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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벽 보고 말하는 로얄

히말라야

로얄곰돌이 2012. 6. 3. 23:44

작년 여름 휴가 가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썼던 메모를 발견했다.

히말라야.
2009년 초는 추웠다. 나는 XX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다. 마침 내가 인턴으로 입사한지 얼마 안 돼 사무실을 편집국이 있던 14층에서 2층으로 옮겨왔는데 원래 로비로 쓰던 곳을 개조한 곳이라 난방이 제대로 안 됐다. XXX님이 같이 주문해 준 난로를 선물 받아서 겨우 겨울을 나고 있었다.

난 추위에 약하다. 원래부터 몸이 찼고 언젠가부터는 겨울만 되면 병을 달고 산다. 겨울에 들어가는 병원비만 다 모았어도 원룸 보증금 정도는 충당하고 남았을거다. 그 때는 또 오른쪽 발목이 심하게 아팠다. 지하철을 타려고 계단에서 뛰다가 하이힐을 신고 그대로 몸을 굴려버렸다. 발목이 꺾였고 회복하는데 거의 1년이 걸렸다. 한참 절뚝거리며 걸어야 했다. 대충 회복되기 시작한게 작년 초 정도니까 2009년이라면 걷는데는 도무지 자신이 없을 수밖에.

하필이면 그 상황에서 박범신 작가가 쓴 글을 하나 보게 됐다. 무슨 월간지였는데 청년 작가로 불리기 직전, 소설가를 꿈꾸며 몇날며칠이고 창작에만 열을 올리던 기억을 풀어놓은 글이었다. 문체가 마음에 들어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그가 2006년 세계일보에 기고 했던 '히말라야에서 온 편지'를 보게 됐다.

박범신이 표현한 히말라야는 당시 삶의 모든게 스트레스였던 내게는 다른 세상, 이 곳에서 느끼는 잡념과 괴로움을 모두 내려 놓을 수 있는 신천지였다. 여기에만 가면 모든게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됐다.

고시공부를 하다가 세번째 낙방, 취업이어려워서 인턴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 나가는데다 다리는 절룩이고 도저히 언제 나을지 가망이 없었다. 감기는 잦았고 부모님과 대면 할 때마다 싸웠다. 취직을 하거나 부모를 잘 만나 평탄하게 사는 또래들을 보면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2년이 흘렀다. 난 지금 히말라야로 가는 비행기에 있다. 20여일 비가 왔다. 오늘 아침에도 여전히 비는 왔다. 경유하기 위해 광저우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창을 내다보니 청명한 하늘에는 햇볕이 하얗게 쪼이고 있다. 내 발 아래 구름은 굽이굽이 산등성 모양으로 흐른다.

히마라야에 가더라도 2년 전에 고대하던 기분으로 돌아오지는 못하리라는걸 안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종종거리면서 특집 기사를 마감하고 선배들에게 부탁 메일을 쓰고 오지 않았던가. 내 세계에 비해 온순한 그 곳에서 잘 쉬고 돌아오자. 그리고 일주일 후에 또다시 마음 졸이고 스트레스 받고 낙종 할까봐 전전긍긍하고 먼저 쓰고 싶어서 안달하자.

아무래도 이번 여행에서는 나는 어쩔 수 없는 나라는 걸 깨닫게 될 것 같다.

광저우에 도착하기까지 약 30분 남았다.

 

여행기는 예전에 쓰던 블로그 (http://onzt.egloos.com/2832362)에 적어뒀다. 티스토리로 옮겨오고 싶은데 사진이 너무 많아서 못 가져 오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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