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백 가지 의미 본문
나랑 정말 서로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랑 우리가 얼마나 다른 차원에서 얘기하고 있는지 짚어봤던 하루였다.
보통 남녀를 빗대 화성인, 금성인이라 하지만 그건 차이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각의 차원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고 할까.
백 사람에게는 백 사람의 우주가 있다고 하듯이 아무리 나를 이해해줄 것 같고 내가 100%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라도 저 우주에서 그나마 작은 존재라는 은하만큼 간극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절대로 상상조차 안 되는 내용들을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말하자면 ‘이 일이 될 것 같다는 게 51% 확신이 드니까 나는 이 일을 밀어붙이겠다’라고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책을 읽을 때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영화 사운드오브 뮤직 마지막 장면을 예로 들면, 나같은 사람은 배우들의 표정과 날씨, 흐드러지게 핀 에델바이스를 쉽게 떠올리지만 어떤 사람들은 심상 자체를 떠올릴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없다고 한다.
어쩌면 이 두가지 예의 어디 중간쯤에 있는 나는 양쪽 다 이해할 수가 없다. 중간자이지만 서로 이해 좀 해주세요~하는 것 말고는 어떤 중재도 불가능하다.
나같은 사람도 있다. 나는 절대로 마음을 숫자로 환산 못 한다. 나는 아직도 수치화가 능한 사람이 얘기하는 “51%의 확신이면 한다.”라는 말 뜻을 이해 못한다. 더 하고 싶은 것과 아닌 것,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과 아닌 것을 고르라면 고르겠지만 숫자로 환산할수는 없다. 그리고 수많은 영상속의, 또는 경험했던 장면들을 떠올리거나 혹은 경험하지 않은 것들도 상상으로 시뮬레이션 해보는 건 가능하다.
즉 나는 평균적인 보통의 인간이라는건데 그래서 내릴 수밖에 없는 결론이 이거다. ‘백명을 만나면 백가지 차원이 있다고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