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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안 세상

육체 노동의 기쁨과 슬픔

로얄곰돌이 2024. 10. 14. 17:13

또다시 앞을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 왔다. 공부가 제일 쉬운 줄 알았는데 시험은 어렵다. 공부는 내 능력의 100%는 아닐지라도 90%는 한 것 같은데 멘탈이 문제인가, 컨디션이 문제인가, 원망할 수 있는 타인도 없어 스스로를 책망해야 하는 상태에 또 이르렀다. 그리고 '앞으로 뭘 하지?'라는 고민을 며칠 했더랬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불합격 가능성이 70% 이상이므로.

그래서 작년에 따 둔 양식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가지고 취뽀했다.(자격증이 밥 먹여 줍디다.) 약 40여명의 아기들의 건강과 미각을 책임지는 중책을 맡아서 근무하고 있다. 다행히 한 나절만 일하면 되고, 힘 쓸 일이 많지 않아서 체력적으로는 부담이 덜한데다 어쨌든 몸을 쓰는 일이라 골치 아플 일도 없고, 무엇보다 시간이 후딱후딱 가고, 일이 끝나면 '진짜' 퇴근이라 참 좋다. 가짜 퇴근은 뭐냐면, 분명히 몸은 퇴근 했는데 내일 쓸거리를 고민하고, 앞으로 도래할 어떤 날을 위해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 듣고 정보보고를 올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창업 후에는 제안서니 PT니 하는 것들을 더하고, 잠 자는 시간 빼놓고는 CS까지 추가돼 머리가 항상 스탠바이 상태라 얼마나 피곤했던지... 오랫동안 나도 퇴근이라는 걸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역시 진짜 퇴근을 하니 맘도 편하고 후련한 오후를 보낼 수 있다.

물론 기쁜일과 슬픈일은 균형을 맞추는 법, 뜻밖의 스트레스가 좀 있긴하다. 내 입맛과 다른 사람들 입맛이 다르다는 것? 물론 나의 요리 철학은 '먹는 사람이 맛있으면 장땡'이라는 거긴 한데, 스스로 이렇게 미각이 예민한지 이번에야 알았다. 소금이랑 설탕을 좀 많이 넣었다 싶으면 입에 짠 맛이랑 단 맛이 남아서 좀 찝찝할 정도인데 사람들이 너무 싱겁대ㅠ 더 짜고 달게 해달래... 정말 내 기준에서는 이렇게나 짜게 먹는다고? 싶을 정도여야 맛있다고들 한다. 새삼 조리기능사까지 땄던 연유를 돌이켜보니 식당 밥이 싫어서 내가 밥을 해먹다가 요리를 정식으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었어... 식당 밥이 일반적인 입맛에 맞춰져 있을테니 보통은 내가 한 음식은 싱겁게 느껴질 수밖에.

이 지점에서 며칠동안 고민을 좀 했다. 달고 짠 맛으로 먹는 거라면 그냥 다 같은 맛 아닌가?라는 게 내 입장. 특히 재료가 신선하면 간을 안 하는 게 더 좋지 않나? 투뿔 한우 구워서 소금 찍어 먹는 거 아깝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가요? 콩나물에 파랑 마늘 넣으면 입맛 버린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흠...?

뭐 입맛이야 어쨌든 먹는 사람들한테 맞추면 되는건데 더 중요한 고민은 아기들에게 단짠을 얼마만큼 먹여도 되는가 하는 점이다. 아기들도 짜야 잘 먹는다고 어차피 밖에 나가면 다 먹으니까 괜찮다고들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앞으로 100년은 살아내야 할 아기들이 매일 먹는 밥을 어른들 입맛에 맞춰서 줘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떨치기가 힘들다. 20대 당뇨병 환자가 늘었다는 뉴스도 본 것 같고... 일단 어느 정도 수준이 적당한지 데이터화를 좀 하려고 염도계를 사서 이것 저것 찔러 넣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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