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종로도서관의 추억 본문
지난 2년간 몸과 마음의 안식처였던 종로도서관이 휴관을 한단다. 올해는 시험 끝나도 어디 놀러도 안 가고 다시 도서관 다니면서 컴활 자격증도 따고, 영어랑 스페인어 공부도 하고 토지도 마저 빌려보고 어쩌고... 하는 계획을 세워놨는데 아쉽게 됐다.
집에서 30분 거리 내에 있는 공공 도서관을 전부 가보고 종로도서관을 아지트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게 약 2년 전이다.(그 때는 딱 1년이면 수험이 끝날 줄 알았더랬지. 1년만 해보고 안 되면 말자고 생각했는데... 미련이란 것이 참;;)
종로도서관은 열람실 삼면이 거의 통창 같은 넓은 창으로 돼 있어서 개방감도 좋고 책상도 오크색이라 따뜻하고 안락한 느낌이다. 창가에서 공부하다 고개를 들어 보면 저 멀리 남산 타워랑 키 크고 오래된 나무들을 보면서 눈을 쉴 수 있는 곳. 점심 먹고 인왕산 자락길을 따라 슬슬 걸을 때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실린 내음은 계절마다 다채로웠다. 가끔 경복궁이나 경희궁까지 걸어 가서 궁궐 한 켠에 있는 벤치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기도 하고, 공부 하기 싫을 땐 따릉이 타고 교보문고 가서 이 책 저 책 뒤적 거리다 오기도 했다. 도서관 문 닫을 때까지 공부하다 나와도 사직단 담장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서 은은하게 빛나는 조용한 골목길을 걸으면 지친 맘에 위로가 되기도 했다. 가끔씩은 내 인생에 이런 여유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때도 있었으니 시험이 주는 압박감을 달래기 참 좋은 장소다.
종로도서관에 대해 쓰고 있지만 사실 이 모든 건 수험 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황당한 실수로 1년 공부를 수포로 만들어 버리고, 1년을 다시 반복재생 하게 됐다. 참 지겨울만도 했는데, 그래도 여러가지 마음을 달래주는 것들을 찾은 게 위에 열거한 것들이다.
시험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누구나 어떤 시험이건 크고작은 후회가 있긴 하겠지만... 작년에는 공부에 들이는 공보다 점수가 잘 나온다고 느꼈다면(진짜 기고만장했음), 올해는 공은 더 많이 들이는데 항상 더 부족한 느낌에 시달렸다. 하면 할수록 더 이해하고 외울 게 많아지고 시험 직전까지도 돌머리 내지 머리속의 지우개와 싸움박질 하느라 힘들었다. 10년 넘게 글 써서 먹고 살았는데 왜 답안지는 그따위밖에 못 쓰는지 자괴감에 잠 못 자고 뒤척인 날들도 있다. 그런 기분은 시험 때까지 이어졌고 이미 답안지가 내 손을 떠나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왜 그걸 그렇게 썼을까, 왜 틀렸을까, 왜 마지막에 고쳤을까, 왜 그 단어를 썼을까 등등 수많은 후회가 밀려왔다 밀려가고 있다.
정확히 세번째 과목 문제지를 3문까지 읽은 직후에 '1년을 더 한다고 더 잘 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소진 된 탓도 있겠지만 암기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시험인데 암기는 할 수 있는 만큼 다 한 것 같고, 더 한다고 이 나이에 뇌용량이 늘어날 리도 없고, 한 달을 더 공부하든 1년을 더 공부하든 후회가 남을 수밖에 없을테니까. 소화력도 너무 떨어져서 살도 많이 빠지고 더 하면 진짜 해골바가지 될 것 같았다. 열심히 뛰어도 양껏 못 먹으니까 체력이 점점 축나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공부 자체는 재미있었고, 스터디 친구들도 잘 만나서 서로 응원도 해가면서 소박하게 즐기기도 했다. 합격하면 좋겠지만 못 해도 받아들이고, 인생 좋은 경험 했다 생각하자. 끝! (그래도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운이 좋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