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내 인생을 살기 본문

새로 안 세상

내 인생을 살기

로얄곰돌이 2018. 11. 9. 02:00

자기 길을 똑바로 잘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속은 참 복잡할 수 있다. 앞을 모르겠고, 자신도 없으니 주변 사람들한테 기대서 그들이 바라는 역할만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몇 년간 내가 그랬다. 

조금씩 회사 사람들에게서 마음 떼놓기를 하고 있다. 그들과 멀어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정체성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 나는 무엇을 할 때 즐겁고 행복한 인간인가를 좀 더 고민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사실 몇 년 전부터 문득문득 하긴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보니 나보다는 상대를 더 생각했던 것 같고, 많은 시간동안 타인을 위해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연락해서 '꾸역꾸역' 만나고, 또 돌아오는 길은 번민에 휩싸이길 반복했다. 출근하기 싫어서 일부러 이불 속에서 뒤척인 적도 여러번이다. 

이제 '일을 제대로 하려면 이정도는 감수해야지.'라거나 '다들 고생하는데 나라도 힘을 보태야지.' 따위 주문을 외우면서 그런 생활을 합리화 하는 것도 지쳤나보다. 얼마 전부터 마음 속에서 뭔가 끈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더니 선배들이 하는 말에 별 신경을 쓰지 않게 됐다. 동료 중 누군가가 심적으로 힘든 건 아닌지, 분위기를 좋게 잘 만들기 위해 내가 뭘 할까 등을 고민하지도 않게 됐고, 쓸데없이 사람에게 쏟던 관심도 끊었다. 

그리고 저녁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기 시작했다.(지난 10년간 내 생활을 돌이켜 보면 저녁 시간을 나만을 위해 쓴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어떻게 이런 마음을 먹게 됐는지 스스로도 참 신기하다. 내 뇌에 우울증에 걸린다거나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걸 방지해주는 보호회로 같은 게 있어서 나쁜 쪽으로 신호가 몰리면 그 회로를 딱 끊어주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미래를 상상하기 시작했고, 하고 싶은 일도 마구마구 떠오른다. 그래 이렇게 하다보면 뭐라도 되겠지. 

오늘은 퇴근 길에 몇달이나 미뤄뒀던 염색을 했다. 반찬가게 가서 좋아하는 나물들 사와고 계란찜 해서  술 없이 밥을 차려 먹었다. 저녁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는 게 참 행복하다.  


'새로 안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 가지 의미  (0) 2019.02.22
귀여운 동네  (0) 2019.01.23
이사완료  (0) 2018.10.08
할 수 있는 일  (0) 2018.08.13
헛짓거리 하기  (0) 2018.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