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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저물어 간다'라는 말이 예전에는 뭔가 닳고 기울어지는 느낌이라 싫었는데 가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해가 저물어야 푹 잘 수 있고 또 내일이 열린다는 걸 40년 넘게 경험해서 그런가보다. 2022년이 거의 저문 지금 시점도 꽤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인생에서 곱씹어볼만한 엄청난 실수를 해봤고, 그걸 다시 수습하는 과정을 한 번 더 치러야 하지만 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그럭저럭 할만한 것도 같다. 회사를 오가는 규칙적인 생활도 좀 도움이 된 것 같고. 올해 결산을 해보자면, 1) 규칙적인 생활이 주는 안정감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음. 저녁에 술 안 마시고 집에서 저녁 먹고 빨리 자는 거 정신건강에 매우 좋다. 장이 편안해짐. 2) 내 머리가 아직은 그래도 돌아간다는 대견함 같은 것..
신나게 공부 잘 해놓고 등신 짓거리를 한 덕분에 어이 없이 탈락하고 또 다시 시험 공부를 할 수밖에 없게 된 나. (30대말, 무직) 그런데 작년처럼 마냥 공부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돈이 떨어졌다. (10년 넘게 일했는데 거지야? 라고 물으신다면... 완전 빈털털이 아니고 당장 생활비로 쓸 수 있는 일반 예금 통장에 든 현금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제 돈 벌 줄 알고 남은 돈을 스페인 가서 홀랑홀랑 신나게, 재미나게 잘 썼다. 그리고 마침 7년 넘게 잘 쓰던 나의 소중한 그램이 운명을 달리 하셨다. 이번 기회에 진정한 앱등이로 거듭나면서 스타벅스 카공 입장 프리패스도 얻을 겸 맥북에어를 질렀고, 똑같은 거 한 번 더 공부하면 지겨울테니 모의고사라도 보자 싶어서 1월부터 시작하는 종합반을 끊었다...
작년 10월말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수험생 생활을 시작, 1차를 지나치게 잘 본 와중에 생동차생 답지 않게 모의고사 상위권을 달리면서(네가 이렇게 시건방 떨까봐 하느님이 속도조절 해준거다라는 사람도 있었음ㅠ 타고나게 자신감이 넘치는 데 어쩝니까…) 순조롭게 공부를 해 나갔다. 이틀간 답안지를 열나게, 문자 그대로 좔좔좔좔 외워서 졸라게 부다다다다다다 썼고, 선택과목에서 처음 보는 문제가 나와 좀 당황했으나 그럭저럭 기본 개념을 생각하면서 마무리 하고 시험장을 나왔다. 공부에는 후회가 없었고, 시험은 좀 후회스러운 점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시험 본 사람이라면 하는 후회가 아닐까. 지난주에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고 너무 황당해서 입을 못 다물었다. 한 과목이 0점 처리 돼서 다른 과목을 전부 잘 봤음에도 불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