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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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돌리다 한복 강좌를 보게 됐는데, 같이 보던 엄마가 "너도 한복 한번 배워봐라"라시는 거다. 뜬금없이 웬 한복?
엄마 말인 즉슨, 내가 고등학교 때 가정시간에 만든 한복이 그렇게 멋졌다고... 나름 바느질은 잘 하는 편이라 간단한 수선은 직접 해왔는데 옷을 내가 직접 지어 입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회사일, 영어공부, 생존을 위한 운동 등 할 일이 눈 앞에서 물결치고 있지만 꼭 할 일 없어 심심한 사람처럼 한복 학원을 이리저리 알아보다 집에서 가까운 문화센터에 등록했다. 그리고 엄마랑 광장시장 가서 원단도 뜨고 자랑 각종 부자재도 덜렁덜렁 사들고 왔다.
의외로 패턴 그리는 거나 재단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길래 내친김에 재봉틀까지 들였다. 봉틀이는 샀다고 자랑하자마자 황작가가 돌돌이라고 이름도 지어줘서 더 애착이 간다.ㅋㅋ
진작부터 세탁기 상판에 덮어 놓은 옥스포드 천 잘라서 테이블매트 만들 생각을 했는데 바느질하기 귀찮아서 1년째 미루고 있었다. 재봉틀도 생겼겠다 그것부터 돌돌돌 박기 시작했다. 술 마시고 들어와서 박았다가 삐뚤빼뚤해서 한번 뜯고, 다림질 잘못해서 한번 더 뜯고 몇 번 시도한 끝에 그나마 봐줄만한 테이블매트 4장을 만들었다.
별 생각없이 그냥 드륵드륵 박으면 뭔가 뚝딱 하고 나오니까 진짜 재밌다. 새 기계를 써보면서 느끼는 즐거움도 있다. 재봉틀이 나름 예민한 기계라 원단에 따라 실 장력이랑 땀폭을 조절해가며 써야 하는데, 조합을 찾아가는 것도 재밌고 아직까지는 자동 실끼우는 장치마저도 넘 신기한지라 네이버랑 유투브 검색하면서 이리저리 만져보고 있다.
드디어 품이 작아서 못 입는 원피스를 잘라서 치마로 개량하는 것도 성공했다. 물론 허리벨트 거꾸로 달아서 한번 뜯고, 콘솔지퍼 거꾸로 달아서 또 한 번 뜯고, 바이어스 거꾸로 달아서 또 한번 뜯고 암튼 엄청 뜯느라 천이 좀 미어져서 마감은 개망;;; 했지만 나름 콘솔지퍼 다는 것도 성공했고 조악하지만 바이어스도 해봤고, 안감 넣고 허리 벨트랑 치마자락이랑 딱 맞게 다는 것도 성공했음.
애초에 만들려던 한복은 문화센터에 원단을 놓고 와서 하나도 못 만들고 있긴한데 이것저것 만들다 보면 한복이든 양장이든 잘 만들게 되겠지. 일단 목표는 내년 한복 기능사 따는거다. 앞으로는 패스트 패션을 거부하고 내가 만든 고급진 옷만 입고 다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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