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로얄 in 뉴욕 본문
사표를 집어던지지는 않고 곱게 봉투에 넣어서 두 손으로 드린 로얄.
그 다음날
슈우우우우웅~~ 슈웅~ 슝~~~~~
이젠 날아봅시다~!
저녁 비행기에다 전날 술 퍼마시고 늦게 자고 약속이 있어 일찍 일어난 터라 굉장히 피곤했다. 타자마자 나도 모르게 꼬르륵 잠이 들었는데 옆에 앉은 아저씨 오지랖이 장난이 아닌거라. "한국 사람이야? 난 일본사람인 줄 알았어"라고 한 마디 한 뒤부터 친한척을 시작했다. 한참 잘 자고 있는데 기내식 먹으라고 깨우고ㅠㅠ 뭐 딸 같아서 그랬겠지만...
계속 자다가 영화 보다가 책 읽다가 하면서 용케 대화를 피했는데, 공항에 도착해서가 문제였다. 주기장에 다른 비행기가 있어서 30분 기다리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계속 도킹이 늦어지면서 두시간을 그대로 보내야 했던 것. 이제는 내릴 거니까 옛다 관심~ 하고 "이렇게 멀리 오셔서 또 환승하세요?"라고 물었더니 그때부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신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잘나가는 대기업을 두루 거친 다음 이민을 결심했지만 IMF 때문에 한 해 미뤄서 캐나다로 이민을 갔고 아이들은 다 좋은 대학 보내고 본인도 정부 지원을 받아서 공부까지 한다는 훈훈한 얘기로 끝을 맺었으면 좋았을텐데 성경말씀 얘기를 시작한 다음부터는 로얄이는 범접하기 힘든 신앙에 대한 영역이라 솔직히 대화하는 게 고역이었다. 결국 결론은 박정희가 대단했다는데까지 이어져서 땀을 뻘뻘흘리고 있는데 다행히 비행기가 움직였다. 나도 나중에 크면 내 인생과 신앙을 자랑하고 싶어질까? 솔직히 지금까지는 내 인생에 그렇게 자랑할만한 거리가 없어서 그다지 다음 세대에게 해줄 말은 없을 것 같긴 하다. 일 물어보는 회사 후배 상대하기도 벅찼던 마당이니...
뉴욕에 가면 열심히 일하고 싶어진다는 얘길 듣고 왔다. 그런데 어찌나 추운지 꽁꽁 싸매고 다녀도 바람이 어딘지 모를 구멍을 찾아내 몸을 식히고, 움직이고 싶은 의욕을 떨어뜨린다. 혹한을 견디면서 뉴욕, 어디까지 가볼 수 있을까?
교환학생 마치고 마지막 한달동안 미국 일주를 했다는 학생이랑 방을 같이 쓰게 됐는데, 같이 맥주 한잔 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준비를 많이 해왔는지 어디어디 가봐야 하는지, 뮤지컬 티켓은 어디서 예매하는 게 좋은지 등등 정보를 얻었다.
이런 저런 얘길 하면서 자꾸 이것저것 비교해보고 싼 쪽으로 결정하게 되는데, 당장 이번달 월급이 안 들어온다는 걸 의식하고부터 평소답지 않게 알뜰해지고 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길을 잃지는 않을까? 사고가 나진 않을까? 오션이한테 사다주기로한 토마스 손목시계는 구할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 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뉴욕, 20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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