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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겨우 이틀 머무르고 떠나는거라 암스테르담은 대충 차로 둘러봤다.ㅠㅠ 유명한 커피숍(네덜란드에서는 Coffee shop이 마약을 파는 곳이다)에도 못 가보고 홍등가에 갈 시간도 없었다. 네덜란드에서 함께 다녔던 장 모 통신원님이 "아니 아가씨가 그런 델 왜 가느냐"고 막아 선 것도 있고... 제가 좀 퇴폐적이라서요.ㅋㅋ(이 이야기를 거듭거듭 블로그에 쓰는 이유는, 맞다. 완전 아쉬워서다.) 아주 잠깐 짬을 내 들른 꽃 시장. 문 닫기 직전에 갔는데 다 열려있어서 다행. 이게 바로 아파트 한채값씩 나갔다던 튤립 구근인거지요?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참 희한하다. 이걸 사려고 그렇게나 많은 돈을 냈다니... 그래서 난 그냥 벌면 버는대로 먹고 입고 건강하게 사는 데 돈을 쓰자고 생각한다.(어쩜 지금 약간은 여유..
조카가 납시었다~!!!! 꽹과리 북 장구 얼쑤 좋다~!! 닐리리야~~~ 요리봐도 조리봐도 이뿌다. 히히히 사과야 건강하게 자라다오, 장난감은 고모가 사줄게! 조카를 보러 가야 하는 이 중차대한 순간에 퇴근 못하고 일해야 한다니ㅠㅠ
풍차다 풍차!!!! 델프트로 가는 고속도로에는 풍차랑 풍력발전기가 띄엄띄엄, 소, 말, 양떼가 드문드문 보인다. 요즘 풍차 운영비 때문에 난리라고. 풍차마을로 유명한 잔스타트에서는 1유로에 풍차를 팔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쌓아놓은 부채가 9000유로씩 하는데다 계속 운영비가 들어가야 하니 득실을 잘 따져봐서 사야 하겠지?(그래서 아무도 안 산다고). 아름다운 것들이 경제 논리 때문에 골칫덩이가 되는 경우를 볼 때마다 안타깝다. 어떤 이데올로기도 굴복시키지 못한게 바로 먹고사니즘 아니던가. 델프트 공대는 네덜란드에서 알아 주는 3대 공대 중 하나라고. 델프트, 아인트호벤, 그리고 또 하나(뭐였더라) 이 세 개 공대가 이끈다고 한다. 참고로 네덜란드는 면적은 한반도의 3분의 1, 인구도 1700만..
오래 쉬었다. 블로그. 인터넷이 버벅거리는(무려 ADSL이 깔려 있다고 자랑하던 더치들!) 유럽에 다녀왔기 때문. 거기서도 블로그 정도는 업데이트 할 수 있었지만 매일 하루 너댓병씩 맥주를 드링킹하느라 블로그에 들어와 볼 시간이 없었다. 아무튼, 역시 혼자 떠난 유럽에서 혼자 떠돌다 온 이야기를 혼자 쓰는 블로그에 올려야 할 시간이 왔다. 이렇게 나를 실은 비행기는... 백인 남자와 비포선라이즈를 꿈꾸는 노처녀의 엄청난 기를 싣고.... 끙차 끙차 밤을 밀어내면서 간다. .....도착했다. 스키폴 공항.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20분 정도(어쩜 덜 걸릴 수도 러시아워에는 조금 더 걸릴 수도) 떨어진 공항이다. 월드트레이드센터와 연결되고 암스테르담 주요 도시는 물론 유럽 내 주요 도시와 연결되는 철도가 지나가..
휴일 아침 일어났을 때 몸이 뻐근하면 산에 간다. 요 며칠, 아니 몇 주, 아니아니 몇 달, 그러고 보니 10년째 남들보다 최소한 두배씩은 달리다 보니 휴일 아침에 가뿐한 적은 별로 없지만... 등산로 입구, 여름이 되니까 햇빛을 막아주는 나무 굴이 생겼다. 싱그러운 아침. 룰루~ 그. 러. 나. 읭? 오늘은 나무 그늘이 좋아서 계곡 따라 바로 오르지 않고 삼막사 가는 길 따라 가다가 조금 돌아서 계곡으로 갔는데 언덕을 넘기 전 웬 공사판 소리가.... 그 주인공 납셨다. 계곡이 전부 파헤쳐졌다. 관계자로 보이는 분한테 물어봤더니 하천정비 공사하고 있다고. 여름에 수해날까봐 걱정나서 하는건가보다. 근데 나무 자르고 계곡 파헤치면 관악구에 비가 좀 덜 내리려나? 작년 수해는 계곡이 얕아서가 아니라 관악구 ..
이반클리마, 알로이스 이라세크, 구스타프 마이링크, 에곤 에르빈 키쉬, 미할 아이바스, 프란츠 카프카, 야로슬라프 하셰크, 얀 네루다, 이르지 카라세크 제 르보빅, 카렐 차페크, 이르지 바일, 요세프 슈크보레츠키, 야힘 토폴, 다니엘라 호드로바... 체코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프라하를 배경으로 쓴 소설들을 묶은 책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에 차례로 점령당하고 땅을 되찾았다가 공산 혁명의 붉은 깃발 아래 놓였다가 또다시 혁명.. 작가들이 묘사하는 프라하를 읽다보면 유럽의 심장으로 불리는 프라하가 겪은 영욕의 세월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한 인종이 스쳐지나간 프라하 거리는 첨탑들 덕분에 아름답지만 골목은 우중충하고 한편으로는 몽롱한 느낌일것이다. 또 길을 걷다가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해도 '..
아마 요즘 먹은 팥빙수 중에, 아니 내가 아는 팥빙수 중에 최고가인 것 같다. 1만3000원짜리 아티제 팥빙수다. 청계천변에 있는 광화문점에서 먹었다. 문제는 함께 갔던 친구가 팥빙수를 들고 오다가 그릇이 흔들리면서 팥빙수 윗부분을 쏟아버린 것. 다시 가져가서 미안하다며 정리 좀 해달라고 했다가 직원들 똥 씹은 표정 때문에 기분이 정말 상했다. 실제로 친구가 굉장히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미안한데 쏟아진 걸 다시 담아만 달라"고 정중하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잘못은 우리가 했는데 상대방이 너무 안하무인이니 오히려 사과를 받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호텔 같은 서비스를 바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비싼 값을 내고 먹는 건데 좀 심했다. 비슷한 수준의 ..
음. 좋은 사람들과 만났다가 기분 좋게 들어왔는데 또 이런 불안감에 젖어들게 될 줄이야. 김연아선수가 교생실습에 대해 비난한 교수를 고소했다는 소식. 내가 피겨에 입문한 게 플루셴코 섹시밤을 보고난 직후이니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였던 것 같다. 유망주로 떠오르는, 아직 고등학생이던 김연아 선수를 열렬하게 응원해 왔던 것도 그 즈음부터. 말하자면 그랑프리, 사대륙, 세계선수권 등을 밤을 설쳐가며 보면서 그가 겪어 온 고생을 함께 겪어왔다고 해도 무방할 듯. 뭐 본인 힘든 심정을 어찌 다 알겠냐만은 나 역시 팬으로서 그가 힘들 때마다 마음이 한두번 무너진 게 아니었다. 그렇게도 꿈꾸던 올림픽 금메달을 완벽한 연기로 거머쥐던 그 때 나 역시 눈물콧물 다 흘리면서 기뻐했던 건 지난 시절 아픔들이 주마등처럼 ..
작년 여름 휴가 가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썼던 메모를 발견했다. 히말라야. 2009년 초는 추웠다. 나는 XX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다. 마침 내가 인턴으로 입사한지 얼마 안 돼 사무실을 편집국이 있던 14층에서 2층으로 옮겨왔는데 원래 로비로 쓰던 곳을 개조한 곳이라 난방이 제대로 안 됐다. XXX님이 같이 주문해 준 난로를 선물 받아서 겨우 겨울을 나고 있었다. 난 추위에 약하다. 원래부터 몸이 찼고 언젠가부터는 겨울만 되면 병을 달고 산다. 겨울에 들어가는 병원비만 다 모았어도 원룸 보증금 정도는 충당하고 남았을거다. 그 때는 또 오른쪽 발목이 심하게 아팠다. 지하철을 타려고 계단에서 뛰다가 하이힐을 신고 그대로 몸을 굴려버렸다. 발목이 꺾였고 회복하는데 거의 1년이 걸렸다. 한참 절뚝거리며 걸어야 ..
(푸른 곰팡이,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페이스북으로 프라하에 있는 사람에게 실시간 메시지를 보내면서 생각했다. 정말 좋은 세상이라고, 그런데 한편으로 이메일을 보내 놓고 기다리다 받은 답장만큼 즐겁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곱게곱게 쓴 편지를 보내고 편지가 걷는 길을 상상하며 답장을 기다리던 때가 언제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