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현재, 담담합니다 본문
“순물을 장에 붓고 고루 섞어 버무려 다시 항아리에 채우니 허리, 다리, 어깨 안 아픈 데가 없지만 기분은 어찌 이리 평온하고 행복할까.”
“해마다 올해까지만 이렇게 하고 나이들어서는 만들어놓은 것들로 즐기기만 하자며 남 보기 부끄러울 정도로 일을 했다. 자리잡은지 10여년, 어느 정도 모양이 잡혀졌다. 돌동산, 풀동산, 나무동산이었던 장소다. 이제 아침이면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고생담을 이야기 나누는 그럴듯한 밭이 됐다.”
“그런데 세상에 김장을 도와주러 온 양반들이 항아리에 넣으려는 갈치김치를 통에 담고 먼저 먹으려던 젓갈김치를 항아리에 넣어 묻어버렸다... 김치를 썰어 담으며 갈치가 나오면 얼른 주워 버리곤 했다.”
“가끔 우리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이러라고 정해진 것도 아닌데, 안해도 상관없고 말하자면 우리가 이러자고 이런 상황을 만들어놓은 셈이다.”
책을 읽는데 청국장 구수한 냄새, 코를 톡 쏘면서도 상큼한 김치냄새, 간장 양념에 달달 볶고 졸인 곤약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농촌생활의 즐거움과 고단함을 정말 ‘담담’하게 써내려간 책이다.
운이 정말 좋아서 작가님과 그 따님을 알고 지낸 덕에 보통 사람들은 구하기 힘든 책을 선물 받았다. 독립출판을 한 탓에 초판은 한 500부 정도밖에 안 찍었고 그나마 파는 곳이 소형 오프라인 서점 몇 곳에 한정돼 있다. 이 책 초판을 가지게 된 게 뿌듯하고 참 좋다. 두고두고 따라해볼만한 요리 레시피가 꽉 채워져 있고, 요리들에 곁들인 일상 수필도 정말 재밌다.
요리는 오감으로 하는 게 맞구나! 싶을만큼 그 소리, 향기, 느낌을 정말 찰떡같이 표현했다. 황작가가 책을 주면서 “계량이 안 나와 있어서 따라하기 힘들수도 있으니까 양을 모르겠으면 연락해”라고 했는데, 몇 그램, 몇 분인지 적혀있지 않아도 어느정도인지 대충 가늠할 수 있겠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으로..
-충분히 헹구어준 뒤 냄비에 널고 우루루 끓여내고 30여분 푹 끓인다.
-국물이 어느정도 끓으면 불을 줄이고 진득하게 되도록 졸여준다.
-모든 채소를 넣고 살살 버무린다.(그냥 섞어 버무리는 것도 있고 조물조물 무치는 것도 있고 아무튼 그 느낌 딱 알게끔 설명이 돼 있음)
-손으로 만져봐서 물렁해지면 꺼내 헹궈서 꼭 짜놓는다.
정말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는 책이다. 얼른 2쇄 찍어서 전국 서점에 깔렸으면...
p.s 책 읽다가 황작가한테 이거 먹고 싶고 저거 먹고 싶다 카톡 보냈더니 담담정 가서 밥 먹자고 한다. 벌써 가져다 먹은 김치에 각종 효소가 얼만데. 그래도 염치불구하고 가서 좀 얻어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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