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별 볼일 없는 포남(포르투 해안길 1,2일) 본문
시작하며>
포르투 해안길을 따라 산티아고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대략 12일 일정을 계획했는데 다음주에는 비가 잦을 것으로 보여서 13일로 늘어날 수도 있다. 어쨌든 20일 새벽에 마드리드로 가는 비행기만 탈 수 있으면 되는 거니까… 순례길을 꼭 걸어서 완주하는 게 인생 버킷리스트 이런 것도 아니고 카톨릭 신자로서 한번 와 본 거라 여차하면 중간에 버스나 기차를 탈 생각도 있다. 아무튼 그때 그때 상황 봐서 이동할 예정.
둘째날까지는 미리 숙소를 예약해서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했는데, 2일차에는 새벽부터 걷기 시작해서 자주 신발 벗고 쉬었더니 어제보다 훨씬 수월했다. 나름 노하우가 쌓여간다고 할까. 마의 둘째날이라는 말이 있던데 확실히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는 듯.
1일차는 포르투에서 지하철 타고 마토지뉴스까지 이동해서(숙소 바로 앞 볼량역에서 7시쯤 A노선을 타고 메르카도르역까지 이동했다. Z3, 1.6유로) 시작했다. mercador는 시장이라는 뜻인데 역시 내려보니 바로 수산물 시장이 있더라. 이 동네 맛집 많을 것 같은데 그냥 스쳐가기 아쉬웠음.
거기서 다리를 건너면 드디어 순례길 표식을 만날 수 있다. 노란 조가비 안녕~!! 바로 해안으로 쫄쫄 걸어가서 먼 여정의 첫발을 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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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카봉을 잃어버려서 폰을 대충 세워서 셀카를 찍고 출발했다. 바다랑 같이 찍고 싶었는데 안 나옴ㅋㅋ
순례길 길 찾기>
첫날 해안길은 말 그대로 그냥 해안을 따라 쭉 걸어가면 된다. 데크길이 잘 나 있어서 그냥 노란 화살표만 잘 찾아서 가면 된다.
둘째날은 내륙길만 걷는 안쪽길이랑 해안길을 선택해서 가면 되는데 나는 숙소랑 해안이 가까워서 해안을 따라 쭉 걸었다. 그러다 내륙으로 꺾어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해안 쪽으로 가려다가 뒤 따라오던 토론토/스코틀랜드에서 온 아주머니들이 표지대로 가라고 막 불러서 그냥 그 쪽으로 갔다. 포르투 농촌 마을을 지나가는 건 참 좋았는데 돌길은 정말 힘들더라. 바닥이 어찌나 딱딱한지 족저근막염 걸리기 딱이다. 길가에 모래 둔덕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그 쪽으로 걸었다ㅠ
순례길 감상>
첫날부터 기분이 참 좋았는데 어떤 길로 갈까 우물쭈물 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귀인이 나타나서 이 길로 가라고 알려줬다. 심지어 안 물어봐도 알려준다. 덕분에 중간에 다리를 쉬면서 맛있는 카페라떼랑 나타도 먹고, 괜히 마을 돌길로 둘러가지 않고 편안한 해안길을 따라 갈 수도 있었다. Vila cha 마을에서는 동네 아저씨가 화살표 말고 좌회전 해서 가면 Vila do conde까지 직진으로 갈 수 있다고 알려줬는데, 정말 길 찾을 필요 없이 해안 데크 길 따라 쭉 직진하니까 도착하더라. Obligado!!
둘째날도 기분이 참 좋았는데(매일 참 기분이 좋네) 새벽에 안개 자욱한 동네를 자분자분 걸어가는 것도 좋았고(가로등도 있고 이상하게 무섭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 날 밝으면서 지나치는 사람들이 “봉 디아” 인사 해주는 것도 좋았고, 길도 평이해서 좋았고 중간에 성당에서 쉬다가 결혼식 구경하게 된 것도 설렜고, 간식으로 먹은 나타가 너무 맛있었던 것도(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완전 부드럽고 고소한 카페라떼랑 맛있는 나타를 먹는 기분은 이루말할 수 없다. 그것도 단 2유로에)
밭 사이 길로 한참 걷다가 드디어 시내로 나왔을 때 첫번째로 마주친 식당에 들어갔는데 그 식당이 로컬 맛집이었던 것도 모두 다 소소한 기쁨을 줬다. (화덕 통닭 전문점인데, 포장하려고 사람들 줄 서 있길래 나도 반마리 포장해달라고 하고 식당에서는 해산물 스파게티를 시켰다. 스파게티가 조개, 새우, 양송이를 막 때려부어서 정말 푸짐하고 맛있었다. 저녁에 화덕 통닭을 먹었는데 식었는데도 완전 부드럽고 맛있었다. 한 점도 안 남기고 다 먹었다)
2일차 점심 맛집(Fao):
Restaurante Martins Dos Frangos
https://maps.app.goo.gl/Vf7ix8npW4E3DZve8?g_st=ic
이틀 내내 해무가 짙게 깔려서 쾌청한 하늘과 새파란 대서양 바다는 볼 수 없었지만 걷기에는 좋았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아래 위 긴소매, 긴바지 등산복 입고 걷기 딱 좋은 날씨고, 나름 운치 있었다. 내륙에 살다보니 이렇게 해무가 낀 걸 볼 수 있는 기회가 잘 없는데 끝없이 이어지는 백사장을 따라 길을 더듬어 가는 느낌으로 걸을 수 있었다.
기도하는 순례자>
몇 시간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멍 때리지 말고 묵주기도나 하자는 생각으로 바치고 있는데 진짜 페레그리노가 된 것 같은 느낌이고, 다 바치고 나면 스스로 좀 기특하다. 어제는 첫 날이니까 환희, 빛, 고통, 영광의 신비 20단을 바쳤고 오늘부터는 5단씩 하고 있다. 어제는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서 앱으로 순서부터 익혀가면서 기도 했는데, 20단 바치고 나니까 싹 다 외워져서 오늘부터는 안 보고 한다.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첫날에는 가는 길에 순례객이 거의 없어서 독일인 부부랑 여성 커플이랑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걷다가 빌라 두 콘데 들어가기 직전에 캐나다 퀘백에서 온 찰스라는 아저씨를 만나서 두런 두런 이야기 하면서 걸었다. 숙소에서는 아일랜드에서 온 카밀라랑 방을 둘만 썼는데 영어권에서 온 사람들은 말이 정말 많다고 또 한번 느꼈다(다른 데서도 많이 느낌). 나도 한국말로 하면 저렇게 신나게 떠들겠지 싶다는 생각이... 암튼 카밀라는 말은 많으나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둘째날에는 갑자기 순례객이 많아져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인사도 하고 잠깐잠깐 얘기도 하고 그랬다. 아침에 숙소 나오기 전엔 베네수엘라에서 온 여성(이름을 못 물어봤네)이랑 거의 30분을 얘기하고 나왔는데, 친구들이 포르투갈에 놀러와서 같이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며칠 전에 비아나 데 카스텔로에서 세계 카약대회가 열렸다는 것도 알게 됐고.. 베네수엘라는 위험하니까 가지 말고 브라질이나 다른 남미 국가에 여행 가보라는 당부까지 덧붙였는데, 베네수엘라인들 중에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이렇게 해외에 정착하는 걸까? 그 분은 45세인데 은퇴하고 포르투갈에 정착했다고..
오기 전 후기들도 그랬고 지나가며 만난 한국인들의 반응을 봤을 때도 좀 느꼈는데, 여기 오면 전부 까미노 친구라고 해서 외국인 친구를 꼭 만들어야 할 것만 같고, 외국인들이랑 교류하면서 글로벌 인싸스러운 뭔가를 해야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글쎄올시다. 일단 나는 수시로 1~2인 전용룸에 묵으면서 혼자 많이 쉴 예정이고, 한국인을 만나면 덮어놓고 엄청 반가워할건데, 다양한 인연이 있지만 급할 때 말 통하는 사람이야 말로 최고의 인연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동안 혼자 출장 다니면서(다시 생각해봐도 그 때의 내가 너무 짠하다ㅠㅠ 맨날 나만 혼자 다녀오라고 하고ㅠ) 의지가 됐던 건 역시 한국말 할 줄 아는 한국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타국에서 마주칠 정도의 우연이라면 보통 인연은 아니지 않나?
일하면서, 여행 다니면서 숱하게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마주쳐봤고 이제 한비야 책 읽으면서 환상에 젖던 소녀 시절은 이미 지나왔고, 그래서 원나잇하면서 몸의 대화라도 진하게 하면 몰라, 같은 업에 종사하면서 고충도 다 이해하고 공통분모가 많아 할말이 많은 사람들일지라도 몇 시간, 며칠의 짧은 만남은 그냥 좋은 경험일뿐이고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 보면 좀 더 반가운 정도?
일정 및 숙소>
1일차 포르투부터 이동하고 도착해서 마트 다녀오고 2일차도 마트 다녀오고 동네 구경까지 해서 걸은 총 거리가 29.1k, 2일차는 26.1km다. 닌자앱이나 구글맵으로 보면 순수하게 순례길을 걸은 거리는 각각
1일차 마토지뉴스(Matosinhos)-> 빌라 두 콘데(Vila do conde) 22km,
2일츠 빌라 두 콘데 -> 에스포센데(Esposende) 22km 정도다.
1일차 숙소: 완전 강강추. 포르투길 단톡방에서 누가 추천해줘서 예약했는데 깔끔하고 빨래방이 가까워서 좋았다.
Avenida Bento de Freitas, 460, 4480-672, 빌라 두 콘데 도미토리 19.25유로.
2일차 숙소: 완전 강강강추. 여기도 추천 받은 곳인데 아무래도 둘째날 녹초가 될 것 같아서 전용룸을 예약했다.
Rua Conde Agrolongo nº29, 4740-239, 에스포센데 2인실 전용룸. 28.35유로(현장 현금 결제)
에스포센데 숙소는 빨래방도 바로 옆인데, 도착하니까 햇볕이 쨍쨍해서 그냥 손빨래 해서 테라스에 널었다. 해가 워낙 좋아서 해질녘 되니까 양말 빼고 전부 다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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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차 하이라이트: 2일차에 포르투갈 변태를 마주쳤다해안 사구 옆 데크를 지나가는데 뭔가 시선을 잡아끄는 요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떤 남자가 저 멀리서 웃통을 벗고 몸을 막 흔들고 있더라. 시야를 가리던 모래 둔덕을 지나 쭉 걸어가보니 홀딱 벗고 거시기를 붙들고 막 몸을 흔들고 있음. 반응을 바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걸 어쩌겠어. 포남의 그것이 궁금하여 좀 자세히 들여다 봤는데 내가 눈이 안 좋은 것도 아닌데 뭔가 보여야 할 게 안 보이더라. 손이 커서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몸에 비해 초라한 그것 때문에 변태가 됐는지 어쨌는지 그 애쓰는 몸사위가 너무 처절해서 나도 모르게 너털 웃음이 나와서 그냥 웃고 지나쳤다. 별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이니까 뒷 사람 보라고 더 열심히 댄싱을 하던데 변태짓도 참 못할 짓이다 싶었다. 암튼 포남 실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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