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답동성당 본문
주말 점심 먹고 엄마랑 한가롭게 열혈사제II를 보다가 배경으로 나온 성당이 예쁘고 마당도 넓어서 저긴 어디 성당이래? 이런 얘길 하다 찾아보니 인천 답동성당이란다.
날도 좋으니 그 길로 인천까지 드라이브~~
답동성당은 어릴 때 추억이 약간 있는 곳인데, 성당에서 하는 뭔가 대회에서 뽑혀 상을 받으러 인천 주교좌 성당인 답동성당에 갔던 일이 있었다. 꽃다발 들고 성당 오르막 앞에서 찍은 사진도 있고. 그 때 내가 국딩 1학년인가 2학년이라 상 받는 아이들 중에 제일 꼬꼬마였던데다 오빠도 답동성당까지 가서 상을 받은 적이 있어서 우리 부모님에게는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은 곳이다. 내 기억은 해가 엄청 따사로운 봄날, 성당이 엄청 붐볐다는 것 정도가 남아있다. 뭣 때문에 상을 탔는지도 몰랐는데 엄마 얘기론 시를 잘 썼다고. 문학소녀였나 봄. 당시에 어린 생각에 국딩 내내 인천교구 주교는 나굴리엘모(나길모) 주교님이어서 주교는 외국인이 하는 건 줄 알았다.
아무튼, 약 1시간여를 달려 답동성당에 도착했더니 어릴적 기억과는 완전히 다르고, 심지어 울 엄마 기억과도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성당 아래에 엄청 큰 공영주차장이 있었고 경사면을 따라 오르막길과 공원이 조성돼 참 아름다웠다. 찾아보니 인천시에서 지원을 해서 우중충한 가톨릭회관 건물을 없애고 관광지로 개발을 한 것. 답동성당은 근대 문화유산으로 사적 지정 되어있다.
2021년에는 주교관으로 쓰이던 건물을 역사관으로 리모델링했다. 엄마가 귀찮다고 했는데 궁금하니까 잠깐 구경하자고 끌었다가 엄청 흥미롭고 유익한 해설을 듣고 나왔다. (경험상 해설사가 있는 전시관은 대부분 유익하다. 참고로 얼마 전에 원주 거돈사지에서 들었던 불교에 관한 해설도 정말 재밌었다.)
단순히 천주교 역사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1889년 답동성당 건립 전후 한국 역사와 일제시대, 6.25, 민주화 역사를 두루두루 다루고 있었다. 특히 서해5도 지역에서 병원선 ‘바다의 별’을 운항 했었다는 것, 강화도 심도직물 노동운동을 이끈 천주교 역사 이야기는 처음 듣는거라 더 재밌었다. 엄마도 들어오길 잘 했다고 좋아하심ㅋㅋ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합쳐진 답동성당은 명동성당이랑 같은 시기에 같은 신부님이 설계해 지어진 거라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한다. 빨간 벽돌은 적토를 구해서 구워내고 청나라 기술자들이 한땀 한땀 쌓아올렸고. 명동성당이 건설 중에 문제가 생겨서 답동성당이 1년 먼저 지어졌다.
내부에 들어서니 스태인드 글라스가 정말 멋있었다. 저녁에 조명을 밝히면 밖에서 스태인드 글라스가 발하는 빛이 아름답게 야경을 밝혀준다고.
즉흥여행의 끝은 신포시장에서 오징어 튀김을 포장해서 대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뚫고 돌아오는 걸로 끝났다.(신포 닭강정은 친구랑 둘이서 반마리 시켜놓고 콜라 서비스로 먹고 나오는 가성비템이었고, 좁은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서 교복입은 애들만 바글바글 했었다. 지금은 명물이 돼 있더라. 우리는 지금은 너무 달아서 안 먹음ㅋㅋㅋ)
인천은 내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다. 좋은 일도 많았지만 집안의 우환이란 우환은 거기서 다 겪었다. 삼남매를 키우는 엄마의 고생도 말도 못했고.. 그래서 웬지모르게 인천 하늘은 잿빛으로 기억된다. 오늘은 하필 오후에 구름이 모여들어 흐렸다. 엄마랑 역시 인천 오니까 우중충해, 회색빛이야 이런 얘길 했는데, 성당을 나와 비를 맞으며 돌아보니 인천도 괜찮은 도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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