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달로 간 코미디언, 김연수 본문
김연수 중단편 단행본 '세계의 끝 여자친구' 마지막에 수록된 '달로 간 코미디언'을 읽고.
부모님의 삶을 맨 처음 떠올려 본 게 언제였더라. 대학에 들어가고도 한참 지났을 때였다. 친하게 지내던 선배들이 하나 둘 결혼 하는 걸 보면서, 또 결혼 후 내 삶을 상상해보기 시작한 뒤인 것 같다.
어느날 불현듯 머리를 파고드는 질문이 있었다.
'엄마 아빠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전까지 내 세계에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은 텅 빈 공간이었다. 아니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봐도 되겠다.... 이 질문을 떠올렸을 때부터 가끔씩 부모님이 들려주던 옛이야기를 곱씹으며 50년 남짓한 인생을 공감하려 애써 봤다. 그런데 좋은 일, 자랑스러운 일은 금세 이해가 됐지만 어떤 고통이 그들을 짓눌렀는지는 쉽사리 떠올리기 힘들다. 그만큼 타인의 삶 전반을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고통을 이해하는 건 더 어렵다.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이 소설을 보면서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아내와 자식에게 이야기하지 못한 아버지의 비밀을 접했을 때 절절한 외로움이 느껴져서다. 내 주변에서 내게 가장 공감 받고 싶지만 그게 안 돼 고민인 사람들이 바로 우리 부모님이니까. 결국 소설이 내게 준 감동의 내용은 어설프게나마 부모님의 삶을 짐작하게 된 것이라고 할까.
실용적인 글쓰기를 하는 나도 가끔 타인의 고민이나 힘든 상황에 대해 묘사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런데 실낱같은 공감이라도 하지 않으면 제대로 글이 나오지 않는다. 하물며 소설가는 어떠랴. 그래서 이 글은 주인공을 소설가로, 결말을 완전한 공감으로 마무리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래서 종국에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까지 뻗어나가려고 몸부림 치는 작가의 치열한 모습까지도 느껴보라는 것일테다.
작품 초반에 (아마 김연수 본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주인공 소설가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기 힘들어서 소설을 쓰지 못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그에 관한 소설을 쓰게 됐다고 실토한다. 글을 다 읽고 난 후에는 그 고백이 자랑스러운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거라는 걸 알게 됐다. 확실히 김연수는 독자가 타인의 고통을 느끼게끔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해냈다.
모든 건 "웃을 일이 아니에요"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다. 코미디언이 월계수 나무에 이상할 정도로 세게 부딪히고 높은 무대에서 떨어지는 고난도 슬랩스틱과 함께 말하던 유일한 유행어는 진실을 담고 있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아버지가 시력을 잃어가면서 점점 변해가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그래서 "웃을 일이 아니에요"라는 문장을 읽을 때마다 속이 쓰려왔다. 작가가 타인의 고통을 이해시키기 위해 저 문장을 직접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한번 두번 읽을 때마다 점점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이 멀어가는 아버지는 세상도 함께 꺼져간다는 걸 느꼈다. 그나마 앞을 밝혀주는 희미한 빛을 좇아 사막으로 걸어갔던 것이다. 그의 딸, 아버지를 단 한 순간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는 아버지가 걸어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던 사막에 가서야 아버지와 교감한다. 소설가는 그녀가 보내 준 사막의 소리를 듣고 아버지와 딸 모두를 이해하게 된다. 소설가가 사막의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캄캄한 눈 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대해 묘사하는데 그 장면이 이어지는 내내 "웃을 일이 아니에요"라는 문장이 머리 속에서 맴맴 돌았다.
이 작품은 시간을 횡으로 잘라내고 종으로 이어붙이면서 이어진다. 198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권투 시합 후 뇌사 판정을 받고 죽은 김득구 선수 이야기, 그 며칠 뒤 실종된 코미디언의 딸과 사랑하다 헤어진 이야기, 딸의 아버지 코미디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사건은 9.11 사건과 라스베이거스 권투 시합이다. 아버지의 고통을 이해하러 떠난 딸, 시각 장애인 도서관장을 찾아간 소설가는 그 곳에서 딸과 공감하고 아버지와도 공감하게 된다.
이 책 말미에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쓴 해설이 실려 있는데, 문학 해설 치고 참 재미있게 읽힌다. 끝까지 꼼꼼하게 읽어볼만하다.
재밌습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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