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감상 노트 (66)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나는 우연히 삶을 방문했다... 죽으면 나는 개의 형제로 돌아갈 것이다 영혼도 양심도 없이 짖기를 멈추고 딱딱하게 굳은 네발짐승의 곁으로 그러나 나는 지금 여기 인간 형제들과 함께 있다 기분 좋은 일은 수천 수만 개의 따뜻한 맨발들로 이루어진 삶이라는 두꺼운 책을 읽을 때에 나의 눈동자에 쿵쿵쿵 혈색 선명한 발자국들이 찍힌다는 사실 나는 왔다 태어나기 전부터 들려온 기침 소리와 기타 소리를 따라 환한 오후에 심장을 별처럼 달고 다닌다는 인간에게로,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질문을 던져보자 두 개의 심장을 최단 거리로 잇는 것은? 직선? 아니다! 인간과 인간은 도리 없이 도리 없이 끌어안는다 사랑의 수학은 아르키메데스의 점을 우주에서 배꼽으로 옮겨온다 한 가슴에 두 개의 심장을 잉태한다 두 개의 별로 광활한 별..
작년 하와이에 갔을 때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풍광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여유가 넘쳤다. 한가로운 와중에 휴양지는 북적여서 마음이 괜히 설레였고 음식들도 맛있어서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취한 기분이었다. 차를 달리면 쌍무지개가 뜨고 해는 쨍쨍하고 아침 저녁은 선선했다. 하와이 공항이 있는 오아후 섬은 어디서 출발하나 한 시간 반 이내로 닿을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고, 짧은 일정인데도 섬을 한바퀴 다 돌았다. 그게 참 좋았다. 그런데, 그게 참 좋았는데 그 섬에 머무른지 한 일주일이 지나면서는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세계 어딜 가든 5~6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곳, 하늘길이 막히면 도저히 나갈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종의 감옥 아닌가. 한 시간만 차..
솔로몬 노섭(노예명 플랫)은 "나는 자유인"이라고 주장하다가 결국 노예로 끌려가 12년을 고생하게 되는데, 그가 그 끔찍한 노예제를 벗어나게 된 유일한 수단이 '자유인' 증명서라는 게 아이러니다. 플랫이 다시 솔로몬 노섭이 되던 날, 동료 노예이자 주인의 성적 노리개이자 집착의 대상, 그리고 안주인의 질시의 대상인 펫시가 플랫을 꼭 안고 가장 먼 발치까지 나와 그를 배웅한다. 그 농장에서 가장 가여운 인물이다. 이제는 솔로몬이 된 그가 자신들을 해방시켜주러 다시 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을까. 노섭은 원래 가난한 흑인으로 굶주리며 사는 것보다는 먹여주고 재워주는 주인 밑에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12년간 노예 생활 이후에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는데, 자신을 납치했던 납치범..
"분명히 여행 가고 싶을 거다"라는 말을 듣고 봤는데, 아.... 히말라야에 가고 싶다. 실제로 해외 유명 잡지와 신문사, 출판사들이 종이 신문 절판을 선언하고 온라인으로 돌아서기도 했고 그게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수많은 종이 계통 관계자들은 자기 바로 코 앞에 칼날이 들어와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 와중에 나만 살아남기 위해 참 다양한 모습으로 삶을 꾸려가는 걸 숱하게 봐 왔다. 하지만 마지막 폐간호가 나올 때까지 최고의 작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달라.라고 영화는 외치는 듯하다. 미국 영화를 볼 때면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직원들 쭉 불러 세워놓고 경영진들 또는 구조조정 담당자들이 해고를 통보하는 것이다. 미국식 자본주의, '고용유연성'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를 가장 사실..
로얄이의 머리 속은 보통은 해도그만 안 해도 그만인 잡생각들로 가득차 있는데, 요즘에는 특히 그동안 해왔던 일들에 회의를 느낀다거나 사람에 대해 분통해 한다거나 '허전한데 이 외로움을 채울길이 없네' 등등의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내용들이 더더욱 그 얕은 생각의 우물을 차지하고 앉은 터였다. 이유는 올 한해 로얄이가 점점 예의 그 순수함보다는 이른바 사회의 때라고 하는 걸 묻히는데 열중했기 때문인데, (로얄이는 올해 갑을관계로 통칭되는 사회 구조를 이용해서 돈이 주는 아늑함을 한껏 만끽했다.) 아무리 내가 자청해서 현실의 시궁창에 굴러들어갔다고 한들 양심에 한줌 거리낌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런면에서 나쓰메소세키는 아주 훌륭한 변명거리를 줬다고 할까. 누구나 보통은 다 좋은 사람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완전..
상처 받을까봐 일부러 사람들이랑 거리를 두고 많은 일들을 무심하게, 쿨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 했던 적이 있었다. 눈에 띄지도 말고 색깔을 드러내지도 말고 무색무취하게. 나 때문에 아픈 사람도 없어야 하고 나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가졌던 것 같다. 30년 남짓밖에 안 되지만 이정도 살아보니 소외되는 아픔을 한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없고 그런 경험에 대해 특별히 주눅들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됐다. 그런 생각을 하면 묘하게도 안심이 된다고 할까. 또 사람 사이에서 배제되는 데 대한 두려움을 대충은 떨칠 수 있을 정도로 혼자 뭐든 하는 일에 익숙해지는데도 성공했다. 그래도 이 소설을 읽는 중간중간 가슴이 저릿저릿 아플 때가 꽤 있었는데, 과거 이별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나 외로웠던 기억이 날 ..
그저 월급 잘 받고 사는 나도 지치는데 이 분은 잘린 지 오래도 됐는데 여전히 참 밝다. 방송 기자답게 글을 감각적으로 쓴다. 유려한 문장은 없지만 바로바로 머리에 영상이 그려진다. YTN 기자들이 왜 "낙하산 사장 반대"를 외치면서 파업을 했는지, 어떻게 해직을 당했는지 파노라마 사진처럼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사이사이 결단의 순간에서 흔들리는 인간군상들도 엿볼 수 있고. 웃긴건 어딜가나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 양쪽을 놓고 갈등하는 사람, 권력의 품에서 안주하는 사람, 프락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떤 사람이 평소 어떤 말을 했느냐가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무슨 선택을 했느냐가 그가 누구인지 결정한다는 것도. 굴하지 않고 싸우고 있는 이 분도 대단하고, 작게나마 노조비로 생활비를 지원해주고 있는 ..
보통 한창 관객이 몰리는 영화는 안 보는 로얄이지만. 영화 이름이 내고향 베를린인데 안 보고 배길수가.... 주변 사람들이랑 비슷하게 나도 본 시리즈가 생각났다. 하정우는 맷데이먼 만큼 멋있다. 전지현은 프란카포텐테보다 예쁘다.(근데 영화랑 안 어울리게 지나치게 예뻐) 대본과 연출을 모두 맡은 류승완 감독이 대단하다 생각했던 건 남과북 어느 곳도 우리편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 체제나 이념이 아무리 중요한 가치라도 결국 그 속에 사는 개개인에게는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만큼 중요한 게 없다. 뭐 자신을 사랑하는 한 방법이 나라를 지키는 것일 수도 있고, 또는 복수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오랜만에 베를린 풍광을 보니 참 좋았다. 전철도 베를린돔도 TV타워도 다 그대로더라.
모든 기억은 한 세대도 지나기 전에 희석되거나 사라진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어머니는 빨리 여의었지만 1930년대에 대구사범을 졸업할 정도였으니 부자집 장손으로 모자람 없이 자랐을 게다. 외증조할아버지를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 부를 유지하려면 친일까지는 아니어도 그때그때 바뀌는 권력에 적당히 아부하면서 치부해온 집안이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외할아버지는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가 은행원 생활을 했다. 그러다 외증조할아버지 부음 소식을 듣고 고향에 내려와 보니 친척들이 재산을 다 청산해서 나눠 가져갔고, 동생들을 키우기 위해 그대로 눌러 앉아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외할머니와 결혼한 후에는 장손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대를 잇는다는 일념으로 줄줄이 딸만 낳는데 대한..
유튜브에서 우연히 발견. 1990년대 초반은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살았던 것 같다. 나도, 우리 가족도, 젊은이들도, 장년층도, 노인들도. 성장은 지속 됐고 그래서 희망은 가득한데 심지어 돈도 충분하니 즐겁지 않을쏘냐. 파일럿은 그런 분위기에서 나온 드라마로, 당시 초딩 고학년이었던 나는 그 때부터 비행기에 대한 환상을 품게됐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 닿을 수 있는 곳에 대한 동경도. 어른이 되면 '파일럿' 속 주인공들처럼 멋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비행기도 수십번 타보고 외국도 왔다갔다 해 본 지금도 '비행기'라는 단어만 생각하면 이 영상이 머릿 속을 채우면서 가슴을 뛰게 하니 참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