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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JTBC...

로얄곰돌이 2013. 12. 29. 03:11

오늘 총파업은 사람도 많고, 그래서 별로 춥지도 않고 흥겨웠다. 특히 '파업'이라고 붙은 행사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는 게 웬지모르게 감동적이었달까... 외국 노총들에서 보내온 영상과 사진을 보면서 '아, 만국의 노동자들이 한국 정권 덕분에 단결하는구나, 마르크스 할아버지가 이 광경을 본다면...ㅠㅠ'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나 역시 언론 보도는 제한적이고, 특히 KBS, MBC는 정권 나팔수 역할만 충실하게 하고 있다. 파업 현장에서는 사람들 온기와 표정들 덕분에 '손에손잡고'를 부를 때처럼 가슴이 뭉클하고 이런저런 감상에 젖었지만 돌아와서 눈물 닦고 TV를 보면 언론 바닥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 방송 뉴스는 JTBC가 으뜸이라고 하고, 심지어 JTBC 뉴스는 방심위에서 징계까지 먹으면서 투쟁의 역사를 쓰고 있고, 그만큼 응원과 격려를 한몸에 받고 있긴 한데 그게 좀 찜찜하다.

 

이렇게 우리가 총파업을 하면서 박근혜와 정권을 겨냥하고 있는 동안 삼성은 제 할일 다 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이미지 메이킹에도 성공하고 있구나 하는.. 음모론 아닌 음모가 떠오르기 때문이다.(내가 아는 한 삼성은 생각보다 치밀하다.) 

 

정, 관, 언, 재계를 마음대로 요리해 온 삼성은 올해 뜻하지 않은 안전사고와 AS센터 외주 직원 처우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동안의 부정적인 이미지(탐욕)가 더 굳어지게 됐다. 비인간적인 조직 문화가 삼성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지도 오래다.

 

문제는 점점 더 스스로 노동자성을 인식하고 나만 안녕하지 못한 게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들은 이제 우리의 적이 얼굴마담이 아니라 그 뒤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영원한 권력, 돈이라는 걸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계속 물건을 팔아먹고 그 권세를 대대손손 누려야 하는 삼성이 JTBC에 나름 진보적이라고 분류된 인사를 사장으로 앉히고 정권 비판 보도를 내보내는 건 참 잘 둔 수다. 참 기가막히게 잘 뒀다. 화살은 얼굴마담에게 돌리면서 삼성은 이른바 '좌빨'스러운 보도까지도 기자들 월급 줘가면서 하게 해주는 기업으로 남는다. 명분과 실리를 한꺼번에 얻었다. 손해 볼 게 전혀 없는 장사다.

 

그래서 로얄이는 마냥 JTBC를 응원하기 어렵다. 지금 그 속에서 열심히 취재하고 리포팅 하는 기자, PD들은 등 두드려주고 싶지만 그 언론사 자체를 추켜세워주는 건 그래서 하고 싶지 않다.

 

혹시라도 386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저질렀던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건 기우이려나. '정권 퇴진'을 외치면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여전히 마트에서 물건 사고 스마트폰은 삼성이 제일이라며 재벌들 배를 불려주는 우리 '선량한 소비자'들이 바뀌지 않는 한 세상은 변하지 않고, 동네 슈퍼는 점점 사라져 가고, 슈퍼집 딸래미는 학비 때문에 대출인생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88만원 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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