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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동력

알베르게에서 나뚜랄 비노와 함께 Saluda! (포르투 해안길 6,7일차)

로얄곰돌이 2022. 10. 13. 23:24


어느덧 길을 걸은지 7일이나 됐다! 절반도 안 남았다~!! 지난주 금요일 출발했으니 와우~!!! 언제 이렇게나 시간이 갔는지… 드디어 오늘은 산티아고까지 100km가 깨진 날! 축하축하!!

어제오늘은 날씨, 경치 다 참 좋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물론 어제는 새끼발가락 때문에 아픈 걸 참으면서 걷긴 했는데, 경치 보면서 아픔을 좀 잊을 수 있었고 오늘은 새끼발가락이 덜 아픈 방법을 드디어 알게 돼서!!!(감격ㅠㅠ. 깔창새끼발가락 부분을 과감하게 잘라내면 된다는!!) 훨씬 편했다.

어제는 바이오나 다음에 있는 사바리스 Sabaris 에서 비고 Vigo까지 갔고, 오늘은 비고에서 레돈델라Redondela 바로 옆동네인 세산떼Cesante 까지 왔다. 지금은 2시 전에 일찌감치 알베르게에 와서 씻고 세탁기 돌려놓고 앉아서 멍 때리는 중. 오늘은 발이 별로 안 아팠기 때문에 오늘만 같아라~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실시간 뷰. 얘들 첨에 보고 엄청 짖더니 이젠 막 들이대네..

6일차> 닌자앱 기준 23km - 3km(버스로 점프). 성당 구경 가고 밥 먹으러 나갔다 오면서 실제 걸은 건 27.7km

바이오나-비고 가는 길은 좀 멀더라도 바다를 따라 왔다. 이제 내륙으로 들어가서 센트럴 루트랑 만나기 때문에 바다가 마지막이기도 하고 길도 예쁘다고 해서 그 쪽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해안을 만끽하기 참 좋았다. 어제 스페인 국경일이라(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 항로를 개척하고 돌아온 날이라나..) 사람들이 다 나와서 해수욕 하고 여유롭게 즐기는 모습들 덕분에 보는 나도 절로 힘이 났다.

백사장, 바위 해변 골고루 지나가고 집들도 예쁘게 꾸며놨고, 별장으로 쓰일만한 멋드러진 콘도들도 많고 여유롭고 쾌적한 동네를 쭉쭉 지나왔다.

중간에 누드비치도 있는데 별로 볼 게;;; 누드비치 앞에 점심 먹기 딱 좋은 식당이 있었는데 누드비치 뷰라 그냥 지나쳤더니 식당이 없어서 결국 1시 넘어서 점심 먹었다.

백사장으로 걷든, 백사장 옆 보도로 걷든, 솔밭길로 걷든 어디로 걸어도 즐거웠던 날이다. 근데 순례자들이 대부분 오피셜 길로 갔는지 별로 안 보였고, 희한하게 지나치는 순례자들도 별로 친화적이지 않은? 느낌이었다. 해안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좀 그런가.. 오늘 산길 걸을 때는 다들 말도 많고 같이 걷고 떠들고 완전히 정 반대 분위기였다.

어김없이 새벽 별 보면서 출발! 바이오나 지나쳐서 사바리스에 묵길 잘했다. 계속 1인실 다니다 알베르게 예약을 해봤는데 숙소 전체에 6명밖에 없어서 푹 잘 잤음.
아메리카 해변. 멋짐.
해안길은 오피셜길이 아니라 이렇게 초록색 화살표를 보면서 찾아간다. 화살표가 안 보여도 닌자앱에서 길을 잘 가르쳐주니 문제 없음!
식당 문 닫는다고 했던 할아버지 어디갔어? 식당, 카페, 바 대부분 문 열던데?!?! 오늘도 카페 콘 레체와 함께… 커피가 왜이렇게 맛있는거야ㅠ
이런 해변을 몇 개나 지난다.

이런 멋진 해변을 지나 비고 시내로 들어가려면 조선소 옆 공장지대를 걸어야 하는데 때마침 점심에 상그리아 마셨더니 발이 더 부어서 너무 아프기도 했고 굳이 매연 맡으면서 갈 이유는 없는 것 같아서 시내까지 버스 타고 들어갔다. 구글에서 알려준 버스 정류장이 없어서 동네 바에서 맥주마시던 사람들한테 물어봤는데 가게에 있던 사람들 다 일어나서 토론회를 열고 결국 왼쪽으로 가라는 결론을 얻었다. 왼쪽이 버스가 좀 더 많으니까 거기가 낫다고ㅋㅋㅋ 덕분에 버스 잘 타고 왔다.

Samil 해변에서 점심으로 먹은 오늘의 메뉴(menu del dia). 상그리아에 홍합찜, 완전 부드러운 돼지고기 요리랑 빵 다 해서 12유로. )
스페인 왔으니까 빠에야 함 먹어줘야지. 저녁은 비고 시내 강 앞에 있는 식당에서 먹었는데 경치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맥주도 맛있고(레몬맥주 serveza con limon 맛있네) 빠에야도 안 짜고 맛있어서 싹싹 다 먹음. 저거 다 먹고 맥주 한잔 더 마심. 빠에야만 13유로. 대도시 간 김에 식비에 투자를 많이 했다.

이런 풍경 보면서 밥 먹으니 좋지 아니한가.

7일차> 난자앱 기준 17.8km(예약한 알베르게가 세산떼에 있어서 2km 더 걸음), 애플워치 기준 20.6km(점심 먹으려고 옆길로 샜다)

비고-라돈델라 가는 길을 최고의 코스로 임명합니다. 오늘은 길이 다 했다. 지금까지 걸은 길 중에 어제까지는 어제 길이 최고였는데 이제는 오늘 길이 최고시다!

오늘은 일단 비고 시내에서 출발하니까 대도시 답게 완전 활기가 넘쳤다. 사람들 출근하고 학교 가고 차 많이 다니고 혼자 걸어도 전혀 적적하지 않은 날이었음. (그런데 희한하게 사람들 엄청 많이 만났다) 도시의 그 새벽 활기가 너무 좋았다. 맨날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살고 싶다 노래를 불렀는데 알고 보니 시티걸인듯.

오늘은 산을 타야하기 때문에 시내에서 산까지 쭉쭉 올라가는데, 오르막 내내 카페도 식료품 가게도 아침부터 문을 열어놓고 사람들도 끝없이 걸어내려오고 있어서 그 풍경에 일단 취했다. 새벽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리웠어ㅠㅠ

그래 이거야. 이 깜깜한 아침부터 급하게 걷는 인파, 차 막히는 거 너무 좋아.
조선소 크레인이 줄지어 있어서 깜깜할 때 봐야 더 아름다운 비고 강변.

가는 길에 엊그제 알베르게에서 마주쳤던 다니엘 할아버지를 만나서 동행하게 됐는데, 강에 떠 있는 게 굴 양식장이고, 집집마다 있는 네모난 박스가 곡식 저장고라는 것도 알려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아는 게 많아서 재밌었다.

근데 같이 가느라 시내에서 커피 한잔을 못 마시고 산에 진입하게 돼서 커피가 되게 고팠는데(여기 오니까 오전에 커피 한잔 못 마시면 뭔가 허전하다) 중간에 올가씨를 만나서 커피 자판기를 찾게 되고, 스페인은 자판기 커피도 맛있다는 걸 알게 됐다ㅋㅋㅋ

커피 자판기 있다고 가르쳐주고 같이 동행해준 올가씨. 인상도 너무 좋고 완전 친절함. 비고에서 사는 얘기, 별장 얘기 다 재밌었다.
자판기 카페 발견! 다니엘 할아버지도 한 방 찍어드려야지. 여기서 커피도 마시고 물도 사고, 독일에서 온 얼빈씨도 만나서 또 동행이 늘었다. 여기서 엊그제 만났던 독일서 온 여사님(아직도 이름이 정확하지 않아ㅠ)을 또 마주쳐서 그룹을 지어서 걷다가 다니엘 할아버지가 어제 만났던 포르투게즈 아냐샤(혼자 다니는 20대 처음 만남!)까지 합류. 사람들 계속 만나고 사귀게 된다는 게 이런 뜻인가 봄.
이게 곡식 저장고.
레돈델라 가는 길에 있는 란데 다리는 꼭 찍어줘야지.
까미노 상징 조가비 석상.

레돈델라는 포르투갈 해안길이랑 센트럴길이 만나는 곳이라 여기서부터는 순례자들이 많아진다.

포르투갈 출발하는 날부터 마주쳐서 인사했던 다나를 다시 또 마주쳐서 얘기를 좀 할 수 있었다. 인상 좋은 체코 친구인데 첫째날부터 셋째날까지 마주쳤는데 막상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어쩐지 인상 좋다 했더니 역시 자선단체에서 일하고 있다고… 발을 다쳐서 중간에 병원 갔다 하루 쉬었다는데 그 덕분에 센트럴길로 갔는데도 나랑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내일도 보기로 했는데 떠나기 전에 사진 한 방 같이 찍었음 좋겠다.

오늘 온 알베르게 정원도 좋고 와이너리도 있는 곳이라 와인 한 병 사서 마시면서 이 글을 마무리 하고 있다. 새끼발가락 문제를 해결했으니 또 어딘가 다른 데가 아프기 시작할 것 같긴 하지만 일단 오늘의 행복을 즐기련다.


와인 혼자 마시기 힘들어서 이탈리아 사람들이랑 나눠 먹고 저 치즈 얻어 먹고, 독일 애들이랑 나눠 먹고 치즈 얻어 먹고 금방 다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