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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시간 있을 때 자격증을 좀 따놓자 싶어서 양식 조리기능사 학원에 다니고 있다. 필기는 기출 돌려서 무난하게 붙어놨는데 실기는 또 다른 영역이다.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못 해ㅠㅠ 칼질도 못해, 빨리 굽거나 끓이지도 못해... 맨날 정신없이 땀 뻘뻘 흘리면서 겨우겨우 완성 시키고 주위를 돌아보면 다른 사람들은 벌써 설거지까지 마치고 있다. 나 조리 디게 못하는 거였구나라는 걸 매일매일 확인한다. 그리고 요리하는 게 이렇게 힘든 거였나 싶은 게, 학원 마치고 나면 허기가 장난 아니다. 소화 안 된다고 징징거린 게 엊그제 같은데. 아무튼, 이름하야 '수제 파슬리 가루'를 만들게 됐는데, 왜 만들게 됐냐면 연습 좀 하겠다고 레시피마다 들어가는 파슬리, 샐러리, 월계수잎을 주문했는데 양을 가늠을 못해서 그냥 싼 ..
백수 2년차에 돈 안 버는 핑계인 수험 공부도 끝났고, 그냥 놀자니 좀이 쑤시고 때마침 돈도 없다. 그래서 뭘로 돈을 벌까 하다가 머리 쓰는 일은 하기 싫고, (하고 싶다고 시켜주는 건 아니지만) 쿠팡이랑 B마트 일용직을 해보니 관절 땜에 자주는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몸을 좀 적당히 쓸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지게차를 배워보기로 했다. 작년에 대형면허 따보려다가 4번이나 떨어지고 운전 관련해서는 자신감이 완전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지게차는 시험을 안 봐도 면허를 딸 수 있다는 희소식을 발견! 바로 수강 신청을 했다.(굴삭기나 로더도 1종 보통 있으면 강의 수료하면 소형 면허 발급이 가능하다) 준비물: 1종 보통 면허, 내일배움카드, 시간 내일배움카드 없이 면허 취득 과정 수료를 해도 되지..
컴퓨터 활용능력 시험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아르바이트로 해보려고 하는 일을 시작하려면 컴활 자격증 하나 정도는 있는 게 좋다는 조언을 봐서 컴활 2급을 따기로 했다. 이왕이면 1급을 따는 게 좋겠지만 일단 뭔지 아예 모르는 시험이니 2급을 우선 따봤다. 따고 나서 보니까 의외로 어렵지 않아서 이왕 할 거 1급이나 정보처리기사를 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컴활 2급은 모든 문제은행식 국가 시험의 기본 공부방법인 기출 뿌시기와 유튜브를 활용하면 며칠만 투자해도 수월하게 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양식, 한식 조리기능사 필기도 이틀 정도 기출+유투브를 병행해서 둘 다 80점 이상 맞았다.) 우선 필기. 나는 IT 분야 취재를 계속 해와서 PC, SW, 통신 관련 용어에는 익숙한 편이긴 ..
이렇게 장거리 투어 라이딩을 한 게 몇 년만인지... 날씨도 좋고, 단풍도 좋고, 바다도 좋고, 사람들도 좋고, 입도 즐겁고 다 좋았던 여행이다. 다녀오고 나서 이틀 정도 지났는데 아직도 행복감이 가슴 주변에서 일렁인다. 처음 얘기 나왔을 때 평범한 라이더들처럼 용문에서 출발하자는 제안이 나왔으나... 우리는 최약체 느림보 멤버가 둘이나 있는 관계로(한 명은 몇 년째 거북이 신세를 못 면하고 있는 나, 한 명은 60대 클릿도 장착 안 하신 어르신이다.) 홍천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뭐 길게 탄다고 누가 박수쳐줄 것도 아니고! 서북쪽 사는 사람들은 고양종합터미널 6시 50분 홍천행 첫 차를 , 동쪽 사는 사람은 7시 좀 넘어서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했다. 홍천 터미널에는 9시 좀 안 돼서 도착했다. 순대국 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20대 여자 아이들의 불안정한 삶을 그린 영화 는 인천 부둣가에 사는 여자 친구들이 주인공이다. 딱 내 또래에 인천 출신. 1호선을 타고 낑겨서 멀고 먼 서울까지 오가거나, 마땅한 일이 없이 부유하거나. 갓 스무살이 된 여자 아이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한편, 인천 사람들의 애환까지 함께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인천 출신인 나는 인천이라는 공간을 이렇게 느낀다. 뜨내기들의 도시, 기회가 되면 언제든 서울로 떠날 준비가 된 사람들의 도시. 배가 드나드는 동인천 쪽이든 서울과 맞닿은 계양, 부평 쪽이든 인천 사람들의 고향은 인천에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정주 감각을 느끼기 힘든 곳. 한 번 떠나면 다시 돌아가지 않는 곳. 실제로 내 친구들 대부분은 인천을 떠나 산다. 나도 마찬가지. 뚜렷..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있는데요, 여러분의 인내 덕분에 이 사회가 여기까지 바뀔 수 있었습니다. 시민 여러분이 여기까지 참아주신 덕분에 한국 사회에, 서울 지하철역 엘리베이터가 91퍼센트 상당까지 설치되었고, 서울 시내 저상버스가 55퍼센트 상당 설치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장애인들끼리 정치인을 찾아가서 '엘리베이터, 저상버스 설치해주세요'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감하는 시민께서 함께 불편함을 호소하고 빨리 처리하라고 요구하는 순간부터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게 정말 딜레마이고 죄송할 다름인데요... 그럼에도 시민 여러분이 불편함을 감수해주신 덕분에 한국 사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감사의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
피아노 연주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도전하는 곡, 쇼팽 '즉흥 환상곡(Impromptu No.4 in C# minor)'을 연습하기 시작한지 어언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어린이들도 훌륭하게 연주할 정도로 그렇게 난이도가 높은 곡은 아니지만 로얄이는 체르니 40번에서 멈춰버린 실력...어릴 적에 조금만 더 열심히 배워서 베토벤이랑 쇼팽까지 진도를 나갔다면 참 좋았겠지만, 모차르트 소나타까지만 치고 콩쿨 한 번 나가보고는 질려서 이제 피아노 연습하기 싫다며 줄행랑을 쳐버렸었다. 참 어리석기도 해라. 그래서 왼손, 오른손 콩나물을 한땀 한땀 읽어가며 치기 시작한지 한 달여가 지났다. 아직도 손가락이 꼬이는 부분에서는 여전히 꼬이고, 틀리는 데서는 또 틀린다. 특히 저 3번째 줄 크레센도(cresc)부터..
안드라스 쉬프 경 리사이틀은 연주 곡 목록이 미리 공개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주회장, 그 날의 분위기 등을 보고 피아니스트가 당일 연주곡을 결정하고, 공연 중에 곡명과 작품들에 대한 느낌이나 감상 포인트를 직접 설명해준다. 작년부터 한번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이번에 한국 순회 연주를 한다고 해서 경기아트센터에서 하는 10월 6일 공연을 관람했다. 헝가리 태생에 이탈리아 피렌체에 살고 있는 쉬프경은 안타깝게도 한국말을 못하기 때문에 문지영 피아니스트가 통역을 해줬는데 오히려 좋았다고 해야 하나, 문 피아니스트의 음악에 대한 느낌과 감상까지 함께 전해져서 이해도가 더 높아지는 것 같았다. 이 날의 연주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피아노 꿈나무 옆에서 등을 토닥여주고 응원해주는 공연이었다. 피..
조카님의 주/보조 양육자인 울 부모님이 여행을 가셔서 일주일간 육아라는 팔자에 없는 짓을 했다. 다시 말하자면 딸래미가 백수로 놀고 있는 덕분에 부모님이 여행을 가실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들 때까지 애한테 매여 있는 건 아니고,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서 아파트 입구에 나가서 데려오고, 간식 먹이고 좀 놀아주다가 저녁 먹이고 집으로 돌려보내면 되는 일정이다. 4세 어린이와 이렇게 오랜 시간을 둘만 지내본 적이 처음이라 느낀 점 몇 가지를 적어놓는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너무 어정쩡하다. 4시반에 돌아오는데 어디 일 보러 나갔다가도 3시만 되면 일어서서 후다닥 돌아와야 한다는 게 좀 스트레스... 오후에 뭘 할 수가 없음. -간식이랑 저녁 메뉴가 고민스럽다. 달고 짠 ..
지난 2년간 몸과 마음의 안식처였던 종로도서관이 휴관을 한단다. 올해는 시험 끝나도 어디 놀러도 안 가고 다시 도서관 다니면서 컴활 자격증도 따고, 영어랑 스페인어 공부도 하고 토지도 마저 빌려보고 어쩌고... 하는 계획을 세워놨는데 아쉽게 됐다. 집에서 30분 거리 내에 있는 공공 도서관을 전부 가보고 종로도서관을 아지트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게 약 2년 전이다.(그 때는 딱 1년이면 수험이 끝날 줄 알았더랬지. 1년만 해보고 안 되면 말자고 생각했는데... 미련이란 것이 참;;) 종로도서관은 열람실 삼면이 거의 통창 같은 넓은 창으로 돼 있어서 개방감도 좋고 책상도 오크색이라 따뜻하고 안락한 느낌이다. 창가에서 공부하다 고개를 들어 보면 저 멀리 남산 타워랑 키 크고 오래된 나무들을 보면서 눈을 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