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Let's do it!! 본문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미드나잇 인 파리>를 봤었지.(원곡은 콜 포터Cole Porter, 리메이크는 코날 포크스Conal Fawkes.. 영화 속에서는 콜 포터 캐릭터가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이 노래를 부른다.)
새도 하고, 벌도 하고, 교육받은 벼룩도 하는 그것.
어제 우연하게 손에 들어 온 책. 정호승, 안도현, 장석남, 하응백이 함께 엮었다. '시인은 청춘에 만들어진다'라며 그들이 청춘시절 빠져 읽었던 시와 얽힌 일들을 썼다. (안타깝게도 몇몇 시는 책에 안 나와 있어서 따로 찾아봐야 한다)
정호승 시인이 소개한 <곽재구, 사평(沙平)역에서>를 하루 종일 반복해서 읽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 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문학과 지성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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