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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여기 와서 확실히 느끼는 건, 나는 아침형 체질이라는 것이다. 술 좋아하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게 좀 안 맞는 것 같긴 한데 아무 제약 없이 잘 시간, 기상 시간을 골라보니 술 후딱 마시고 자서 새벽같이 일어나 활동하는 게 훨씬 편하다. 새벽 공기와 분위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어제 점심부터 맥주, 와인으로 신나게 달리고 10시 전에 잤다. 침대에 눕자마자 잠든 것 같은데 목 말라서 눈 떠보니 12시. 물 마시고 화장실 다녀와서 좀 뒤척대다가 다시 잠들었는데 다시 눈 뜨니까 5시 40분… 딱 느끼기에도 꿀잠을 푹 잔 느낌이다. 중간에 화장실 가느라 잠귀 옅은 사람한텐 좀 미안하긴 하지만 어쩌겠냐.(이렇게 적어놓고 같은 날 밤 코골이를 만나서 4시간도 못 잠ㅠ) 요즘 해가 너무 늦게 떠서 8시 넘어야 겨우 미..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도 가을이다. 지난주까지는 낮에는 그래도 해가 좀 따가울 정도로 더웠는데 주말로 넘어오면서 완연한 가을로 접어든 것 같다. 낮에도 그렇게 덥지 않고 저녁엔 바람막이 하나만 입고는 추워지기 시작했다. 맨다리로는 못 다니겠어서 점점 챙겨온 원피스가 무용지물이 되어가는 중. 그건 그렇다 치고, 수확철이라 볼거리가 참 많다. 걸으면서 제일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포도밭. 이미 가을걷이가 얼추 끝나서 포도를 자주 볼 수는 없지만 갈변이 시작된 연두색 이파리들이 형형색색 예쁘다. 때때로 아직 따지 않은 포도도 볼 수 있는데, 그 밭 옆을 지날 때면 포도향이 확 코 끝을 스치면서 와인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이렇게 눈으로 향기로 유혹하는데 이거 원 안 마실 수가 없잖아..(그래서 오늘 늦은 점심을..
앞으로 3일 또는 4일, 내일부터는 계속 비가 온다고 하는데 어쩌면 좋을까 고민 중이다. 지금까지 비온다고 한 날 제대로 비 온 적이 하루도 없어서 믿기는 힘들지만 암튼. 그냥 지금 페이스대로 가버릴까(12시 순례자 미사는 그 다음날 참석)? 중간에 하루 더 쉬고 마지막날 쉬엄쉬엄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해서 그 기쁨을 만끽하고 바로 미사를 볼까? 마지막날 새벽부터 달려서 12시 전에 도착해볼까? 등등 별별 생각이 다 드는데, 일단 몸이 지금처럼 멀쩡하다는 전제에서 3일만에 도착하는 걸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좀 열심히 걷는다고 다리가 3일만에 부서지지는 않겠지. 오늘은 깔끔하다고 추천 받은 알베르게를 취소하고 낡은 호텔방을 잡았다. 어제 출발지부터 다니엘 할아버지 만나서 같이 걷느라 묵주기도도 하루 건너 ..
어느덧 길을 걸은지 7일이나 됐다! 절반도 안 남았다~!! 지난주 금요일 출발했으니 와우~!!! 언제 이렇게나 시간이 갔는지… 드디어 오늘은 산티아고까지 100km가 깨진 날! 축하축하!! 어제오늘은 날씨, 경치 다 참 좋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물론 어제는 새끼발가락 때문에 아픈 걸 참으면서 걷긴 했는데, 경치 보면서 아픔을 좀 잊을 수 있었고 오늘은 새끼발가락이 덜 아픈 방법을 드디어 알게 돼서!!!(감격ㅠㅠ. 깔창새끼발가락 부분을 과감하게 잘라내면 된다는!!) 훨씬 편했다. 어제는 바이오나 다음에 있는 사바리스 Sabaris 에서 비고 Vigo까지 갔고, 오늘은 비고에서 레돈델라Redondela 바로 옆동네인 세산떼Cesante 까지 왔다. 지금은 2시 전에 일찌감치 알베르게에 와서 씻..
오늘은 오 세라요 o serrallo에서 사바리스 sabaris 까지 좀 짧게 걷고 길도 좋아서 여유가 있다. 닌자앱 기준 18.3km, 애플워치 기준 20km. 알베르게 문 열기 전에 도착해서 근처 바에 가서 상그리아 한잔(3.5유로) 때리고 와서 샤워하고 빨리 건조기 돌려 놓고 앉아 있다. 몇 킬로 차인데 20키로 이내로 움직이니까 이렇게 여유가 넘친다. 여정이 오늘만 같아라~ 스페인에 넘어 오니까 1시간이 빨라져서 해가 더 늦게 뜬다. 오늘 일출 시간은 8시 40분.. 그러나 새나라의 어른인 로얄이는 5시 반부터 일어나서 부스럭대다가(이래서 1인실을 쓴다;;) 7시 좀 전에 길을 나섰다. 어제 너무 고생해서 아침거리를 준비 안 해서 좀 배고프고 초라하게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올라!! 지나가다 첫번..
보통 순례자 숙소로 불리는 알베르게는 까미노 길 옆에 있다. 순례자들을 위한 곳이니 순례자들이 가장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곳에 있는 게 정석이니까. 그런데 가끔 완전히 길에서 동떨어진 산 중턱이나 산 꼭대기에 있는 알베르게들이 있다. 3일차에 묵었던 Viana do Castelo 의 Santa Lucia 성당 알베르게가 딱 그런 곳이다. 보통 3일차에는 다들 거리를 조금씩 늘려서 Vila do conde 부터 26km 정도를 걸어서 비아나 두 카스텔로까지 가는 경우가 많은데(길에서 만난 사람들 전부 목적지가 비아나 두 카스텔로였음. 출발지는 빌라 두 콘데보다 조금 더 가까운 곳도 있었지만) 처음으로 25km 넘게 걸어야 하는데다 산 위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나 경사 엘리베이터가 운행을 안 하는 요즘 시기에(..
시작하며> 포르투 해안길을 따라 산티아고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대략 12일 일정을 계획했는데 다음주에는 비가 잦을 것으로 보여서 13일로 늘어날 수도 있다. 어쨌든 20일 새벽에 마드리드로 가는 비행기만 탈 수 있으면 되는 거니까… 순례길을 꼭 걸어서 완주하는 게 인생 버킷리스트 이런 것도 아니고 카톨릭 신자로서 한번 와 본 거라 여차하면 중간에 버스나 기차를 탈 생각도 있다. 아무튼 그때 그때 상황 봐서 이동할 예정. 둘째날까지는 미리 숙소를 예약해서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했는데, 2일차에는 새벽부터 걷기 시작해서 자주 신발 벗고 쉬었더니 어제보다 훨씬 수월했다. 나름 노하우가 쌓여간다고 할까. 마의 둘째날이라는 말이 있던데 확실히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는 듯. 1일차는 포르투에서 지하철 타고 마토..
어제는 모처럼 집에 혼자 있는 주말이었다. 운동 스케줄을 이틀 쉬는 걸로 얼추 맞추고 있는데 그렇다면 어제 달리기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혼자 늘어져 있으니까 귀찮아서 끝까지 늘어져 버렸고, 집에 반찬이 없어서 예전에 닭가슴살 시키면서 패키지에 같이 들어 있던 곤약볶음밥이 있길래 그걸 돌려 먹었다. 곤약밥이나 면이 속 안 좋은 사람한테는 소화불량을 일으킨다는 얘길 얼핏 들은 적이 있는데, 곤약을 좋아하고 많이 먹어와서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났는데 속이 이상했다. 아랫배가 빵빵하고 가스가 차서 아팠다. 실제로 통증이 있었음. 이렇게 장이 좀 힘들 때 내가 하는 짓이 병원 가거나 약 먹는 게 아니라 냅다 뛰는 것임. 그동안은 일단 뛰면 장운동이 되면서 좀 괜찮아졌었기 때문에. 뛰면 방..
시험 D+3. 시험 끝나고 집에 가서 바로 뛰고 싶었는데 비와서 못 뛰고, 태풍 영향 땜에 계속 비 와서 못 뛰고, 어제 저녁에는 약속 있어 못 뛰고 드디어 오늘 아침에 뛰었다. 오늘도 점심 저녁 약속에 내일은 멀리 교외까지 나갈 예정이고, 백수가 과로사 한다더니 딱 그렇네. 어제 술을 오질라게 먹은 관계로 속도는 안 났는데 기분은 정말 좋았다. 가을의 청량한 공기를 맘껏 느낄 수 있는 달리기였다. 시작할 땐 계속 시험 못 본 거 생각이 나서 오만 잡생각이 다 떠올랐는데 역시 땀흘리고 몸이 좀 지치니까 무념무상이 되고, 그저 도파민을 즐길 뿐. 스트레스 날릴 땐 러닝이 최고입니다. 날 선선할 때 마음껏 뛰어줘야겠다. 이제 시간도 많으니 그동안 못 해본 lsd도, 인터벌도 한번씩 해봐야지. 유튭에서 배운대..
시험도 보기 전부터 설레발 떠는 것 같긴 하지만… 처음으로 15km를 완주했다. 그렇게 한강까지 왕복을 했는데 한강에 들어서자마자 석양을 마주친 순간 아, 뭔가 인생의 한 막이 내리고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되겠구나, 지금 저 태양이 지난 인생의 페이지와 같이 지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에서야 뭐든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싶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착각한 것일 수도 있지만ㅋ 어쨌든 앞으로의 인생이 지금이랑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15킬로는 애초에 중간에 퍼지지 않도록 조깅 페이스를 무조건 지키자 생각하면서 출발했던 터라 슬슬 뛰었다. 근데 호흡이 많이 남아서 좀 더 빨리 뛰어도 될 것 같고, (630정도는 맞춰도 될 것 같음.) 발목, 무릎, 허벅지 근육은 막 아우성을 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