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B급 좌파, 김규항 본문
내친 김에 B급 좌파.
김규항이 쓴 글을 2005년부터 시기별로 엮은 책이다.
지난 대선 때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은 자기 자식이나 부모, 형제도 이명박처럼 살길 바라세요'라는 글이 떠도는 걸 봤다.
물론 MB 지지자에 대한 원망에서 나온 얘기지만, 일견 맞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경영할 대통령을 만든 게 바로 그에게 한 표를 던진 우리 사회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 글을 열심히 들어가던 사이트에 퍼다 날랐다가 집중 포화를 맞았다. 주요 논거는 "이명박 지지자도 우리 부모 형제고 이웃이고... 네가 그렇게 쉽게 얘기하면서 비웃을 사람들이 아니다." 라는 것.
그 때는 그냥 글을 지우고 그 쪽과 상종 안 하는 걸로 나 혼자 마무리 지었지만 문득 이 일이 떠오를 때가 있는 걸 보면 꽤 느낀 바가 많았던 모양이다. 일단 나는 내가 되고 싶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뽑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게 아니라면 당연히 한 표 던지지 않았고, 않을 생각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하자면 자신과 자신이 던지는 표를 동떨어진 것으로 놓고 투표를 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이들이 표에 담는 철학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곱씹어 봐도 결국은 자신의 욕망이든 삶의 지표든 무언가가 들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투표소에 들어가서 그냥 장난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B급 좌파>를 선물 받아 추석 연휴 동안 읽었는데, 역시 사람은 지행합일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의외로 내가 김규항이 말하는 스펙트럼에서는 자유주의자 보다는 좌파쪽에 가깝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동안 양심에 난 섬모가 꽤 민감하게 움직이는데도 애써 무시해왔다. 이제는 좀 더 양심껏 살아보자는 생각도 든다. 물론 지금 내가 가진 어줍잖은 부와 지위라는 걸 버리는 게 참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음 몇 가지 더 찔리는 내용들은 따로 적어 뒀다.
지식과 교양)
그들은 이른바 주류 사회 핵심부의 고급 정보에 접근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세상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다는 착각에 깊이 빠져 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알량한 힘으로 '조질 것'을 고르다 보면 완장을 찬 무뢰한처럼 빠르게 자의식이 파괴되어 간다. 52p.
개념 흐리기)
왜 '주가'나 '재테크' 같은 말을 모르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서 '신자유주의'나 '좌파, 우파'는 "지식인들이나 쓰는 말"이어야 하는가?
'주가'나 '재테크' 따위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삶에서 떼어놓고 살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나 '좌파, 우파' 같은 개념을 삶에서 떼어놓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개념을 무시하거나 모를 순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개념이 가리키는 현실이 내 삶에서 생략되거나 사라지진 않는다.
명절이라고 집에 왔는데 엄마가 얼마 전에 성당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다. 모 신부님이 강론 시간에 정권 욕을 하고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것도 모자라 "지구의 에너지, 생태계" 운운 하며 에어컨을 끄고 미사를 본 바람에 신자 수가 절반으로 떨어져 나갔다고. 사목 위원들이 다 사퇴를 하고 교구에 탄원서가 들어갔다고 한다. 엄마 얘기론 "그래도 좀 산다는 사람들이 다니는 성당이라 이명박 욕하면 그렇게 듣기 싫어들 하더라."
지금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는지 알고 믿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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