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예전 글/벽 보고 말하는 로얄 (72)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일신상에 변화가 있을 당시, 전혀 통보를 받지 못한 상태였고 거의 '스테이' 확약을 받았기 때문에 많이 당황 했었다. 어떻게 개인에게는 아주 중요한 그런 일들이 하루 아침에, 그것도 공고나기 몇 시간 전에 뒤집힐 수 있는 거지? 아무튼 나는 뭐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어쩔 수 없는거라 생각하고 "왜 옮기게 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우스게 소리로 "제가 일을 잘 못해서 그렇게 됐네요^^"라고 말했었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 말이 농담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표면적으로야 옮기는 게 별 일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밀려나는 모양새라 몇몇 선배들은 날 불러서 위로하고 술도 사줬다. 그 다음 우연하게 왜 그런 어이 없는 일이 이뤄졌는지 과정을 상세하게 알게 됐는데, 그 때도 뭐 그러려니 넘어갔다...
얼마 전에 어떤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는 A씨와 잠깐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대학생이고, 졸업반이며 휴학을 하고 그 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인턴 월급이 얼마냐?고 묻자 80만원이고 세금을 제하고 나면 70만원대라고 한다. 그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외국계 자본이 한국에 만든 계열사고, 그들은 스스로를 '스타트업', 즉 창업 초기 기업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일반적인 대기업 계열사나 외국계 기업 한국 지사나 별 다른 점은 없다. 여기 경영진들은 외국계 자본에서 1억원 넘는 연봉을 받고 일정 지분을 부여 받았다.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회사가 돈을 못 벌면 창업자도 돈을 못 버는 일반적인 형태의 벤처회사와는 다르다.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고 회사가 돈을 벌면 성과급도 받을 수 있는데다 회..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를 봤었지.(원곡은 콜 포터Cole Porter, 리메이크는 코날 포크스Conal Fawkes.. 영화 속에서는 콜 포터 캐릭터가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이 노래를 부른다.) 새도 하고, 벌도 하고, 교육받은 벼룩도 하는 그것. 어제 우연하게 손에 들어 온 책. 정호승, 안도현, 장석남, 하응백이 함께 엮었다. '시인은 청춘에 만들어진다'라며 그들이 청춘시절 빠져 읽었던 시와 얽힌 일들을 썼다. (안타깝게도 몇몇 시는 책에 안 나와 있어서 따로 찾아봐야 한다) 정호승 시인이 소개한 를 하루 종일 반복해서 읽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호적에 잉크도 안 말랐다는 게 우리 션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 태어난 지 50일! 축하 벌써 많이 컸다. 마냥 이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보면 볼수록 하는 짓이 넘 웃겨.ㅋㅋㅋ 잘 때도 꼭 입벌리고 널부러져서 자고, 사람들 오면 자는척 하면서 실눈 뜨고 얼굴 확인하고 다시 감는다. 이렇게 아기가 많이 먹고 많이 싸는 줄 몰랐었지. 날이갈수록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있다. 아기가 있으니까 우리집이랑 사돈네 식구들 모두가 들여다 보면서 행복해 한다. 션이는 이런 마법같은 순간들은 기억도 못하겠지. 그래도 빨리 커서 말도 좀 하고 고모한테 까불었으면 좋겠다.
성당에 나가지 않기 시작한 것도, 성당에 다시 나간 것도 사실 별 이유가 없었다. 그 때는 바빴고, 주말마다 회사에 출근해야 했던 거고 지금은 여유가 생겼고 또 성당이 그리 멀지 않은데다 밤늦게 저녁 미사가 하나 더 있어서. 저녁 먹으면서 맥주를 드링킹하다가 '성당에나 가볼까'라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 술냄새 풀풀 풍기면서 갔다. 하도 오랜만이라 가서 그냥 미사만 하고 와야지 생각했는데 성당 문 들어서자 마자 수녀님이 귀신같이 알아보시고 "고해성사 해야 하는 건가?"이라고 물으심.ㅠㅠ "저 준비를 안 하고 왔는...."데고 자시고 그냥 온 김에 보고 가라고 하셔서 얼떨결에 지난날을 반성하고 생각 나는 걸 털어 놓고 나왔다. 그리고 앞으로 나의 홀리 라이프가 다시 시작되는거다. 예수쟁이 싫어하는 내가 그래도..
배트맨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보기 전에 예습. 그러고 보니 배트맨 비긴즈도, 다크나이즈도 안 봤다. 모든 사람이 히스레저 이야기를 할 때 "뭥미?"하고 있었으니 외톨이가 되는 건 이유가 있는 듯. 쩝. 보통 차는 날렵한 걸 좋아하는데 배트맨 차는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잘 빠졌다. 하루키 소설 에 나오는 '뚱뚱하지만 몸매가 좋은 여자'를 보는 느낌이랄까. 매력 넘친다.(음 근데 뚱뚱하지만 몸매가 좋은 남자는 왜 상상이 안 되지?) 영웅 시리즈는 언제 봐도 재미있다. 터지고 불타고 깨지는 걸 보면서 함께 아드레날린을 뿜어내는 기분도 좋고 근육맨 영웅이 툭탁거리면서 싸우는 장면은 역시 볼거리~! 무슨 리뷰가 필요할 쏘냐. 그냥 보고 재밌으면 끝!(솔직히 두 편 연달아 보고 나서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결론은 인..
46층에서 본 서울. 옅은 하늘을 배경으로 뭉개 구름이 피어올랐다. 그 아래 말갛게 빛나는 서울. 파란 유리를 깔아놓은 것처럼 광택이 흐르는 한강물. 야트막한 산이 스카이라인 뒤로 굽이 친다. 더울 때 태어나서 고생하는 사과. 고모가 준 엉덩이 발진 크림 덕분에 피부 트러블 없이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야!
국회 도서관에 다녀왔다. 작렬하는 태양, 새하얗게 빛나는 땅에서 올라오는 김, 선명한 초록빛, 땀. 이런 날 하늘을 볼 때면 생각나는 장면들. 이방인에서 장례 행렬이 뜨거운 태양 아래 걸어가는 모습, 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에 등장하는 조각조각 씬들... 그리고 이를 달래줄 수 있을 것 같은 맥주 한 잔. 잔에는 수증기가 닿아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혀 있어야 한다. 오늘 나는 일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안 하는 것 같은 일을 했다. 금요일 저녁에는 일로 만난 것 같으면서도 놀려고 만난 것 같은 사람들이랑 술을 코가 벌게지도록 마시고 새벽에야 집에 들어 왔다. 복날에는 일로 만난 사람들이랑 신나게 서오릉까지 가서 유명하다는 장작구이 닭구이를 먹고 오질 않나. 그리고 난 언제나 책을 한 권씩 들고 다니면서 읽다가..
야구 팬이라면 진작에 봤어야 하지만... 이제야 봤다. 매력남 브래드피트가 연기한 실존 인물 빌리빈의 생각은 맞았지만 그를 열렬히 응원할 수 없었던 이유는, 애슬레틱스가 결국 그래서 우승을 했냐? 하면 못했다. 라는 것도 있지만 정량적 평가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요즘 일신상 사정 때문에 정량 평가라면 거의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은데 이걸 찬양하는 영화에 어찌 공감만 할 수 있으랴. 그리고 나는 기본적으로 야구는 이긴다고 다 재밌는 건 아니고 흥이 나는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한국에도 이미 프로 팀이 모두 머니볼 이론을 적용해서 각종 통계를 동원하고 있지만 결국 야구가 제일 재미있을 때는 의외의 한방, 의외의 호투, 의외의 호수비 등이 나와 줄 때니까. "이기는 게 재밌는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
한번 사는 인생이라 미련이 많다. 바라는 것도 많고, 실망할 일도 많고 괜한 기대도 했다가 오해도 했다가 그러면서 사람 살이를 하나하나 배우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나는 보통은 혼자 지내는 외톨이다. 좋은 말로 독고다이. 대부분의 일상을 혼자 경험하고 느낀다고 보면 된다. 매일매일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 사무실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족들이랑 같이 살면서 부대끼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흘러가면 한강물 깊이 몸을 담그고 떠밀려 가는 것처럼 그렇게 흐르다가 역시 물살에 떠밀려 내 눈 앞에 나타나는 숭어같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헤어졌다 반복할 뿐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의 80~90%는 10년 후에는 서로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할 사람들일게다. 그래도 다행히 몇몇 자주 보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어딜 가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