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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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노트

여기가 윤찬의 나라입니까... 미친 사랑의 꿈에 빠지다

로얄곰돌이 2023. 11. 30. 15:32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 G장조 Op.58
베토벤 교향곡 3번 Ep장조 Op.55 
지휘: 정명훈
오케스트라: 뮌헨필하모닉
협연: 임윤찬
공연장: 세종문화회관

고대하던 임윤찬 연주를 직관했다. 


손이 느려서 처절하게 모든 공연장 예매에 실패한 로얄...평소에 아이돌이라도 좋아하지 그랬니..  팬 게시판에 상주하다가 취소표 공지 뜬 보고 들어가서 정말 운 좋게(?!) 세종 3층 천당석을 잡았다. 물론 앞 자리에서 보고 싶었으나 이게 어디냐며 고이고이 저장해뒀다가 드디어 관람했다.

우선 모든 연주가 훌륭했지만 앵콜로 연주한 리스트 사랑의 꿈 때문에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빠져들 무렵, 뇌우가 쏟아져 내리는 폭풍우 속을 걷는 꿈을 꾼다. 회오리 바람 때문에 보이는 모든 게 불규칙하게 휘돌아 감겨 들어가고...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갖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깨어났는데, 일어나 보니 그 꿈이 너무 달콤하더라. 

다시 한번만 더 들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이런 연주를 들을 수 있었던 나는 행운아이고, 임윤찬 리사이틀을 직관하는 행운이 또 다시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발 표 좀 주세요!!! Shut up and take my money~!!!!!


다시 시간 순으로 돌아가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뮌헨필의 테크닉과 정명훈의 단정함, 임윤찬의 섬세함이 어우러진 훌륭한 연주였다. 임윤찬이 연주하는 피아노는 3층 저 멀고 먼 자리에서도 또랑또랑하게 들렸다. 임윤찬 연주를 좋아하기 시작한 연주가 광주시향과 협연한 베피협 5번(황제)인데, 팬들이 '별가루 뿌렸다'라고 하는 그 영롱한 소리가 너무 아름다웠더랬다. 이번 연주에서 원없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  섬세한 감정표현도 좋았고.  글리산도를 일일이 손가락으로 친다고 생각했지 뭐야... 

또 카덴차 도입부에서 그 넓은 세종문화회관 관객들의 몰입도가 감동적이었다. 내가 앉은 3층은 모든 관객이 움직임을 멈춘 것 같은 정적이 흘렀는데,  다들 어렵게 표를 구해 온 거라 그런가 한 음 한음 놓치지 않겠다는 간절함이 느껴지더라. 여러 공연을 다녀봤지만 관객들 집중력이 이렇게 높은 공연은 처음이었다. (나중엔 내 바로 앞자리에서 휴대폰 울리고 난리도 아니었지만ㅋㅋㅋ)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취향으로 정 마에스트로의 연주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내 느낌으로는 너무 모범적인 연주 같아서 그렇다. 뭐 이건 정말 내 취향일 뿐이고.. 그래서 이번 협연 연주도 유려하지만 너무 정제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광주시향 베피협5번에서 피아노가 살아서 날뛰는 듯한 자유분방한 느낌이 너무 좋았거든. 정말 아름답고 훌륭한 연주라는 건 말할 나위가 없음!(후기를 보니까 밀당 느낌이 좋았다는데 3층이라 그런가 잘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짐작이라도 한 듯이 앵콜에서 격렬한 사랑의 꿈을 연주해 준 임 피아니스트에게 너무너무 감사하다. 
2부 에로이카는 역시 멋지고, 명문 교향악단 답게 정확하고 빈틈 없는 연주를 보여줬다. 방귀 소리 안 나는 호른은 정말 감미로워. 오케스트라 볼륨도 좋고 속도도 좋았다. 선입견일 수도 있는데, 독일 악단 연주를 들으면 현악 파트가 좀 더 단단한 느낌이 드는데, 베를린필처럼 기계 아냐? 할 정도로 정확하게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뮌헨필도 탄탄했다.

정마에가 선물로 가져온 아리랑 앵콜은 어쩔 수 없이 눈물이 찔끔 솟더라. 한국 사람 인증ㅠ

악재가 겹쳐서 우울한 나날이었는데 심신이 위로받고 온 것 같다. 끊임없이 최상의 음을 찾아내려는 음악가들과 또한 멋진 음악이 있으니 세상은 일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