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붕대감기, 윤이형 본문
신기한 책이다. 처음에는 너무 짧게 칸칸이 나눠진 옴니버스형 소설이라고 생각했다.(요즘 단편은 잘 안 읽게 되는데, 읽고 나면 뭔가 아쉬워서 그렇다. 좀 더 탐구했으면 하는 인간을 보여주다 만 느낌?) 조금 읽다보니, 요즘 페미니즘이 유행이라 이런 소설이 범람하는구나 싶었다. 작가가 글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최근 출판계 주류가 페미니즘 아닌가. 특히 가끔씩 '여초' 카페라는 데에 접속해서 글이나 댓글들을 읽곤하는 나에게는 그냥 나왔던 여러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정도의 글로 다가왔다. 그래도 길지 않고 술술 잘 읽히니 후딱 읽어나보자 했다.
중반쯤 책 읽기를 했을 때, 이 책은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이후에는 뇌가 상당히 복잡해졌다. 이런 짤막짤막한 시시껄렁해보이는 이야기들이 서로 엮이면서 페미니즘을 두고 벌어지는 갖가지 사회적인 담론과 양상들이 모두 한 그릇에 담겼다. 그리고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진짜 페미니즘'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각자의 개성대로 각자의 생각대로, 개별적인 상황에 따라 충분히 다른 정의가 있을 수 있다고. 중요한 건 어떤 처지에 있든 여러 차별 상황에서 자라오고 또 차별 상황에 놓여 있는 현실의 여성들간 연대라고.
이 소설은 의도적으로 성차별주의 성향의 남성들이 하는 비판을 완전히 삭제하고 있는데, 그 자체로 페미니즘 담론에 대한 적대적인 반응이 그리 중요한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주류의 입에서 나오기 때문에 여러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그 주장은 사실은 무시하고 배제해도 괜찮다. 우리는 우리끼리도 논의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이 있고, 이런 논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여성과 소수자 연대가 공고해지면 자연스럽게 묻힐 주장들이기 때문이다.
비혼과 기혼, 엄마와 출산하지 않은 여성, 교조적인 정의와 현실과 타협한 정의, 코르셋과 탈 코르셋 등 담론장에서는 무수한 반목과 경쟁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마주치는 여성들끼리는 묘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처럼 여러 주의나 주장들을 잘 기억하고 내 삶에 맞는 방식으로 체화하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