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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시험 발표일이 다가올수록 자신감은 수직 하강하고 있다. 1년을 그렇게 외우고 외우고 또 외웠는데 그걸 제대로 못 썼다니...내 답안지만 생각하면 자괴감이 몰려온다. 합격과 불합격 확률을 굳이 숫자로 표현해보자면 49% 합격, 51% 불합격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못 놓고 애 태우고 잠도 잘 못잔다. 시험 전만 해도 이번에 못 붙으면 나는 다시 도전 안 한다! 라는 생각이었는데 다시 책을 뒤적거리는 걸 보면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갈대 같고 미련은 또 얼마나 인간을 헤매이게 하는가 싶다.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하는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무너져가는 정신력을 아예 해머로 때려부수는 짓을 몸소 찾아내서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대형 면허 시험. 오늘로 벌써 세번째 낙방했다ㅠ 유투브 보면서 ..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루이 라벨의 말, 고립과 고독의 차이가 생각나는가? 예, 여기 노트 맨 앞에 적어놓았어요. '고립은 자신에 대한 애착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타인을 멸시하기에 비극을 초래한다. 하지만 고독은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이탈하는 것이다. 이 이탈을 통해 각 존재는 공통의 시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살아가면서 인생에 따옴표나 방점이 찍히는 순간들이 있다. 졸업 및 입학, 취업, 퇴사, 만남과 헤어짐, 지금의 내 상황에서는 이번달 말에 있을 합격자 발표. 처음으로 방점을 찍은 후에도 생은 ..
돌봄과 살림을 공짜로 제공하던 엄마들의 시대를 지나, 사랑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던 아빠들의 시대를 지나, 권위를 쥐어본 적 없는 딸들의 시대를 지나, 새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랐습니다. 아비 부의 자리에 계집 녀를 적자 흥미로운 질서들이 생겨났습니다. 이 질서를 겪어볼 기회를 소설에게 주고 싶었어요. 늠름한 아가씨와 아름다운 아저씨와 경이로운 아줌마가 서로에게 무엇을 배울지 궁금했습니다. 이슬아 작가는 낮잠 출판사를 설립해 모부를 직원으로 채용했다. 이슬아는 경제권을 가지고 집안 대소사를 결정하는 가녀장이고, 낮잠 출판사의 사장이자 직원인 복희와 웅이의 고용인이다. 소설은 낮잠 출판사와 세 주인공의 집안 내력, 주변인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각 캐릭터가 재밌는 사람들이라 깔깔 웃으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
총 여행 일정은 20일 남짓이었고, 순례길은 11일 걸었다.(중간에 하루치를 기차로 점프했으니 전부 걸었다면 12일 걸렸을 듯) 출발 전에 포르투랑 파티마에서 사흘을 보냈고, 끝나고 마드리드랑 바르셀로나에서 닷새를 보냈는데 혼자 가기에는 좀 긴 일정이었다는 생각이... 혼자 쏘다니다보면 생각보다 쉽게 지치고, 맛있는 걸 푸짐하게 못 먹는 데 대한 짜증도 쌓인다. 해외는 길어도 한 2주 정도 일정으로 좀 아쉽게 다녀오는 게 좋은 듯. #해안길 일정 및 숙소, 괜찮은 식당(몇 개 없지만) 공유. 1일차: 포르투-> 마토지뉴스(지하철 이동) -> 빌라 두 콘데(Vila do conde) 23.2km 포르투 순례길 시작은 포르투 대성당부터지만, 해안까지 가는 데만 하루 걸린다고 해서 새벽에 지하철로 해안길 초입..
포르투갈 루트는 한국인 보기가 정말 힘든만큼 후기도 많이 없다. 뭐 아시안 보기도 힘든데 한국 사람을 어떻게 만나겠어. 그래서 단톡방이 굉장히 활발하고, 거기서 실시간 정보들이 공유되기 때문에 널리 공개된 정보가 별로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단톡방은 네이버 '까.친.연' 카페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도움을 많이 받았던 후기를 일단 정리 해보자면, #포르투 해안길 루트 정보 1. 클리앙(레프톨스토이님) 간결하게 필요한 정보를 다 담고 있다.(물가는 그 때랑 지금이랑 많이 다르고, 까민하 페리 대신 보트가 다닌다는 게 차이나고, 이 분은 엄청 잘, 멀리 , 빨리 걷는 분이라는 걸 감안하길 바람) https://m.clien.net/service/board/use/15399747 (2018년) 산티아고 순례..
무엇을? 조성진이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피협 3번 실황을. 한국에서는 그리 보기 어렵다는 조성진을 마드리드에서는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다니. 여기 사람들 너무 부럽고 부럽고 부럽다. 첫 음부터 은쟁반 위에 옥구슬이 굴러가길래 역시 조성진~ 이라고 생각했는데 음악이 점점 고조되면서 소리가 확 바뀌었다. 피아노 때려 부술듯이 휘몰아침. 또 다시 천국에서 즐기는 만찬의 배경음 같았다가 3악장 마지막에 줄달음칠 때는 심장이랑 호흡이 같이 머리 위로 빨려 올라가는 줄 알았다. 그동안 나는 조성진은 기교가 매우 좋고 매끄러운 음을 깎은 듯이 잘 표현하는 연주자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연주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한 곡 내에서 강약 조절을 하면서도 힘과 에어지를 엄청나게 내뿜었다. 정말 피아노 부서지는 줄 알았다니까..
드디어 산티아고 도착! 에르본 수도원에서 다같이 6시반에 아침을 먹고 7시반쯤 짐을 챙겨 나왔다. 다시 순례길로 돌아가는 약 3km를 포함해서 산티아고까지 거의 28~29km를 걸어야 한다. 평소보다 좀 더 늦게 출발한거라 발길을 재촉했다.(나중에 보니 어차피 도착해서 딱히 더 할 것도 없는데 뭐하러 그랬나 싶다. 그냥 천천히 가서 아는 사람들이랑 인사도 하고 그러는 게 나음) 오전에 내내 비가 쏟아져서 빗길을 뚫고 길을 걸었는데, 길이 계속 고도가 높아지기는 하지만 의외로 별로 힘은 안 들었다. 뭔가 근육에 힘이 붙은 모양. 그래서 무난무난하게 걸어서 오후 4시쯤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다. 아직도 길을 걷는 대단한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시작과 끝맺음을 했다는 어떤 성취감은 있다. 겨우 5.5kg 배..
여기 와서 확실히 느끼는 건, 나는 아침형 체질이라는 것이다. 술 좋아하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게 좀 안 맞는 것 같긴 한데 아무 제약 없이 잘 시간, 기상 시간을 골라보니 술 후딱 마시고 자서 새벽같이 일어나 활동하는 게 훨씬 편하다. 새벽 공기와 분위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어제 점심부터 맥주, 와인으로 신나게 달리고 10시 전에 잤다. 침대에 눕자마자 잠든 것 같은데 목 말라서 눈 떠보니 12시. 물 마시고 화장실 다녀와서 좀 뒤척대다가 다시 잠들었는데 다시 눈 뜨니까 5시 40분… 딱 느끼기에도 꿀잠을 푹 잔 느낌이다. 중간에 화장실 가느라 잠귀 옅은 사람한텐 좀 미안하긴 하지만 어쩌겠냐.(이렇게 적어놓고 같은 날 밤 코골이를 만나서 4시간도 못 잠ㅠ) 요즘 해가 너무 늦게 떠서 8시 넘어야 겨우 미..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도 가을이다. 지난주까지는 낮에는 그래도 해가 좀 따가울 정도로 더웠는데 주말로 넘어오면서 완연한 가을로 접어든 것 같다. 낮에도 그렇게 덥지 않고 저녁엔 바람막이 하나만 입고는 추워지기 시작했다. 맨다리로는 못 다니겠어서 점점 챙겨온 원피스가 무용지물이 되어가는 중. 그건 그렇다 치고, 수확철이라 볼거리가 참 많다. 걸으면서 제일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포도밭. 이미 가을걷이가 얼추 끝나서 포도를 자주 볼 수는 없지만 갈변이 시작된 연두색 이파리들이 형형색색 예쁘다. 때때로 아직 따지 않은 포도도 볼 수 있는데, 그 밭 옆을 지날 때면 포도향이 확 코 끝을 스치면서 와인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이렇게 눈으로 향기로 유혹하는데 이거 원 안 마실 수가 없잖아..(그래서 오늘 늦은 점심을..
앞으로 3일 또는 4일, 내일부터는 계속 비가 온다고 하는데 어쩌면 좋을까 고민 중이다. 지금까지 비온다고 한 날 제대로 비 온 적이 하루도 없어서 믿기는 힘들지만 암튼. 그냥 지금 페이스대로 가버릴까(12시 순례자 미사는 그 다음날 참석)? 중간에 하루 더 쉬고 마지막날 쉬엄쉬엄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해서 그 기쁨을 만끽하고 바로 미사를 볼까? 마지막날 새벽부터 달려서 12시 전에 도착해볼까? 등등 별별 생각이 다 드는데, 일단 몸이 지금처럼 멀쩡하다는 전제에서 3일만에 도착하는 걸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좀 열심히 걷는다고 다리가 3일만에 부서지지는 않겠지. 오늘은 깔끔하다고 추천 받은 알베르게를 취소하고 낡은 호텔방을 잡았다. 어제 출발지부터 다니엘 할아버지 만나서 같이 걷느라 묵주기도도 하루 건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