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미래를 낙관하면, 오늘 세계는 달라진다-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본문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29p.>
-루이 라벨의 말, 고립과 고독의 차이가 생각나는가?
예, 여기 노트 맨 앞에 적어놓았어요. '고립은 자신에 대한 애착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타인을 멸시하기에 비극을 초래한다. 하지만 고독은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이탈하는 것이다. 이 이탈을 통해 각 존재는 공통의 시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살아가면서 인생에 따옴표나 방점이 찍히는 순간들이 있다. 졸업 및 입학, 취업, 퇴사, 만남과 헤어짐, 지금의 내 상황에서는 이번달 말에 있을 합격자 발표. 처음으로 방점을 찍은 후에도 생은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건 수능시험 직후다. 수능을 생의 마지막 목표인 것처럼 여겼던 내 인생은 재수생활로 이어졌고, 대학 입학이 괴로움의 끝인 줄 알았건만 더 큰 부담과 상처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시에 도전했다가 공부에 완전히 패배하면서 어떻게 죽을까 골몰했던 날들 이후에도 죽지 않고 삶은 이어졌고, 20대와 30대를 거쳐오며 행복과 불행은 적당히 내 인생에 들어왔다 나갔다 반복했다. 1년간 준비했던 시험을 망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도 11월 23일 이후에도 어떤 결과가 나오든 삶을 그럭저럭 꾸려나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미래는 내 계획과는 무관하게 준비되어 있고, 또 적당한 불행과 행복이 교차될 것이다.
이걸 알고는 있지만 여전히 의연하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이제 곧 카운트다운에 들어갈 합격자 발표일이 한 발 한 발 다가올수록 초조해하며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던 와중이다. 이 초조함을 배가 시키는 건 시험장의 기억인데, 내가 왜 그렇게밖에 못 썼을까, 그 때 왜 좀 더 차분하게 서술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불쑥불쑥 든다. 그 기억을 잊고 싶어서 몸을 혹사시키려고 순례길을 걷고, 정처없이 쏘다니고, 달려도 보고, 이런저런 공연도 보러다녔는데 밤에 잠자리에 들 때면 어떤 것도 소용이 없다.
좋아하는 작가 책이나 뒤적거리는 게 그나마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방법이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9월 4일 서울의 어느 중학교 시험장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답안지를 써내려가던 시점에 매여있는 내게 현재와 미래를 속단하지 말라는 위로 섞인 조언을 해준다. 과거로부터 비롯된 비관은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8개의 짦은 소설을 통해서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 하에, 글이 들려준 다음 이야기들을 어떤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지침으로 삼기로 했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기억할 것, 미래는 길게 봤을 때 낙관적일 수밖에 없다.(비록 내 삶은 짧게 끝나더라도)
비극과 패배가 있어도 삶은 계속되며, 이어지는 삶에서 신의 구원을 믿어라.
모든 인간 행동에서 이유를 찾지 말자.
모래폭풍은 지나간다. 상실은 필연이다.
기억은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같이 겪은 과거도 같지 않다. 다만,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사랑은 영원해진다.
나의 삶은 유한하지만 정신의 삶은 타인을 통해 이어진다. 사람과 만나서 얘기하고 마음을 나누고, 사랑하고 기억하자. 사회적인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게 거기에 있다.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가면 된다…
그래서 마음이 좀 편해졌느냐? 아직은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달까지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으려고 노력은 해보련다. 이후의 삶을 위하여.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겠다.
덧붙이는 글.
간혹 어떤 책을 읽고 뇌 또는 심장이 너무 흥분해서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인지 딱 규정지을수는 없지만, 너무 슬퍼서 우울의 늪에 빠져버렸다거나(이런 일은 잘 없다. 성인이 돼서 다시 읽은 '나의라임오렌지나무'의 폭풍같은 임팩트 이후에는 더욱이) 등장인물이 가엽거나 또는 너무 사랑스럽거나 작가의 세계관이 정말 참신하다든가 하면 잠자리에 누워서까지 자꾸 등장 인물들을 떠올리고 그들이 사는 공간을 그리워하게 된다. 실재하지 않는 이들이기에 다시 만나 그 이후의 삶에 대해 들을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에 아쉬움이 너무 크고 마음이 허전해서 며칠동안 감정이 회복되지 않을 때도 있다.
김연수 작가는 연달아 나를 그런 공허감으로 이끈 작가다. 최근 장편 소설 <일곱해의 마지막>은 백석이 절필한 후 농촌에서의 삶이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아서 애닳아서 그랬고, 이번에 읽은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대놓고 이 소설 속의 시간 이후를 떠올리게끔 만드니 그렇다. 책을 덮은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정신은 머리 위 어딘가에 붕 떠 다니는 것 같다.
김연수 작가의 팬이 되기로 마음 먹은 건 단편소설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을 읽었을 때인데, 그 때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작가의 혼신의 노력이 글마다 드리워진 것 같았다. 그게 도저히 가능해보이지 않는데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남은 이의 고독이(당시에는 독신으로 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던 때여서) 엄청 사무치게 다가왔었다. 최근작에서 작가는, 타인과 세계를, 사건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듯하다.
나보다 10여년 빨리 살고 있는 이 작가는, 10년 후를 살아가는 내 상황과 세계를 미리 알고 먼저 고민해주고 이해를 위한 실마리를 던져주는 것 같다. 아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속 어딘가에 조용히 쌓이던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었고, 소설을 읽으면서 그 문제들이 하나씩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해결되는 것이라고 해야 하나?
뭐가 됐든 김연수 작품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여운이 짙다‘라고 단순하게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마음에 물결치듯 몰려오는데, 그걸 표현할 문장력과 어휘력이 부족해서 항상 애가 탄다. 이런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바에야 아예 독후감을 쓰지 말까? 싶다가도, 조악하나마 몇 줄이라도 감상을 남겨놓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끼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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