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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안 세상

귀여운 동네

로얄곰돌이 2019. 1. 23. 23:34

가을에 새로 이사 온 동네에 감나무가 엄청 많길래 ‘저 감들은 누가 따가나?’ 했는데

어느 날 집에 들어가던 길에 같이 엘리베이터 타던 아주머니가 “감 안 갖고와?” 하시는거라. 그래서 “네?” 하고 어리둥절 하니까 “우편함에 감!” 하면서 “내가 엘리베이터 잡을 테니까 얼른 들고와!” 하셨다. 그제서야 돌아보니까 우편함마다 감이 두개씩 옹기종기 앉아 있더라.


요걸 갖고 와서 부엌에 그냥 놔뒀더니 어느새 익어서 말캉한 홍시가 됐다. 하나는 맥주 마시면서 홀홀 먹고 좀 늦게 익은 하나는 고구마 말랭이 사와서 찍어 먹었다. 와 그렇게 달달하고 아삭한 맛이라니! 온 동네 주민이 두개씩 나눠 먹고도 남은 감은 까치밥으로 남아서 겨울이 다 될 때까지 빨갛게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또 이번에는 집에 들어오는데 경비아저씨가 “잠깐!!!!잠깐!!!” 하면서 부르셨다. ”이거 사인 하고 가~” 뭔가 보니 쓰레기 봉투를 주신다.

관리비 받은 거에서 무슨 뭐가 남아서 암튼 남은 건 각 집마다 쓰레기 봉투(일반 종량제 봉투랑 음식물 쓰레기 봉투) 각각 10장씩 사서 나눠 주기로 했단다. 오! 안그래도 음쓰 다 떨어졌는데! 하면서 신나게 받아왔다.

90년대에 지어진 오래되고 낡고 평수도 좁은 아파트, 보통은 좀 더 좋은 곳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집. 그런데 여기 사니까 이렇게 소소한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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