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긍정적인 세상(1) '돈 받고 배운다고 생각해요" 본문
얼마 전에 어떤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는 A씨와 잠깐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대학생이고, 졸업반이며 휴학을 하고 그 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인턴 월급이 얼마냐?고 묻자 80만원이고 세금을 제하고 나면 70만원대라고 한다.
그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외국계 자본이 한국에 만든 계열사고, 그들은 스스로를 '스타트업', 즉 창업 초기 기업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일반적인 대기업 계열사나 외국계 기업 한국 지사나 별 다른 점은 없다.
여기 경영진들은 외국계 자본에서 1억원 넘는 연봉을 받고 일정 지분을 부여 받았다.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회사가 돈을 못 벌면 창업자도 돈을 못 버는 일반적인 형태의 벤처회사와는 다르다.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고 회사가 돈을 벌면 성과급도 받을 수 있는데다 회사를 잘 키우기만 하면 받아놓은 스톡옵션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
경영진 외에 대부분 인력은 인턴으로 채워진다. 인턴은 보통 회사 직원들이 하는 영업, 마케팅, 경영지원 업무를 한다. 각 팀별 부서장급 외에는 인턴이므로 선배에게 업무를 배우는 건 없다. 말하자면 '스타트업'이라 인턴들은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한다. 이 회사 대표를 한번 만났는데 "인턴을 쓰기 때문에 인건비가 절약되고 효율적이다"라는 말을 했다.
A씨에게 "당신은 최저임금도 못 받고 있으며(인턴에게는 3개월까지는 최저임금의 90%만 지급해도 된다고. 법에 저촉되지 않는 최하 선을 지급), 전형적인 노동 착취다"라고 했더니 그 친구는 "돈 받고 배운다고 생각해요"라는 역시 전형적인 답을 내놨다.
회사 대표는 항상 그렇게 이야기 한단다. "여러분은 돈을 받으면서 일을 배우고 있는 거고, 열분의 열정이 이 회사에서 발휘되길 바란다"고. '열정', '도전'에 마취된 학생들은 오늘도 긍정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며 일을 배우느라 즐겁다.
당연히 회사가 낸 수익으로 인턴들에게 성과급을 줄 가능성은 없다. 3~6개월이 지나면 인턴들은 그만두고 그 자리를 또 다른 인턴이 채운다. 성과급 지급 대상에 단기 비정규직 인력은 포함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게 기업주의 보편적인 생각이다.
자취를 하는 A씨가 세금을 떼고, 집세, 관리비를 내고 교통비를 쓰고 세끼 밥값을 쓰고 옷 사입고 화장품 사고 생활 용품을 조달하고... 등등 80만원으로 생활하기란 불가능 하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더 받아 쓰거나 투잡을 뛸 수밖에 없다. 운이 좋아 부모님이 집을 사주셨다거나 전세를 마련해줬다고 해도 이것 역시 부모님이 생활 밑천이 된 것 뿐이다. 그러면 이 효율적인 회사의 수익의 상당 부분을 인턴이 뛰는 투잡이나 인턴의 부모님이 떠맡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세상은 정말 밝고 긍정적인 곳이다. ^-^ 아프니까 청춘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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