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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2012년에 이렇게 적은 글이 있더라.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됐다는 건 그가 상징하는 바를 지향하는 사람이 그만큼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이라고. 그렇지만, 그를 지지하지 않는 1300만명 사람들이 뭉쳐서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 수 있으니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그 땐 젊고 행복했던 시절이라 그런가 세상은 장밋빛이었던 것 같다. 지난 주 선거 결과에 생각보다 크게 낙담했다. 며칠동안 너무 우울했다. 녹색정의당 지지 선언글들에 있던 표현들이 자꾸 떠올랐다. ‘힘든 투쟁을 이어가는 와중에 유일하게 현장을 찾아 곁에 있어 준 정치인’, ‘어려움을 호소할 때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당’. 이런 국회의원들이 이제 국회에서 사라졌는데 소수자, 약자들은 대체 어디 가서 누구에게 매달릴 수 있을까라는 안..
12월 15일에 봤던 양식조리기능사 실기 시험 합격했다. 나 따위가?!? 한 번에 합격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깜짝 놀랐네. 그래서 더 기쁘다^^ 이제 굶어죽진 않겠어. 서울 휘경동 산인공 본사에서 아침 8시반 첫 시간에 봤고, 1과제 홀랜다이즈 소스, 2과제 스페니쉬 오믈렛이 나왔다. 홀랜다이즈 소스 29점, 스페니쉬 오믈렛 28점, 안전위생 10점, 총 67점 맞았다. 정확한 평가 기준은 모르겠지만, 짐작컨대 1. 어려운 과제가 나와서 실수를 해도 점수가 덜 깎였다. 2. 비오는 날 아침 첫 시간이라 감독관님들도 좀 관대했다. 3. 위생, 안전 점수를 안 깎아먹었다. 라는 게 합격의 비결인 것 같다. 작업 순서 1. 양파 속만 먼저 채썰고 레몬즙 짜서 허브 에센스 끓이기 2. 에센스 끓는 동안 버터..
시간 있을 때 자격증을 좀 따놓자 싶어서 양식 조리기능사 학원에 다니고 있다. 필기는 기출 돌려서 무난하게 붙어놨는데 실기는 또 다른 영역이다.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못 해ㅠㅠ 칼질도 못해, 빨리 굽거나 끓이지도 못해... 맨날 정신없이 땀 뻘뻘 흘리면서 겨우겨우 완성 시키고 주위를 돌아보면 다른 사람들은 벌써 설거지까지 마치고 있다. 나 조리 디게 못하는 거였구나라는 걸 매일매일 확인한다. 그리고 요리하는 게 이렇게 힘든 거였나 싶은 게, 학원 마치고 나면 허기가 장난 아니다. 소화 안 된다고 징징거린 게 엊그제 같은데. 아무튼, 이름하야 '수제 파슬리 가루'를 만들게 됐는데, 왜 만들게 됐냐면 연습 좀 하겠다고 레시피마다 들어가는 파슬리, 샐러리, 월계수잎을 주문했는데 양을 가늠을 못해서 그냥 싼 ..
백수 2년차에 돈 안 버는 핑계인 수험 공부도 끝났고, 그냥 놀자니 좀이 쑤시고 때마침 돈도 없다. 그래서 뭘로 돈을 벌까 하다가 머리 쓰는 일은 하기 싫고, (하고 싶다고 시켜주는 건 아니지만) 쿠팡이랑 B마트 일용직을 해보니 관절 땜에 자주는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몸을 좀 적당히 쓸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지게차를 배워보기로 했다. 작년에 대형면허 따보려다가 4번이나 떨어지고 운전 관련해서는 자신감이 완전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지게차는 시험을 안 봐도 면허를 딸 수 있다는 희소식을 발견! 바로 수강 신청을 했다.(굴삭기나 로더도 1종 보통 있으면 강의 수료하면 소형 면허 발급이 가능하다) 준비물: 1종 보통 면허, 내일배움카드, 시간 내일배움카드 없이 면허 취득 과정 수료를 해도 되지..
컴퓨터 활용능력 시험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아르바이트로 해보려고 하는 일을 시작하려면 컴활 자격증 하나 정도는 있는 게 좋다는 조언을 봐서 컴활 2급을 따기로 했다. 이왕이면 1급을 따는 게 좋겠지만 일단 뭔지 아예 모르는 시험이니 2급을 우선 따봤다. 따고 나서 보니까 의외로 어렵지 않아서 이왕 할 거 1급이나 정보처리기사를 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컴활 2급은 모든 문제은행식 국가 시험의 기본 공부방법인 기출 뿌시기와 유튜브를 활용하면 며칠만 투자해도 수월하게 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양식, 한식 조리기능사 필기도 이틀 정도 기출+유투브를 병행해서 둘 다 80점 이상 맞았다.) 우선 필기. 나는 IT 분야 취재를 계속 해와서 PC, SW, 통신 관련 용어에는 익숙한 편이긴 ..
피아노 연주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도전하는 곡, 쇼팽 '즉흥 환상곡(Impromptu No.4 in C# minor)'을 연습하기 시작한지 어언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어린이들도 훌륭하게 연주할 정도로 그렇게 난이도가 높은 곡은 아니지만 로얄이는 체르니 40번에서 멈춰버린 실력...어릴 적에 조금만 더 열심히 배워서 베토벤이랑 쇼팽까지 진도를 나갔다면 참 좋았겠지만, 모차르트 소나타까지만 치고 콩쿨 한 번 나가보고는 질려서 이제 피아노 연습하기 싫다며 줄행랑을 쳐버렸었다. 참 어리석기도 해라. 그래서 왼손, 오른손 콩나물을 한땀 한땀 읽어가며 치기 시작한지 한 달여가 지났다. 아직도 손가락이 꼬이는 부분에서는 여전히 꼬이고, 틀리는 데서는 또 틀린다. 특히 저 3번째 줄 크레센도(cresc)부터..
조카님의 주/보조 양육자인 울 부모님이 여행을 가셔서 일주일간 육아라는 팔자에 없는 짓을 했다. 다시 말하자면 딸래미가 백수로 놀고 있는 덕분에 부모님이 여행을 가실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들 때까지 애한테 매여 있는 건 아니고,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서 아파트 입구에 나가서 데려오고, 간식 먹이고 좀 놀아주다가 저녁 먹이고 집으로 돌려보내면 되는 일정이다. 4세 어린이와 이렇게 오랜 시간을 둘만 지내본 적이 처음이라 느낀 점 몇 가지를 적어놓는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너무 어정쩡하다. 4시반에 돌아오는데 어디 일 보러 나갔다가도 3시만 되면 일어서서 후다닥 돌아와야 한다는 게 좀 스트레스... 오후에 뭘 할 수가 없음. -간식이랑 저녁 메뉴가 고민스럽다. 달고 짠 ..
지난 2년간 몸과 마음의 안식처였던 종로도서관이 휴관을 한단다. 올해는 시험 끝나도 어디 놀러도 안 가고 다시 도서관 다니면서 컴활 자격증도 따고, 영어랑 스페인어 공부도 하고 토지도 마저 빌려보고 어쩌고... 하는 계획을 세워놨는데 아쉽게 됐다. 집에서 30분 거리 내에 있는 공공 도서관을 전부 가보고 종로도서관을 아지트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게 약 2년 전이다.(그 때는 딱 1년이면 수험이 끝날 줄 알았더랬지. 1년만 해보고 안 되면 말자고 생각했는데... 미련이란 것이 참;;) 종로도서관은 열람실 삼면이 거의 통창 같은 넓은 창으로 돼 있어서 개방감도 좋고 책상도 오크색이라 따뜻하고 안락한 느낌이다. 창가에서 공부하다 고개를 들어 보면 저 멀리 남산 타워랑 키 크고 오래된 나무들을 보면서 눈을 쉴 ..
'저물어 간다'라는 말이 예전에는 뭔가 닳고 기울어지는 느낌이라 싫었는데 가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해가 저물어야 푹 잘 수 있고 또 내일이 열린다는 걸 40년 넘게 경험해서 그런가보다. 2022년이 거의 저문 지금 시점도 꽤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인생에서 곱씹어볼만한 엄청난 실수를 해봤고, 그걸 다시 수습하는 과정을 한 번 더 치러야 하지만 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그럭저럭 할만한 것도 같다. 회사를 오가는 규칙적인 생활도 좀 도움이 된 것 같고. 올해 결산을 해보자면, 1) 규칙적인 생활이 주는 안정감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음. 저녁에 술 안 마시고 집에서 저녁 먹고 빨리 자는 거 정신건강에 매우 좋다. 장이 편안해짐. 2) 내 머리가 아직은 그래도 돌아간다는 대견함 같은 것..
신나게 공부 잘 해놓고 등신 짓거리를 한 덕분에 어이 없이 탈락하고 또 다시 시험 공부를 할 수밖에 없게 된 나. (30대말, 무직) 그런데 작년처럼 마냥 공부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돈이 떨어졌다. (10년 넘게 일했는데 거지야? 라고 물으신다면... 완전 빈털털이 아니고 당장 생활비로 쓸 수 있는 일반 예금 통장에 든 현금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제 돈 벌 줄 알고 남은 돈을 스페인 가서 홀랑홀랑 신나게, 재미나게 잘 썼다. 그리고 마침 7년 넘게 잘 쓰던 나의 소중한 그램이 운명을 달리 하셨다. 이번 기회에 진정한 앱등이로 거듭나면서 스타벅스 카공 입장 프리패스도 얻을 겸 맥북에어를 질렀고, 똑같은 거 한 번 더 공부하면 지겨울테니 모의고사라도 보자 싶어서 1월부터 시작하는 종합반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