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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안 세상

통영

로얄곰돌이 2020. 8. 12. 13:15

백석 시비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흔 곳이다'

백석은 통영에 3번 정도 다녀왔다고 한다. 자비로 출간한 첫 시집 '사슴'을 들고 첫 눈에 반한 처녀가 사는 통영으로 향하던 그 마음이 어땠을까. 지금처럼 고속도로도 뚫리지 않았을텐데 어지간히 좋았나보다. 백석은 통영의 다양한 인상들을 시로 남겼다. 그에게 이 곳은 설레임의 고장이자 가슴아픈 첫사랑의 기억, 친구의 배신(?)에 대한 기억이 배어있는, 아름답고도 슬픈 고장일 것이라고 짐작된다.

통영행의 동기는 시인 백석이기도 하고 김연수 작가이기도 하다. 신작 '일곱해의 마지막'은 백석의 시처럼 아름답고도 슬펐다. 마지막 장을 덮고 작가의 글까지 읽었는데도 여전히 허전하고 아쉬웠다. 소설로나마 백석의 가려진 삶을 더 유추해줬으면 했고, 삼수에서 유배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절필한 천재 시인의 마음이 짐작이 가기도 했고, 국토가 남북으로 나뉘어 소설에 나오는 평양, 함흥, 정주 등을 가보지 못한다는 현실도 너무 싫고... 여러가지 상념이 들어 잠도 못 자고 뒤척이다가 작가 인터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보통은 책은 책으로 읽고 끝내는 편인데, 작가가 북토크를 진주에서 한다는 소식이 눈에 띄어서 바로 신청했다. 진주에 가는 김에 금요일에 휴가를 내서 통영을 먼저 둘러보고 가면 되겠다는 생각에 스스로 참 기특해하며 버스표를 예약했다.

통영은 여행으로는 딱 한 번 가봤는데 맛있는 음식들이랑 미륵도 드라이브 코스에 맘을 완전히 빼앗기고 온 곳이다. 풍화일주도로 가에 있는 조용한 바닷가에 작은 집 하나 지어서 오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니. 그 때는 통영이 백석과 그렇게 깊은 연관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이번에 갔더니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물론 백석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돌아가셨겠지만) 그 자취를 따라 가면 박경리 문학까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니 혼자 가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비가 와서 우산을 받쳐 쓰고 발이 다 젖었는데도 그 길을 골목골목 걷는 게 참 즐거웠다. 누군가 통영에 간다하면 유명한 동피랑보다는 서피랑 쪽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박경리와 백석이 쓴 통영에 관한 글을 웬만하면 다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남부지방 집중호우 때문에 진주에서 열릴 예정이던 북토크는 취소됐지만 통영, 진주 일대를 재미있게 돌아본 것만으로도 좋았다. 

서피랑 주변은 온통 아름다운 문장들로 꾸며졌다. 삼수농장에서 백석은 남몰래라도 시를 썼을까. 제발 그랬기를 빈다. 
한산도 앞바다가 보이는 수루에서. 
한산도 제승당 가는 길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_백석
통영 중앙시장 어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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