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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노트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로얄곰돌이 2020. 12. 6. 21:37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니... 

내 주변 사람들은 왜 이 책을 그동안 나한테 추천 안 해줬나. 원망 아닌 원망을 하게 될 정도로 재밌었다. 앞으로 몇 번은 더 읽게 될 것 같다. 

주인공 마리오가 오가는 길을 따라 아름다운 시어들이 반짝이는 물결처럼 흐른다. 평범한 것들이 언어를 만나서 빛이 난다. 나는 남미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칠레 어딘가 태평양 연안에 있을 이슬라 네그라라는 곳의 풍광 묘사는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 책이 1985년 첫 출간될 때 제목은 '불타는 인내'라고 한다. 책의 도입부부터 중반까지는 '불타는 인내'라는 제목이 의아할 정도로 즐겁고 유쾌한 사건들이 이어진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서정적인 이름에 꼭 알맞는 분위기다.  

소설은 1970년 칠레의 첫 사회주의 계열 대통령 아옌데가 선거에서 승리하고, 3년만에 미국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 쿠데타로 실각한 아픈 시대를 그렸다. 실제 칠레의 민중 시인이자 사회주의 정치가인 파블로 네루다가 말년을 보냈던  조그만 어촌 마을 이슬라 네그라도 그 참화에서 빗겨나지 못했다. 

쿠데타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생사도 모르게 된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즐거움을 누렸으며 행복을 꿈꿨는지를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칠레 인민들이 이 책을 읽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고 연대감을 느꼈기를...      

책이 너무 좋아서 영화 '일 포스티노'를 찾아봤는데, 배경이 이탈리아고 주인공들의 나이가 책에 묘사된 것보다는 조금 많아 보였다. 물론 마리오와 네루다가 주고 받는 꽁트같은 말들은 여전히 재미있다. 칠레가 아닌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내용이 좀 달라져서 아쉽다. 혹시라도 이슬라 네그라의 바다를 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언젠가 직접 가서 보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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