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본문

감상 노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로얄곰돌이 2013. 7. 29. 00:49

 

 

 

상처 받을까봐 일부러 사람들이랑 거리를 두고 많은 일들을 무심하게, 쿨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 했던 적이 있었다. 눈에 띄지도 말고 색깔을 드러내지도 말고 무색무취하게. 나 때문에 아픈 사람도 없어야 하고 나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가졌던 것 같다.

30년 남짓밖에 안 되지만 이정도 살아보니 소외되는 아픔을 한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없고 그런 경험에 대해 특별히 주눅들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됐다. 그런 생각을 하면 묘하게도 안심이 된다고 할까. 또 사람 사이에서 배제되는 데 대한 두려움을 대충은 떨칠 수 있을 정도로 혼자 뭐든 하는 일에 익숙해지는데도 성공했다.

그래도 이 소설을 읽는 중간중간 가슴이 저릿저릿 아플 때가 꽤 있었는데, 과거 이별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나 외로웠던 기억이 날 때가 아니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상상이 불쑥 머릿속을 치고 들어올 때였다. 기억은 덮어버리거나 유적지가 풍화되듯 서서히 닳아 없어지게 만들 수 있지만 지금 진행형의 관계나 유대감이 허물어진다고 생각하면 미추어버릴 것 같아.ㅠ_ㅠ 

그러니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고 예뻐해주고 온 정성을 다 쏟기로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좋아했던 이유는 공동체와 따로 떨어져서 홀로 지내는데 익숙한 주인공을 보면서 위안할 수 있어서였는데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으니 이젠 오히려 좋아하는 인연들은 최선을 다해 붙잡아야겠다는 결의를 다지게 된다. 한 작가의 소설이 출간될 때마다 하나하나 읽어가는 건 정말 재미있다. 10년 넘는 세월동안 내가 변한 속도만큼은 아닐지라도 이 노작가도 많이 변했다는 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