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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노트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

로얄곰돌이 2015. 3. 1. 22:33

"어느 젊은 여자가 즐거운 기분으로 쾌활하게 전혀 위험하지 않은 댄스파티에 갔었는데, 나흘 후에 그녀는 살인자가 된다. 사실 잘 들여다보면 그것은 신문 보도 때문이었다."
-작가는 카타리나블룸에 대한 사건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책을 읽기 얼마 전에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제는 특종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기자라고 해봐야 SNS보다는 한참 늦을 뿐.

-불분명한 사실들에 대한 보고가 넘쳐나면서 정말로 뭐가 옳은 건지 옳지 않은 건지 알 수 없게 된 상황.

상대는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언론사와 기자가 더 필요한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에 대한 내 생각은 그걸 추구하는 기자가 누구인지도 불분명하게 물타기가 난무하는 세상이 됐고, 사실 기자들 자신도 진실을 추구하고 있는 건지 뭔지 모르고 그냥 하던 대로 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요즘처럼 정부든 기업이든 비밀 유지를 위해 거짓 정보까지 흘리는 상황이라면 진실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강하더라도 본의 아니게 오류를 범할 가능성도 크다.

하인리히 뵐은 확실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책 해설을 보면 패전 이후 혼란한 독일 사회는 양극단으로 갈렸고, 당시 극우를 대표하던 빌트지는 어떤 사건에 대해 좌파 극단주의자들의 행위로 몰아갔고, 그에 대해 비판하는 뵐에 대해 우파를 비롯해 '평화주의자'들이나 '원칙주의자'들의 비판이 꽤 거셌던 모양이다. 그는 일련의 비판 또는 비난에 대한 일종의 항변으로 '소설(픽션)'이 아니라 '이야기(경험)'를 썼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뵐이 이 글을 쓸 때보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은 더 혼란스럽다. 온갖 왜곡보도와 음모론에 둘러싸여 이제는 뭐가뭔지, 내가 직접 보고들은 것도 믿기 힘든 지경이다. 그 속에서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켜낸다는 건 쉽지 않다. 아니 진정한 저널리즘이 뭔지도 정확하게 알기 힘들다.

그래서 자꾸 회의감이 들고 이 바닥을 떠나고 싶나보다. 오히려 '기자들은 하이에나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이 잡탕을 관조하던 때가 오히려 저널리즘이 뭔지 명확하게 알았던 것 같다.

p.s
뵐은 수시로 이야기에 개입해서 정확하면서 가치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단어나 표현을 고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안타깝게도 번역이 고르지 못하다. 해설이나 주석을 보면 역자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책을 깊이 연구하고 번역을 한 것 같은데-그래서 최대한 독어를 그대로 번역하려고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한국 독자로서 이해하기 힘든 난해한 문장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어떤 번역이 잘된 번역이라고 내 주제에 결정 지어 주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난 최대한 의미를 거스르지 않는 한에서 부드럽게 번역된 걸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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