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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동력

7년 인연

로얄곰돌이 2022. 8. 17. 16:21

오늘은 참 뜻깊은 날이다. 7년 전에 뉴욕 여행 갔을 때 만났던 인성 언니랑 홍제천을 같이 뛴 날이기 때문.

회사에서 찍혀서 인천 끝에 있는, 황량한 벌판에 고고하게 서 있던 추운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다가 좋은 선배들이 본사에서는 사표를 쓰고 나갔다는(=쫓겨났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그냥 냅다 사표를 던졌고, 뉴욕행 티켓을 사서 바로 다음주인가 날아갔다.

하필 한겨울이라 날씨는 오지게 춥고 기상 이변으로 뉴욕은 역대급 한파에 눈폭탄까지 쏟아졌었더랬지. 혼자 칼바람을 맞으면서 여기저기 쏘다녔더니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이 더 복잡해지고, 외로웠다.

그런데 그 여행에서 포인트를 하나 또렷하게 찍고 왔는데, 아직도 눈에 삼삼한,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을 하나 남긴 것이다. 김선배가 동생이 뉴욕 근처 산다고, 가는 김에 겸사겸사 뭐 좀 갖다 주라고 해서 그거랑, 오랜만에 한국 술 드시라고 소주도 몇 병 챙겨서 주소를 덜렁 받아 갔었다.

폭설 때문에 거리가 엉망이었고, 해안에서 불어오는 바람 땜에 핸들 붙드느라 어깨가 아플 정도였다. 그럼에도 95번 하이웨이 타는 김에 워싱턴 들러서 백악관을 보고 가겠다며 혼자 또 오바하는 바람에 둘러 가느라 밤에 도착했다. 그 때 여기가 미국이라는 곳이구나라고 실감 했던 게 퇴근 시간 즈음이었는데도, 언니네 집 근처 주택가로 가니까 가로등 하나 없고 뜬금없이 엄청난 나무들이 길 양옆으로 솟은 좁은 도로가 나오고, 네비 따라 갔는데 사방이 깜깜해서 대체 집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었다. 다행히 길목에 있는 우체통을 발견해서 어찌저찌 집을 찾아갔었지.(나중에 봤더니 집 마당이 어마어마한데 그 마당이라고 하기엔 산도 좀 끼고 있고 시냇물도 흐르고 그랬었음. 마당이라기엔 영지 같은…)

넘 착한 아이 둘과 개 두마리가 있던 따뜻한 집에서 그 길로 밤새 소주를 까고 장렬히 전사했던, 참 아름다운 기억이 또 새록새록 떠오르네.

언니는 그 이후에 엄청난 러너가 돼서 보스톤 마라톤도 뛰고(기록이 좋아서 뉴욕 마라톤 컷오프도 통과 했다고. Wow!!!) 100k 울트라마라톤도 완주하는 괴수가 됐고, 나는 홍제천의 샤방 러너가 되어서 오늘 드디어 만나 같이 뛰었다.

같이 이런저런 수다 떨면서 뛰니까 별 힘도 안 들고 운동 자체가 참 재밌었다. 러닝 얘기, 김선배네 자매들 한라산 등산한 얘기도 듣고, 김선배한테 요즘 공부 상황도 공유하고 그러면서 수다를 와장창 떨고 빵이랑 아아메로 아침을 같이 먹고 헤어졌는데, 이렇게 재밌게 운동한 게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아침부터 재잘재잘 얘기하는 것도 넘 좋았고. 하루종일 기분이 방방 뛰고 즐겁다. 실제로 얼굴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인데 왤케 친밀감이 드는지ㅋㅋㅋ 담번엔 같이 대회 나가보기로 했음! 그 때까지 최소한 하프는 뛸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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