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본문
김연수가 겪고 읽은 것들을 엮어서 모아 놓은 책이다. 작가는 기억할만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예전에 읽었던 글귀가 떠오르곤 하는 걸까. 김연수가 기억하는 문장들을 한번에 모아서 보노라니 이 작가는 세월이 흐르는 것, 잡을 수 없지만 붙잡아두고 싶은 것들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김연수 뿐만 아니라 사람이 서른이 넘어가고 어느정도 나이가 들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부터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언제 어디서고 인식하게 된다. 시간이라는 게 눈앞에서 얼쩡거리면서 사람을 애타게 한다.
김연수는 두보, 이덕무, 랭보 등 예전 시인들이 쓴 내용을 주로 인용하고 있다. 한시는 한자를 다 적어뒀는데 번역만 읽어야 해서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든다. 중고등학교 때 한문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그 땐 왜 그렇게 재미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왜 한문이든 국문이든 왜 그렇게 재미 없게 가르쳤는지 모르겠다.
-34p. 그나마 삶이 마음에 드는 것은, 첫째 모든 것은 어쨌든 지나간다는 것, 둘째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39p.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푸른 하늘에도 별은 떠 있듯 평온한 이 삶의 곳곳에는 죽음이라는 웅덩이가 숨어 있다.
-51p. 실록은 왕이 (그 정직함을 미워해) 결국 그를 죽이니 그 나이는 26세 때였다고 간단하게 전한다. 실록이 전하지 않는, 그 열 글자 속에 숨은 스물여섯 살의 회한과 아쉬움과 슬픔을 헤아리는 것은 모두 다 내 몫이다. 카드 결제일과 원고 마감일 같은 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이런 것까지 마음속에 짊어지고 살아야 하니 여간 고달픈 인생이 아니다... 큰 얘기에만 관심을 두던 20대가 지나고 나니 사람의 한 쪽 귀퉁이에 남은 주름이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주름이나 흔적처럼 살아가다가 사라진다. 머리로는 그걸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니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목이 매는 구차한 짓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51p.
-130p. 한 조각 꽃이 져도 봄빛이 깎이거니/바람 불어 만 조각 흩어지니 시름 어이 견디리/스러지는 꽃잎 내 눈을 스치는 걸 바라보노라면/많이 마셔 물린 술이나마 머금는 일 마다하랴. <두보, 곡강 이수>
-봄빛이 짙어지면 이슬이 무거워지는구나. 그렇구나. 이슬이 무거워 난초 이파리 지그시 고개를 수그리는구나. 누구도 그걸 막을 사람은 없구나.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그래서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자라는구나.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온 곳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이구나. 울어도 좋고, 서러워해도 좋지만,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게 삶이로구나.
이상은 내가 찾아낸 김연수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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