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감상 노트 (63)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문화 예술에 왜 꼭 ‘감동’이라는 게 있어야 해? 라는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그냥 공감 좀 되거나, 모르던 세계를 알게 해주거나, 특이한 상상력으로 재미을 주거나 아니면 무의식 속에 일말의 정의감이나 인류애를 심어주거나 그런 정도면 되지 않는건가? 싶었다. 근데 그건 감동이라는 것을 사전적 정의 그대로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이라고 해석해서라는 것을 이제야 이해하겠다. 참 깨닫는 데 오래 걸려요. 위에 표현한 모든 것이 사실은 인간의 손길을 거친 한 예술작품과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의 주파수가 어떤 지점에서 맞아 떨어져서 동일한 파동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이걸 감동이라 한다면 ‘감동’은 문화 예술의 기본값이 되는 게 맞겠다. 그런데 이 감동이라는 말이 정말 크게 느끼어 마음을 움직이는 경우도 ..
(제목은 어디서 본 걸 베꼈음) 마블 영화를 영화관 가서 다 보고. 오래 살 일이다. 양조위가 나온 영화라면 한국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로맨스물이랑 코믹물까지 되는대로 찾아봤던 나날이 있었더랬다. 아무리 영화가 재미 없어도 참 재밌는… 뭐 그런 효과를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멋진 배우다. (아흠.. 멋져요) 감독도 그랬던 걸까. -마블 영화 감독을 맡았는데, 평소에 흠모하던 토니량과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이것은 마블 영화! 낼모레 환갑인 액션배우도 아닌 배우를 주인공 시키자니 좀 그렇고. 그래 그럼 빌런을 시키면 되겠다. 그런데 그 빌런한테 서사를 몰빵하고 등장 빈도도 주인공보다 더 높여보자! 그런데 그 빌런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양조위잖아. 양조위 그 눈빛, 그걸 또 써!먹!고! 싶단 말이지..
오춘기인지 육춘기인지 모를 시절을 보내고 있다. 다 맘에 안 들고 다 때려치우고 싶고 다 부질없어 보이는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 이게 끝이 날지 끝이라는 게 있을지 모르겠다. 왜 사십살이나 먹어서 이러고 있는지 참. 맘이 들썩들썩 하고 불안하고 웬지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고 뭐 그렇다. 불혹이 아니라 다혹의 시절일세. 짧다면 짧은 인생(예전에는 평균 수명이 40대였다고는 하지만..)을 살면서 알게 된건데, 이런 시절에는 그냥 훌륭한 작가들 책이나 읽는 게 제일 낫다. 울렁거리고 어디 한군데 머물지 못하는 방황하는 마음을 좀 달래고 얼러준다. 요즘 내가 어쩌지 못하는 답답하고 억울하고 풀리지 않는 마음 때문에 자다가도 깨는 등 나름 괴로웠는데 김연수 작가가 쓴 ‘시절일기’가 그런 심정을 싸르르 ..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니... 내 주변 사람들은 왜 이 책을 그동안 나한테 추천 안 해줬나. 원망 아닌 원망을 하게 될 정도로 재밌었다. 앞으로 몇 번은 더 읽게 될 것 같다. 주인공 마리오가 오가는 길을 따라 아름다운 시어들이 반짝이는 물결처럼 흐른다. 평범한 것들이 언어를 만나서 빛이 난다. 나는 남미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칠레 어딘가 태평양 연안에 있을 이슬라 네그라라는 곳의 풍광 묘사는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 책이 1985년 첫 출간될 때 제목은 '불타는 인내'라고 한다. 책의 도입부부터 중반까지는 '불타는 인내'라는 제목이 의아할 정도로 즐겁고 유쾌한 사건들이 이어진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서정적인 이름에 꼭 알맞는 분위기다. 소설은 1970년 칠레의 첫 사회주의 계열 대통..
자주 찾아 읽는 칼럼니스트 박권일씨가 기고문을 엮어서 단행본으로 낸 책이다. 침대 옆에 두고 조금씩 조금씩 한달여에 걸쳐서 읽었다. 글이 그렇게 길지는 않은데 순간순간 곱씹어보거나 잘 이해가 안 돼서 다시 읽거나 하는 부분들이 꽤 있어서 다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칼럼집이라 그 때 그 때 주류 담론이나 현상들을 짚어주고 있는데, 어쨌거나 이 분의 칼럼은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다. 내가 이해한 바를 요약하자면, “자기 삶이 구체적으로 변하지 않는 축제에 정신이 팔렸다가 탈진하기를 반복하는 것은 그만 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자. 그러려면 개인들이 해야 할 일은, 기득권들이 은폐해 온 나의 계급성을 인식하고, 기존의 사고 프레임을 전환해 좌파-평등주의적 기획에 동참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워낙 다..
정세랑 작가 '시선으로부터'를 진주문고 갔다가 샀는데 재미도 있고 문장도 쉬워서 금방 읽었다.(진주문고는 큐레이션을 참 잘하더라. 디스플레이를 보면 막 사고 싶고 읽고 싶음) 읽은지 거의 한 달 된 것 같은데 이제서야 간단하게 서평을 남긴다. 인간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고, 좀만 깊이 들여다보면 다들 괜찮은 사람들이다. 또한 인간을 어떤 특정한 가치로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그나마 숨이라도 쉬고 할 말 하고 살 수 있는 건 심시선 같은 파격주의자가 있었던 덕분이다. 나도 편견 때문에 억압받을 누군가를 위해 어떤 때는 불편하고 드센 사람이 되는 걸 감수해야겠다. 이어서 최근 단상. -오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8.15 집회에 갔던 노인들에 대해 탓하고 욕하는 게 '인간적으로' 타당한 일인..
신기한 책이다. 처음에는 너무 짧게 칸칸이 나눠진 옴니버스형 소설이라고 생각했다.(요즘 단편은 잘 안 읽게 되는데, 읽고 나면 뭔가 아쉬워서 그렇다. 좀 더 탐구했으면 하는 인간을 보여주다 만 느낌?) 조금 읽다보니, 요즘 페미니즘이 유행이라 이런 소설이 범람하는구나 싶었다. 작가가 글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최근 출판계 주류가 페미니즘 아닌가. 특히 가끔씩 '여초' 카페라는 데에 접속해서 글이나 댓글들을 읽곤하는 나에게는 그냥 나왔던 여러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정도의 글로 다가왔다. 그래도 길지 않고 술술 잘 읽히니 후딱 읽어나보자 했다. 중반쯤 책 읽기를 했을 때, 이 책은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이후에는 뇌가 상당히 복잡해졌다. 이런 짤막짤막한 시시껄렁해보이는 이야기들이 서로 엮이면서 페미..
성범죄자 모친상에 대통령부터 온갖 정권 유력자들이 화환을 보내고, 전세계 아동 대상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사이트 운영자 범죄인 송환이 불발되고, 3선 서울시장이 성추행 혐의를 받자 운명을 달리했다. 이렇게 심란하고 잠이 잘 오지 않는 때에는 책에나마 맘을 기대본다. 같은 인간으로 대접 받기가 이렇게 힘든거였나. 우리는 선량한 자들로부터 너무 오랫동안 차별 받아왔다. 서평을 쓰려고 맘 먹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김지은입니다'를 다 읽고나서는 서평을 꼭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성폭력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저 멀리 국딩(초딩) 시절까지 가야한다. 하교 길에 집에..
“순물을 장에 붓고 고루 섞어 버무려 다시 항아리에 채우니 허리, 다리, 어깨 안 아픈 데가 없지만 기분은 어찌 이리 평온하고 행복할까.” “해마다 올해까지만 이렇게 하고 나이들어서는 만들어놓은 것들로 즐기기만 하자며 남 보기 부끄러울 정도로 일을 했다. 자리잡은지 10여년, 어느 정도 모양이 잡혀졌다. 돌동산, 풀동산, 나무동산이었던 장소다. 이제 아침이면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고생담을 이야기 나누는 그럴듯한 밭이 됐다.” “그런데 세상에 김장을 도와주러 온 양반들이 항아리에 넣으려는 갈치김치를 통에 담고 먼저 먹으려던 젓갈김치를 항아리에 넣어 묻어버렸다... 김치를 썰어 담으며 갈치가 나오면 얼른 주워 버리곤 했다.” “가끔 우리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이러라고 정해진 것도 아닌데, 안해도 상관없고 ..
“눈물의 넓고 풍부한 의미와 절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다.” -작가 서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 때문에 오히려 살아가는 게 무기력하게 느껴지던 때 인생 선배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지 살고 싶어서 난 사람은 없지 않느냐” 이 말을 듣고 속이 조금은 시원해졌다. 내 인생에 대해 너무 기대하지도, 부채의식을 갖지도 말자고 생각하게 됐다. 인생아 아무리 네가 나를 압박해도 나는 너를 짊어지고 살지 않으마. 연초부터 무슨 책을 볼까 하다 예전에 헌책방에서 사다놓고 안 읽고 있던 ‘인생’을 꺼내들었다. 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