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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안 세상

그 견해가 심히 불편한 이유

로얄곰돌이 2020. 9. 22. 23:28

회사 생활 10년 넘게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알고 지내고 교류했다. 그 중에 참 좋은 사람도, 배우고 싶은 사람도 많다. 특히 사회생활 대부분을 기자로 보내면서 존경할만한 훌륭한 기자들을 직접 알게 된 건 큰 복이라고 생각해왔다.

A 선배가 있다. 경향신문 전 지부장으로 우리 회사(전 직장)에 응원차 왔을 때 첨 뵀고, 내가 제보자들을 소개해 몇 달간 끈질긴 취재 끝에 정부 사업 용역 비리를 고발하는 기사도 써주셨던 문자 그대로 대단하고 닮고 싶은 기자다. 이 선배가 몇달 전 성추행 관련 보도 때문에 회사에서 곤란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본인이 계속 포스팅을 올렸기 때문에 대충 기사의 논조와 사건 경과를 알 수 있었는데, 나는 그 포스팅을 보는 게 참 곤혹스러웠다. 

'가짜 미투' 또는 '후배 권력'이라는 좀 뜨악스러운 표현을 사용하는가 하면 성추행 피해자와 팩트 경쟁을 하다 증거로 내놓은 내용을 편집까지 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무엇보다 불편한 건 단단한 그의 견해였는데,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기사를 썼다고 본인이 직접 밝히고 있다. 

그런데말입니다...

여성들은 대충만 들어도 "아~ 이해가 간다"라고 하는 것들을 여러분들은 절대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더란 말입니다.

강자의 시각(또는 편견)은 그야말로 권력형 시각이라 약자들이 숨쉬듯 느끼고 있는 것도 모를 수 있다. '상전 배부르면 종 배고픈 줄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다. 인간이 그렇게 생겨먹어서 특별히 공감능력을 타고나지 않았다면 본인이 배가 고파보고, 아파봐야 당해본 사람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럴 수 있다'라는 설명을 여성이 지금껏 몇 십년 넘게 구구절절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설명을 해줘야 하겠지. "성폭력 당해도 주변에 티 안 낼 수 있다, 특히 엮여있는 관계자가 많다면 더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 있다, 심지어 가해자와도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 있다 등등." 말하기도 피곤하고 지치지만 그들은 여전히 모른척을 한다. 모른척을 하는 게 아니라 아무리 말해도 모른다. 배부른 상전이라 그렇다. 

죄송하지만 이번에는 A선배가 틀린 것 같다. 취재를 덜 해서가 아니라 강자의 시선밖에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규항 선생이 오랜만에 글을 올렸던데, 이 말을 A선배를 비롯한 여러 훌륭한 선배들에게 돌리고 싶다. 

"그들의 앞세대(한국의 장년 남성들)는 성폭력 문제에 온전한 야만 상태에 머물렀다. 집단 성폭력 사건의 최선의 해결이 가해자 중 한명이 피해자와 결혼하는 거라 믿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의 중년 남성은 그런 사람들을 보며 자라고 교육받았으며 인생 대부분을 그런 의식 범주에서 보낸 사람들이다. 어떤 주제든 마찬가지지만, 가까스로 배우고 깨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 가질 태도는 겸손이지 알은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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