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감상 노트 (67)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회사 선배랑 몇 달 전부터 등산 가자고 약속을 잡았다가 못 가고 못가고 겨우 오늘 시간을 맞췄는데 비가 그치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부슬비라 우산 받치고 슬슬 걸어도 괜찮겠다 했는데 막상 나가보기 바람 때문에 빗줄기가 풀풀 날려서 걸어다니기 과히 좋지 않았다. 카페에 가서 마이클샌델 교수가 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나 마저 읽었다. '주말에 어디로 갈까?'하는 건 나한텐 꽤 심각한 문제다. 좁은 집에 있기는 갑갑하고 어디든 가서 책이라도 읽을 곳을 찾아야 하는데 딱 마음을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창을 환하게 열어 젖힌 카페가 있길래 자리를 잡았다. 까페라떼 한 잔에 3700원. 비는 촉촉하게 내리고 내겐 자리가 있고 주말이라 여유있고. 이런 기분을 느끼는 데 3700원을 내..
이반클리마, 알로이스 이라세크, 구스타프 마이링크, 에곤 에르빈 키쉬, 미할 아이바스, 프란츠 카프카, 야로슬라프 하셰크, 얀 네루다, 이르지 카라세크 제 르보빅, 카렐 차페크, 이르지 바일, 요세프 슈크보레츠키, 야힘 토폴, 다니엘라 호드로바... 체코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프라하를 배경으로 쓴 소설들을 묶은 책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에 차례로 점령당하고 땅을 되찾았다가 공산 혁명의 붉은 깃발 아래 놓였다가 또다시 혁명.. 작가들이 묘사하는 프라하를 읽다보면 유럽의 심장으로 불리는 프라하가 겪은 영욕의 세월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한 인종이 스쳐지나간 프라하 거리는 첨탑들 덕분에 아름답지만 골목은 우중충하고 한편으로는 몽롱한 느낌일것이다. 또 길을 걷다가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해도 '..
(푸른 곰팡이,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페이스북으로 프라하에 있는 사람에게 실시간 메시지를 보내면서 생각했다. 정말 좋은 세상이라고, 그런데 한편으로 이메일을 보내 놓고 기다리다 받은 답장만큼 즐겁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곱게곱게 쓴 편지를 보내고 편지가 걷는 길을 상상하며 답장을 기다리던 때가 언제였던가.
중국에 대한 세계인의 생각은 두 가지다. 전세계 가장 많은 인구를 가졌고 넓은 영토와 광물자원을 보유한 나라가 패권을 쥐게 됐을 때 벌어질 세계정세 변화에 대한 우려가 한 가지, 또 하나는 아직 개발도상국인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과하게 깎아내리는 것. 두 가지 시선이 사실은 한 가지 지점에서 맞닿는다. 중국은 발전하고 있고 세계 정치,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는 것. 특히 제 2차대전 종식 후부터 패권을 쥔 미국과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가 주요한 관심사다. ㅈ금은 새로운 냉전을 불러올 수도, 또는 평화와 협력으로 나갈 수도 있는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문정인 교수는 중국 석학들과 1대1 대담을 통해 각자의 생각을 들었다. 결론적으로 중국이라는 거대한 유기체는 단 한사람의 학자의 생각..
김연수가 겪고 읽은 것들을 엮어서 모아 놓은 책이다. 작가는 기억할만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예전에 읽었던 글귀가 떠오르곤 하는 걸까. 김연수가 기억하는 문장들을 한번에 모아서 보노라니 이 작가는 세월이 흐르는 것, 잡을 수 없지만 붙잡아두고 싶은 것들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김연수 뿐만 아니라 사람이 서른이 넘어가고 어느정도 나이가 들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부터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언제 어디서고 인식하게 된다. 시간이라는 게 눈앞에서 얼쩡거리면서 사람을 애타게 한다. 김연수는 두보, 이덕무, 랭보 등 예전 시인들이 쓴 내용을 주로 인용하고 있다. 한시는 한자를 다 적어뒀는데 번역만 읽어야 해서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든다. 중고등학교 때 한문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그 땐 왜 그렇게 재미가 없었는지 모..
원더보이를 읽고 이 시대 최고의 작가를 꼽으라면 김연수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80년대 중반, 주민 여럿을 살해한 강도의 차가 정훈이 아빠가 운전하던 차를 들이 받았다. 아빠는 그 자리에서 사망, 권력에 욕심이 있던 권대령이라는 작자는 그 강도를 간첩으로, 살아난 정훈이를 원더보이로 만든다. 정훈은 그 사건 이후로 사람들의 생각이 들리기 시작하고, 이 때문에 매일 고문 당하는 사람들이 내지르는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세상의 끝, 여자친구에서 작가는 소통, 그러니까 고통까지도 이해하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끝없이 썼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때 사람 사이 진정한 소통이 이뤄진다고 생각한 것 같다. 달로 간 코미디언에서 코미디언의 발자취를 추적해 간 딸과 장님의 말을 통해 어느정도 고통에 대한 이해해 다..
김연수 중단편 단행본 '세계의 끝 여자친구' 마지막에 수록된 '달로 간 코미디언'을 읽고. 부모님의 삶을 맨 처음 떠올려 본 게 언제였더라. 대학에 들어가고도 한참 지났을 때였다. 친하게 지내던 선배들이 하나 둘 결혼 하는 걸 보면서, 또 결혼 후 내 삶을 상상해보기 시작한 뒤인 것 같다. 어느날 불현듯 머리를 파고드는 질문이 있었다. '엄마 아빠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전까지 내 세계에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은 텅 빈 공간이었다. 아니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봐도 되겠다.... 이 질문을 떠올렸을 때부터 가끔씩 부모님이 들려주던 옛이야기를 곱씹으며 50년 남짓한 인생을 공감하려 애써 봤다. 그런데 좋은 일, 자랑스러운 일은 금세 이해가 됐지만 어떤 고통이 그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