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새로 안 세상 (62)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작년 10월말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수험생 생활을 시작, 1차를 지나치게 잘 본 와중에 생동차생 답지 않게 모의고사 상위권을 달리면서(네가 이렇게 시건방 떨까봐 하느님이 속도조절 해준거다라는 사람도 있었음ㅠ 타고나게 자신감이 넘치는 데 어쩝니까…) 순조롭게 공부를 해 나갔다. 이틀간 답안지를 열나게, 문자 그대로 좔좔좔좔 외워서 졸라게 부다다다다다다 썼고, 선택과목에서 처음 보는 문제가 나와 좀 당황했으나 그럭저럭 기본 개념을 생각하면서 마무리 하고 시험장을 나왔다. 공부에는 후회가 없었고, 시험은 좀 후회스러운 점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시험 본 사람이라면 하는 후회가 아닐까. 지난주에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고 너무 황당해서 입을 못 다물었다. 한 과목이 0점 처리 돼서 다른 과목을 전부 잘 봤음에도 불구하..
시험 발표일이 다가올수록 자신감은 수직 하강하고 있다. 1년을 그렇게 외우고 외우고 또 외웠는데 그걸 제대로 못 썼다니...내 답안지만 생각하면 자괴감이 몰려온다. 합격과 불합격 확률을 굳이 숫자로 표현해보자면 49% 합격, 51% 불합격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못 놓고 애 태우고 잠도 잘 못잔다. 시험 전만 해도 이번에 못 붙으면 나는 다시 도전 안 한다! 라는 생각이었는데 다시 책을 뒤적거리는 걸 보면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갈대 같고 미련은 또 얼마나 인간을 헤매이게 하는가 싶다.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하는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무너져가는 정신력을 아예 해머로 때려부수는 짓을 몸소 찾아내서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대형 면허 시험. 오늘로 벌써 세번째 낙방했다ㅠ 유투브 보면서 ..
여행 많이 다니면서 여행기라고 할만한 걸 제대로 써 본 적이 드문데 시간이 많으니까 참 많이도 적게 된다. 일단 유명한 석양. 모루 정원이랑 세라 두 필라르 수도원, 도루강 남쪽 어귀에서 본 장면이다. 또한 유명한 동루이스 다리. 강변에 늘어선 와이너리들. 원래 와이너리 투어를 계획 했는데 돌아다니면서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셔서 투어는 안 하기로 했다. 기념품샵마다 보이는 정어리들. 귀엽다.
포르투갈의 진짜 풍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일단 조리된 요리는 좀 아닌 것 같다. 비쌀수록 뭔가 아쉬워지는 경험을 자꾸 하고 있다. 일단 와인의 도시 답게 와인은 어딜가나 무슨 종류를 골라도 다 맛있는 것은 절대적으로 인정!!! 숙소에 놓여진 웰컴 와인마저도 너무 맛있어서 황홀했다. 나타(에그타르트)랑 같이 파는 포트와인도 존맛ㅠ 마트에서 산 팩에 든 비노 데 틴토마저 맛있다. 자칫하다간 알콜중독될 것 같다. 포르투갈 맥주인 슈퍼복도 역시 맛있다. 특히 카페에서 술도 같이 파는 거 넘 내 스타일이다. 달달한 거 먹으면서 달달한 음료수 먹는 거 완전 싫은데 술이랑 같이 먹으니까 딱 좋다. 커피도 예술적이다. 오늘은 무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파는 곳을 발견해서 아아메를 한잔 때려줬는데 무슨 아아메가 이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전에 잠깐 여유를 두고 준비도 하고 포르투 구경도 하려고 포르투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관광지로서의 명성은 익히 들었는데, 숙소에 짐을 풀고 잠깐 걸어나갔는데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놀라웠다. 평일도 이정도라면 주말에는 어떻다는 거야?? 알고 보니 숙소가 번화가 바로 앞(볼량역)이었고, 도착한 날이 포르투갈 공휴일이라 그랬다고 하더라. 정말 어딜가나 사람이 북적이고 온 도시 전체에 음악이 흐르고… 좁은 골목들이 얼기설기 어지럽게 얽혀 있고 평지 없이 오르락 내리락해서 정신 없고 재미있는 도시라는 게 포르투에 대한 첫인상이다. 그래도 이틀동안 사람들 헤치면서 잘 다녔다ㅎㅎ 교통 수단도 버스, 지하철 말고 트램, 케이블카, 푸니쿨라(언덕 경사면을 오르는 레일) 등등 다양해서 골라탈 수 있..
어제밤 바르셀로나 도착해서 잠만 자고 바로 아침 비행기를 타고 포르투로 가서 공항에서 곧바로 버스 터미널로 이동해서 드디어 파티마에 입성했다. 길고 긴 이동이 끝나고 드디어 여행 다운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포르투갈 첫날은 전반적인 인상이 너무 좋다. 일단 사람들이 대체로 친절하다. 뭘 물어봐도 손짓 발짓 하면서 다 알려주고, 안 물어봐도 필요하면 알려준다. 공항에서 나오는 지하철 종점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내가 안 내리고 있으니까 앞에 앉았던 아주머니랑 아가씨가 내려야 한다고 막 알려줘서 다행히 잘 갈아탈 수 있었다. 포르투는 대형 관광지인데도 이렇게 외부인 친화적이라니! 꼭 부산 같은 느낌ㅋㅋㅋ 파티마로 와서는 그저 홀리하게 지냈다. 미사 참석하고, 성당 둘러보고, 저녁 촛불 예식 참석하고. 순례길의 ..
4년만에 바르셀로나에서 밤을 맞는다. 지난번이랑 출발 시각이 비슷한 것 같은데 이번엔 입국 수속하고 바로 나왔는데도 버스 정류장 도착하니 해가 이미 저물었다. 전엔 9월 초에 왔으니까 한달 남짓 차이가 참 크구나. 비행기 타는 것도 4년 전보다 훨씬 힘들었다. 드림라이너 787 완전 새 비행기에 좌석도 넓어지고 쾌적했는데도 관절 마디마디가 다 쑤신다. 젊었을 땐 비행기 길게 타는 것도 참 좋아하고 장거리도 창가에 앉아 가고 그랬는데 이제는 수시로 다리랑 허리를 풀어줘야 해서 창가석은 꿈 같은 얘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백수 주제에 비즈니스 탈 형편은 안 되고요. 음… 여행 첫날의 설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일기가 되어가고 있다. 이번 여행을 어떻게 계획했고, 뭘 기대하는지 등등 적는 것도 귀찮… 아..
넘넘 좋아하는 부산에 다녀왔다. 언제 가도 참 좋다. 경치도, 음식도, 교통 편의성도 뭐 하나 빠지는 거 없이 다 좋다. 갈 때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만 빼면…(안주가 좋아서 더 마시고, 담날 해장하려고 더 마시는 술을 부르는 고장이다) 부산 갈 때마다 도장깨기 하듯이 산을 하나씩 타고 있다.이번엔 설렁설렁 갈 수 있는 천마산을 골라봤는데 우왕~~!! 이렇게 좋은 곳이 이렇게도 안 알려졌다니 참 신기할 정도였다. 천마산은 둘레길이 잘 닦여 있고 정상까지 가는 비탈은 아주 짧아서 초보자가 다녀오기 딱 좋은 산이고, 가볍게 오른 것 치고는 너무 멋진 풍광을 선사해주는 고마운 산이다. 이전에 금정산, 장산, 황령산&금련산, 봉래산을 탔고, 그동안 올랐던 부산 산들도 다 경치가 좋았지만 천마산은 부산 시..
돌아온 탕아. 스페인어 공부하는 김에 한번 써봤는데 맞는지 모르겠다ㅋ 다시 카톨릭 신자가 됐다. 그동안 신앙심 깊은 엄마 덕에 성사표만 성당에 다녔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직접 고해성사를 봤다. 사실 그날 보려고 생각을 한 건 아닌데 고해소 문이 열려 있었고, 줄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됐고, 우리 동네가 아니라 좀 더 맘이 편했고 같이 간 문 선배가 이왕 온 거 성사 보고 가라고 하고 그런 저런 이유들 덕에 냉담자 딱지를 떼게 됐다. 냉담한지 몇년 만인지 기억도 안 나서 그냥 고해성사 본지 10년 넘었습니다. 라고 했다. 신부님이 엄청 격한 반응을 보이셨는데, 일단 누군가 한 사람을, 사제일지라도, 매우 기쁘고 설레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만으로도 참 보람찼고, 잘 왔구나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이 날..
시험 끝난지 이제 며칠이나 됐지? 어느새 열흘도 지났네. 새벽에 일어나서 씻고 아침 간단하게 먹고 도시락 싸서 도서관 가서 착석- 공부 - 점심 - 산책 - 공부 - 저녁 - 산책 - 공부 이런 스케줄을 몇 달간 했더니 몸이 적응해서 그런가 시험 후에 오히려 무기력증이 훅 몰려왔다. 시험 전엔 잠도 쿨쿨 잘 자다가 오히려 요즘엔 잠도 잘 안 오고… 이제는 답안지를 어떻게 썼는지도 가물가물 해져서 복기하면서 괴로워하는 빈도도 확 줄었고 시험은 먼 나라 얘기가 되어가고 있다. Que sera sera 라는 마음 가짐인데 해방감은 커녕 답답하고 힘도 안 나고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음ㅠ 목표가 없어져서 그런가 하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원래 목표나 계획을 갖고 사는 스타일이 아니었잖아?라는 결론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