을 고찰하는 내용이다.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그 장소들은 신영복 선생이 차분하게 풀어내는 글을 통해 특별해지고, 그곳을 지나갔던 많은 사연들은 생생하게 살아난다. 이 글에 나온 곳들을 찾아가 가만히 글씨를 보고 있으면 실제로 거기서 살아 숨쉬던 옛 사람들의 환영이 보일 것 같다.

연재는 원래 2부로 이어졌어야 하지만 '8편-봉하마을'로 막을 내렸는데, 그 내용이나 여운이 꼭 머지 않아 도래할 미래를 예견하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든다. 

봉하마을의 박석 앞에서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운명'이란 무엇인가. '운명'이란 납득할 수 없고, 분석이 허용되지 않는 사실을 담는 그릇이다.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을 때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른다. 이곳의 '작은 비석'이 앞으로 어떤 운명을 걸어가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운명의 의미가 더욱 증폭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변방의 작은 묘역이 새 시대의 창조 공간으로 거듭나리라는 것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이다."

봉하마을에서 신영복 선생을 안내했던 사람은 다름아닌 문재인 대통령(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이 책에서 기술하고 있듯 민초들은 한강수처럼 도도하게 흘러 촛불의 강을 이뤘다.  

신영복 선생은 노무현 대통령에을 '끝없이 자신을 추방하는 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신을 끝없이 변방으로 내몰면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 해석대로라면 촛불은 완성이 아닌 흐름이다. 민초는 흐르면서 강줄기를 곧게도, 굽게도 만든다. 

이렇게 생각하면 요즘 자꾸 생기던 조급증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추방시켜가면서까지 만들고 싶었던 세상, 좋은 세상은 결코 천지가 개벽하듯 오지 않는다고. 수많은 또다른 추방자들이 끝없이 변방에서부터 뚜벅 뚜벅 걸어야 한다는 걸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