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일체감이 주는 아름다움 본문
문화 예술에 왜 꼭 ‘감동’이라는 게 있어야 해? 라는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그냥 공감 좀 되거나, 모르던 세계를 알게 해주거나, 특이한 상상력으로 재미을 주거나 아니면 무의식 속에 일말의 정의감이나 인류애를 심어주거나 그런 정도면 되지 않는건가? 싶었다.
근데 그건 감동이라는 것을 사전적 정의 그대로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이라고 해석해서라는 것을 이제야 이해하겠다. 참 깨닫는 데 오래 걸려요. 위에 표현한 모든 것이 사실은 인간의 손길을 거친 한 예술작품과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의 주파수가 어떤 지점에서 맞아 떨어져서 동일한 파동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이걸 감동이라 한다면 ‘감동’은 문화 예술의 기본값이 되는 게 맞겠다.
그런데 이 감동이라는 말이 정말 크게 느끼어 마음을 움직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더해서 마음을 울리고 그 울림이 퍼져서 머리를 적시고 작품을 만들어내거나 이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울림과 섞여 공명한다면 그 울림은 물결에서 너울이 되고 파도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반 클라이번 콩쿨 마지막날 임윤찬 연주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가 혼연일체가 되어서 공연장의 공기를 온통 흔들어놓고, 청중은 물론이고 멀리서 영상으로 감상하는 사람들의 주변 공기까지 변화시키고 있다는.
집중력과 몰입감, 일체감이 느껴지는 연주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60대 지휘자가 중간에 울먹울먹 하더니 연주가 끝난 다음에는 실제로 눈물까지 흘리는데, 가능성이 응축된 10대의 에너지와 신선함 같은 것들이 단순히 호흡이 잘 맞는 다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게 한 것 같다. 태블릿 조그만 창으로 감상하던 나조차도 뭉클하고 감격하게 만들었으니.
언젠가 임윤찬 공연을 꼭 한번 직접 가보고 싶다. 조성진처럼 표 구하는 것부터 어려워질까봐 걱정ㅠ (조성진 공연은 쇼팽 콩쿨 나가기 전에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 연주 딱 한번 보고 그 후론 매번 실패했다)
파이널 연주인 라흐마니노프 피협 3번 D minor.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고 있음ㅠ
https://youtu.be/DPJL488cfRw
이 공연 보면서 자꾸 생각 나는 공연이 또 하나 있어서 그것도 퍼왔다. 이 연주도 수도없이 돌려본건데, 가끔 달리기 할 때도 듣는다. 4악장은 템포나 극적인 멜로디나 러닝 음악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달음질쳐나간다. 이걸 듣는데 날씨마저 좋으면 달리는 기분이 한껏 고양되고 그 달리는 행위 자체가 아주 만족스러워진다.
역시 콩쿨임. 조성진 루빈스타인 콩쿨 파이널 A스테이지 브람스 콰르텟 G minor. 콰르텟 현악기 연주자들이랑 합이 너무 좋아서 숨 쉬는 타이밍도 맞춘 것 같다. 전에 문 선배랑 와인 한 잔 하면서 했던 얘긴데, 이런 연주를 직접 한다면 진짜 오르가즘 느끼지 않을까ㅋㅋㅋ
https://youtu.be/Iqtxa7IZ_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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