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감상 노트 (67)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때는 1994년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온 션자이와 커징텅. 커징텅과 그 친구 무리는 모두 모범생에 예쁘기까지 한(커징텅은 별로 안 예쁘다고 표현하지만) 션자이를 좋아한다. 션자이는 그들 모두 유치하다고 무시하는 콧대 센 반장이다.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션자이는 커징텅을 좋아하고, 평강공주가 돼 그를 공부시킨다. 아련하고 따뜻한 이야기인데 초반부랑 중간중간 아메리칸파이 스타일 개그를 집어 넣어서 좀 깬다. 션자이가 끊임 없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영화는 아주 유치하다. 일부러 유치하려고 노력한 듯 보이기까지... 그래도 영화관을 나오면서 기분이 흐뭇했던 이유는 그 유치한 게 재미있고 즐거워서겠지. 한국처럼 대만에서도 30대들의 학창시절, 그러니까 90년대 중후반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청춘물이 유행인가..
페북 친구가 타임라인에 올려줘서 보게 된 영상. 달리와 디즈니가 만나 만든 애니메이션 다. 1945년 시작된 프로젝트는 전쟁 여파로 재정이 어려워져서 중단됐고 2003년에야 제작이 완료됐다고. 영상만 언뜻 봐서는 '각자의 개성이 잘 살아난 영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배경지식 없이 내용을 해석해보려 하니 이해하기 난감하다. 이 작품은 그리스 신화 속 '크로노스(Chronos)'를 다뤘다. 크로노스는 하늘을 다스리는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자식이다. 크로노스는 어머니의 명을 받고 키클로페스(외눈 거인)를 지옥에 가둔 우라노스를 습격하고 왕이된다. 크로노스는 누이 레아와 결혼해서 6명의 자식을 낳지만 자식에게 왕위를 찬탈 당한다는 신탁을 받고 자식들을 삼켜버린다. 막내 제우스가 태어났을 때 레..
"야이새끼들아, 뭐가 무서워? 뭐가 무서워서 안 들어가고 있어?"(정확하지 않다.) 영화를 보면 법정에서 심문할 때 검사들 목소리에 실린 감정이 읽힌다. 하나도 무서울 게 없는 것처럼 큰소리 탕탕 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좀 도망가는 듯한 느낌. 천상천하 유아독존일 것 같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사실은 잃을 게 너무 많아서 무서울거다.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도 그랬을 것 같다. 그렇다면 위의 저 말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형태로든 권력에 부역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해야 할 말이 아닐까. 나를 비롯하여. 금요일마다 상상마당에 가서 6시 25분 영화를 보는 게 습관처럼 굳어지려고 한다. 이것도 지금 부서에서나 맛볼 수 있는 잠깐의 여유겠거니. 영화 보고나서 술이 너무 땡겨서 여기저기 전화를 해봤는데 다 차였..
무라카미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는 그 중에서도 좀 더 특별나다. 채소의 기분을 이해하는 작가라니, 내가 곰인형을 데리고 노는것도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 많은데 하루키처럼 아예 그런 차원을 넘을 정도로 기발하게 생각해 버리면 아무도 뭐라고 말 못하고 그냥 잠자코 인정하게 되는 것 같다. 소설에서도 그냥 정어리 비를 뿌리고 세계의 끝에서 나오는 문을 막아 버리질 않나. 달은 두 개가 뜨고... 이렇게 쓰고 보니 꼭 SF 작가인 것 같구나. 를 읽다가 마빈게이와 타미 테렐의 '유어 프레셔스 러브'를 찾아 들었다. 이제 안주 한 개 만큼 사랑을 더 이해한다.
쌍용차 사태를 설명하는 사진은 딱 세 장이면 될 것 같다. (출처: 미디어충청) 권력이 인권을 유린하는 사회 (출처:뉴시스) 자본이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사회 (출처:경향신문) 기득권이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 p.s 이 책 역시 선물 받은 것. 대학 신입생이 운동권 선배한테 의식화 '당하듯이' 요즘 선배가 주는 책을 하나하나 받아서 꼬박꼬박 읽고 있다. 사실 이 선배랑은 함께 공부하는 기분으로 여러가지 문제들을 읽고 이야기도 나누는데 이런저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정말 좋다. (그런데 공지영 작가는 정말 트위터 안 했으면 좋겠다. 책 읽기 전에 하종강씨와 벌였던 트위터 설전을 보고 기가 찼다...;;;) 그리고 책에 인용된 시가 마음에 와 닿아서 적어 둔다. 정호승, ..
모성(母性)은 여자에게 주어진 것인가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인가. 모성이 자식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작용하고 기능할 수 있을까. 살인자(혹은 비슷한 류의 강력 범죄자)의 어머니에게 돌을 던지는 행위는 정당한 것인가. 에이씨, 모르겠다. 우울하다 우울하다 우울하도다. "영화 보고 밥이나 먹자"고 만났다가 영화 땜에 꿀꿀해서 술만 진탕 퍼 마셨다. 줄거리는 오지 탐험도 다니고 자유롭게 살던 영혼인 에바라는 여자가 피임을 안 하고 남친이랑 잔 덕분에 원치않는 임신을 하게 되고, 그래서 태어난 아이가 자라서 큰 사고를 친다는 내용이다. 함께 영화를 본 선배는 "바라지 않는 임신이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도 "갓난아이 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모자 사이가 걷잡을 수 없이 엇나가버린 것"이라고..
근대 철학의 문을 연 데카르트가 그랬듯이 이 영화는 문제설정부터 시작한다. I was looking for an answer. It's the question that drives us, Neo. It's the question that brought you here. You know the question, just as I did.(나는 답을 찾고 있었어. 우리를 이끌어가는 건 바로 질문이야, 네오. 질문이 바로 너를 여기로 데려온 거야. 너는 그 질문을 알고 있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때까지 의심했던 소크라테스처럼, 그리고 그 이후의 철학자들처럼 영화는 세상에 대해 회의하게 만든다. 인간이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시공간이 사실은 기계들이 인간을 배터리로 사용하기 위해 프로그..
얼마 전에 선배랑 얘기하다가 쉽고 재밌게 쓰여졌다는 말을 들은 차에 칸초네 집에 놀러 갔더니 이 책이 꽂혀 있는 게 아닌가. 바로 빌려 왔다. 좀 어려워서 읽다가 중간에 다른 책을 먼저 읽기를 여러차례. 그래도 꾸역꾸역 읽어서 드디어 끝을 봤다. 대학 입학했을 때 인문대이니만큼 문사철을 논하는 학회들이 여럿 있었는데 신입생들에게 제일 인기가 많던 학회에서 첫번째로 쓰던 커리가 였다. 잘 놀고 잘생긴 선배들(당연히 학생회 주축이기도 했다)이 많아 학생들이 그 학회로 몰렸지만 난 다른 쪽에 들어갔고 당연히 이 책은 관심 밖으로 멀어졌었다. 아무튼 철학 입문서로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 책이 쓰여진 지 10년 가까이 된 그 시절에도 쓰일 정도였으니.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해서 푸코까지 서양 철학사를 한 권에 압..
선물 해 준 사람이 써 준 메시지가 감동적인 책.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중년에 이른 기자로, 1990년대 말 직접 '워킹 푸어'의 삶 속에 들어가서 그 체험기를 생생하게 적어낸다. 그리고 미국에서 보장하는 최저임금제가 한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조건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 저소득층의 빈곤은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 저소득층을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 한겨레21에서 기획으로 내보냈던 '노동 OTL' 시리즈의 원형 정도 되겠다. 워킹 푸어의 문제점에 대해 익히 들어 온 사람으로서는 읽으나 안 읽으나 예상 가능한 뻔한 결론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종종 전율을 느꼈다. 작가가 묘사한 저소득층의 삶은 아무리 알고 있는 이야기라 ..
-김훈 선생은 겨울만 되면 훗카이도에 갔을 때의 일화를 말씀하시곤 한다. "겨우내 눈이 몇 미터씩 쌓이지." 거기까지는 나도 '아마 그렇게 되겠지요'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계속되는 말씀이란 "그래서 사람들은 땅굴처럼 눈을 파면서 술집을 찾아다니지. 그 굴을 따라가다 보면 한 쪽에 등불이 켜져 있는데, 거기가 바로 술집이야. 술집으로 들어가면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샤미센을 치면서 정종을 팔아." 거기까지 들으면 좀 의아해진다. "샤미센을 친다고요?" "그렇지, 샤미센을." 천연덕스럽게 선생은 말한다. -그 밤에 나는 "인생은 너무나 길어요"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다.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이에요." 그런 말도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13년 전에만 해도 나는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