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자괴감에 자괴감을 더 하는 사람 본문
시험 발표일이 다가올수록 자신감은 수직 하강하고 있다. 1년을 그렇게 외우고 외우고 또 외웠는데 그걸 제대로 못 썼다니...내 답안지만 생각하면 자괴감이 몰려온다. 합격과 불합격 확률을 굳이 숫자로 표현해보자면 49% 합격, 51% 불합격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못 놓고 애 태우고 잠도 잘 못잔다. 시험 전만 해도 이번에 못 붙으면 나는 다시 도전 안 한다! 라는 생각이었는데 다시 책을 뒤적거리는 걸 보면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갈대 같고 미련은 또 얼마나 인간을 헤매이게 하는가 싶다.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하는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무너져가는 정신력을 아예 해머로 때려부수는 짓을 몸소 찾아내서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대형 면허 시험. 오늘로 벌써 세번째 낙방했다ㅠ 유투브 보면서 열심히 시뮬레이션 돌리고 공식을 외워서 갔는데 정작 굴절 코스 감점 없이 잘 통과 해놓고는 신호 위반하고, 남들은 쉽다는 S자에서 떨어지고 나니 정말 자신감이 눈 앞에서 와르르 허물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험장을 터벅터벅 걸어나오면서 나는 어떤 시험도 안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네 번 보면 붙을까? 다섯 번 보면 붙을까? 10번씩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왜 나는 세번째만에 이렇게 자괴감이 심하게 드는건지... 아 시험이라는 거, 진짜 싫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그 망할 미련 때문에..
대형 면허를 따자고 생각한지는 꽤 오래됐다. 대학 때 무라카미 류가 쓴 소설 '교코'를 읽고부터 생각했으니 계획부터 실행까지 거의 20년이 흘렀다. 교코는 대형 트럭 운전 기사인 교코가 주인공이다. 교코는 고아에다 친구도 별로 없기 때문에 일이 바쁘거나, 다른 기사들이 펑크를 내면 언제든지 땜빵도 해주는 성실하고 믿을만한 운전 기사다. 그 교코가 운전을 그만두고 어린 시절 친구(이자 춤 선생인 미군)를 찾아 미국으로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친구를 만나지만, 그는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고 그를 고향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교코는 뉴욕에서 플로리다까지 'I-95' 고속도로를 타고 달린다.
일본 내 미군 기지촌과 그 지역의 분위기, 미국이라는 낯선 땅의 불친절함, 미국 내 이민자들의 삶, 국적을 초월한 우정과 마법같은 춤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교코라는 인물을 설명해준다. 많은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연약해보이지만 단단하고 결단력 있는 교코에게 매력을 느꼈다.
이 교코를 구성하는 많은 스토리 중에 제일 꽂힌 건 대형 트럭을 운전한다는 점이었는데, 그게 왜 그렇게 좋아보였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소설의 자세한 내용도, 결말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교코가 일본 전역을 트럭을 몰고 누비면서 다양한 풍경을 스치는 광경만은 생생하게 떠오르고 한편 설렌다. 미국 동부 해안을 종단하는 I-95 고속도로 풍경도. 뉴욕에 갔을 때 차를 렌트해서 I-95를 타고 워싱턴까지 다녀왔고, 그 때 대형 면허를 따겠다는 결심을 또 한 번 한 바 있다. 언젠간 대형 트럭을 몰고 플로리다로 향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래서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한이 있어도 또 시험을 보러 가야 한다. 울면서라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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