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새로 안 세상 (79)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작년 말에 독일 출장이 잡힌 다음부터 온 신경은 출장 끝나고 나서 어디서 무얼할까에 쏠렸다. 단 이틀동안 어떻게든 재밌게 놀아야 한다는 생각이 거의 강박처럼 뇌리에 박혀서 이것저것 찾아봤다. 일단 이틀밖에 없으니 여러군데 갈 수는 없고, 지난번에 로맨틱가도 드라이브만 하고 못 가본 퓌센 노이슈반스타인 성을 가야겠다 싶었다. 그러면 결론은 알프스다! 알프스 여행기를 찾다가 우연히 독일 최고봉 츄크슈피체에 이글루 호텔이 있다는 걸 알게됐고, 생각해볼 것도 없이 바로 예약을 했다.(그 때 좀 더 생각을 해야 했어...) 첫날 독일 최정상에서 자고 그 다음날 퓌센에 가서 디즈니성을 본 다음 여유롭게 프랑크푸르트 인근 도시(하이델베르크나 만하임을 생각했었는데 결국 다름슈타트에서 잤다)로 가자고 맘 먹었다. 제..
팔자에 없을 줄 알았던 마케팅 업무를 맡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무려 전시회 참가 출장을 왔다. 물론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듯이 한국에서 보낸 전단지는 행사가 시작된 아직도 도착을 안 했고... 미리 그런 것도 확인 안 했다고 대표가 아침 댓바람부터 카톡전화로 타박하길래 원격 사표를 던질뻔 하기도. 그래서 내가 그냥 대행업체 쓰자고 했자나요... 처음으로 한국에서 유심을 사와서 써봤는데 전화가 안 터져서 더 속이 터졌다. 그나마 코트라 직원들이 견학 겸 전시장에 들른 덕에 큰 도움을 받았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할까ㅠ 열통이 터져서 여기서 유심을 새로 사서 끼웠다. 앞으로는 좀 비싸도 무조건 뱅기 내려서 공항에서 유심칩을 사도록 하자! 전단지로 긴 ..
나랑 정말 서로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랑 우리가 얼마나 다른 차원에서 얘기하고 있는지 짚어봤던 하루였다. 보통 남녀를 빗대 화성인, 금성인이라 하지만 그건 차이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각의 차원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고 할까. 백 사람에게는 백 사람의 우주가 있다고 하듯이 아무리 나를 이해해줄 것 같고 내가 100%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라도 저 우주에서 그나마 작은 존재라는 은하만큼 간극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절대로 상상조차 안 되는 내용들을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말하자면 ‘이 일이 될 것 같다는 게 51% 확신이 드니까 나는 이 일을 밀어붙이겠다’라고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책을 읽을 때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사..
가을에 새로 이사 온 동네에 감나무가 엄청 많길래 ‘저 감들은 누가 따가나?’ 했는데 어느 날 집에 들어가던 길에 같이 엘리베이터 타던 아주머니가 “감 안 갖고와?” 하시는거라. 그래서 “네?” 하고 어리둥절 하니까 “우편함에 감!” 하면서 “내가 엘리베이터 잡을 테니까 얼른 들고와!” 하셨다. 그제서야 돌아보니까 우편함마다 감이 두개씩 옹기종기 앉아 있더라. 요걸 갖고 와서 부엌에 그냥 놔뒀더니 어느새 익어서 말캉한 홍시가 됐다. 하나는 맥주 마시면서 홀홀 먹고 좀 늦게 익은 하나는 고구마 말랭이 사와서 찍어 먹었다. 와 그렇게 달달하고 아삭한 맛이라니! 온 동네 주민이 두개씩 나눠 먹고도 남은 감은 까치밥으로 남아서 겨울이 다 될 때까지 빨갛게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또 이번에는 집에 들어오는데 ..
자기 길을 똑바로 잘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속은 참 복잡할 수 있다. 앞을 모르겠고, 자신도 없으니 주변 사람들한테 기대서 그들이 바라는 역할만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몇 년간 내가 그랬다. 조금씩 회사 사람들에게서 마음 떼놓기를 하고 있다. 그들과 멀어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정체성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 나는 무엇을 할 때 즐겁고 행복한 인간인가를 좀 더 고민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사실 몇 년 전부터 문득문득 하긴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보니 나보다는 상대를 더 생각했던 것 같고, 많은 시간동안 타인을 위해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연락해서 '꾸역꾸역' 만나고, 또 돌아오는 길은 번민에 휩싸이길 반..
집 정리가 거의 끝났다. 집 구하러 다니고 이사 하고 이런저런 짐 들이고 추석 연휴 내내 정리만 하고. 그랬는데도 아직도 남은 게 있긴 하다. 고장난 가스렌지 내다버리고 새로 설치하기, 전선 정리하기(좀 멀리 빼야 할 때는 무조건 5m 짜리를 사야 고생을 덜 한다) 이사해서 좋은 점: 이제 그 노랭이 주인이랑 싸울 일이 없다. 보일러 분전반 수리비까지 반반 나눠 내자는 참 답 안 나오는 인간이었는데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은 인간 유형이다. 물욕 끝판왕과 상대하는 기분. 다행히 몇 번이나 지랄을 떨어댄 덕에 보증금은 순순히 받아낼 수 있었는데 집이 안 나가서 스트레스 받았던 걸 생각하면 아주 넌덜머리가 난다. 집주인 때문에 이사해야겠다고 맘을 먹었을 정도니 정말 큰 스트레스 거리가 사라진 셈. 거실이 생겼..
지난 주말은 열과 성을 다해 놀았다. 김 선배네 설악산 캠핑 가는데 껴서 놀기. 황작가랑 용산 노보텔 가서 호텔놀이 하기. 이케아 쇼핑 등등.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
인생에서 해본 헛짓거리를 나열하라고 하면 하루고 이틀이고 읊을 수 있는 사람이 꽤 많을게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내가 정의하는 헛짓거리는 '그 시점에 해야 하는 일을 안 하고 다른 짓을 하는 것'을 말한다. 살면서 아무 할일도 없는 적이 있었던가. 태어나서는 뒤집기와 배밀이, 일어서기 등 과업을 발달시기에 맞게 착실하게 수행해야 했고(그 때 안 하면 부모님이 걱정하신다. 우리 아빠는 발달시기가 지났는데 내 이가 나지 않으니까 헐레벌떡 치과에 쫓아 갔다가 "이 없는 사람 봤어요? 기다리면 다 날걸"라는 핀잔만 듣고 돌아왔다고...)유치원, 학교, 알바, 직장을 거치는 내내 할일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공부를 해야 하거나 일을 해야 하거나 일을 쉬면 새로운 일을 준비하거나... 아무튼 돌이켜..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등에서 근무하다 희귀병을 얻은 노동자들의 연대 반올림이 드디어 강남역 삼성 사옥 앞 농성을 1023일만에 끝냈다. 농성은 3년 남짓했지만 투쟁은 11년째다.나는 그 농성장에 취재를 갔었다. 이종란 노무사를 직접 만나서 그간의 투쟁 얘기와 반올림의 입장, 삼성의 행태 등을 낱낱이 들었다. 그 다음 직업병 관련 국회 토론회에도 갔다. 자랑스러워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여러 번 취재를 했지만 그들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대변할 수 있는-상대편에서 보기에는 편파적일수도 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내용은 결국 한번도 제대로 기사화 못했다.이유야 대라면 댈 수 있겠지만 참 궁색하다. 우리 회사 상황이 어떻고, 내 '공명심' 때문에 동료들을 다치게 할 수는 없고 등등 어떤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