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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로얄의 평범한 여행

미국, 헤쳐갈 게 있어서 재미있다.

로얄곰돌이 2013. 3. 10. 22:10

 

무식하면 용감하다. 그렇게 눈이 내리고 길이 안 좋고 차들이 빨리 달리는 줄은 몰랐지. 거기다 위험한 지역까지... 아무튼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차를 빌렸고, 장시간 운전을 해본 적이 없으니 멋도 모르고 악셀을 밟아댔다.  

 

 

그래서 도시간 이동거리만 총 660마일. 환산하면1062km.ㅠㅠ  

 

 

너무 빨리 달렸더니 이 차가

 

 

도장이 다 벗겨져서 흰색이 됐다....

 

가 아니고

 

사고가 나는 바람에 차를 바꿔야 했음.ㅠㅠ(마지막 행선지에서 찍은 사진인데 눈길 흙길 헤치고 오다보니 반짝거리던 새 차가 이렇게 더러워졌다.)

 

 

아래 보이는 얼음은 아마 디트로이트와 맞붙은 세인트클레인트호인 것 같은데, 호수가 얼어붙을 정도로 어딜 가나 추웠다. 그리고 또 언제나 구름이 껴 있었다. 마지막 날 돌아오는 길에 겨우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하늘인데, 참 쾌청하다.

 

 

돌아오는 비행기. 보잉747은 꼭 머리가 고니처럼 생긴게 못났다고 싫어했는데 타보면 넓고 천장도 높아서 그나마 장거리 비행을 해도 숨이 트인다.

 

 

미국도 서부만 가봐서 북극 대륙 위를 통과해 본 건 처음.  

 

 

떠나기 전부터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정이었고 실제로도 무지무지 힘들었다. 몸도 힘들고 긴장도 되고 거기다 도와주는 사람 없이 영어를 쓰면서 이런저런 일처리를 해야 했으니까.

 

아무튼 무사히 한국 땅을 다시 밟았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재회할 수 있었다. 보고 싶었던 친구들도. 열흘이었지만 재미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공부도 많이 했다. 영어도 조금은 더 편해졌고, 운전은 말할 나위가 없겠다. 외롭다고 울지도 않고 꿋꿋하게 다녀왔다. 술을 덜 마시고 수영을 자주 했더니 몸도 건강해진 것 같다.ㅎㅎ

 

그러고 보니 30년 가량 살면서 내 인생길은 언제나 참 좁다랗고 편할 날이 없었다고 느꼈는데 지금 보니 오히려 헤쳐나갈 게 있어서 재미있는 인생이기도 한 것 같다. 온실 속 화초처럼 그렇게 꽃같이 피어있기만 했으면 날 믿고 이런 기회를 주는 사람도 없었을테니까.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준 사람들께 감사하고, 눈 내리는 산길로 인도해서 익스트림 드라이빙을 즐기게 해 준 내비뇬에게도 고맙다. 사고가 났어도 티끌 하나 다치지 않게 해준 하늘에도 감사!

 

 

 

고속도로 중간에 있는 REST AREA. 

길은 양쪽 지평선까지 뻗어 있었고, 차들은 굉음을 울렸고, 나는 혼자 서서 바람을 맞았다.

 

-또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다

 

P.S 미국서 사고났을 때 대처법.

로얄이는 무식해서 용감한 덕분에 면허를 따고 일주일도 안 돼서 미국에서 렌트를 했답니다. 그래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고를 쳤어요. 라기 보다는 자동 기어 변속에 문제가 있었고 다행히 속도를 거의 떨어뜨려 놓은 상태에다 진로에 눈이 쌓여 있었던 덕분에 다치지 않을 수 있었지요. 그렇지만 백미러랑 유리창은 참 예쁘게 뽀개놨어요.(이번에 느낀거지만 차를 둘러싼 철판들이 내 몸을 지켜줄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겠다. 참 약하다.) 

 

물론 제 몸 다치는 건 제일 싫어하는 로얄이라 보험은 'Full coverage'로 들었어요. 렌트하시는 분들이 돈 아낀다고 일부만 드는 경우가 많은데 웬만하면 대인, 대물, 상대방, 본인 손해 등등 다 드세요. 또 멀리 이동할거라면 기름도 미리 사두는 게 쌉니다.

 

이런저런 대비를 하고 안전 운행을 하더라도 사고는 날 수 있다는 걸 명심하시고, 사고가 나면 바로 911에 신고를 하세요. 경찰이 Report number를 발급해줘야 보험처리도 되고 차 견인도 할 수 있으니까요. 

 

경찰이 와서 상태를 확인하고 노란색 종이 쪼가리를 주는데, 맨 밑에 써 있는 'Incident/Report #'가 중요합니다. 번호를 발급해주면 받아서 바로 보험사에 전화를 겁니다.

 

보험사 전화번호를 모른다면 렌트카 회사에서 주는 계약서랑 이런저런 서류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데, 거기 emergency call이 나와 있습니다. 전화를 하면 기계음으로 왜 전화했는지 번호를 누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데(이건 보험사마다 다 다를수도 있지만) 'car' 또는 'behicle'이라는 단어가 들리면 그 번호를 꾹 누릅니다. 그러면 'fuel'이나 'mechanical' 어쩌고 하는 질문이 또 나오는데 'mechanical' 어쩌고 하는 번호를 누릅니다.  

 

기계음도 못 알아 듣겠다면 그냥 대충 누르고 "I got an accident"라고 얘기하면 되겠죠? 상담원이 받으면 이것저것 불러달라고 하는 게 많은데 영어가 잘 안 된다면 한국인 translator를 불러달라고 요청하시면 되요.

 

보험사에 차종, 사고난 위치, 경위를 설명합니다. 특히 사고난 위치를 정확하게 가르쳐줘야 하는데 경찰한테 주소를 물어봐도 되고 길 표지판이 있으면 스펠링을 그대로 불러주세요. 옆에 상점이 있으면 그 상점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주면 됩니다. 

 

그 다음 견인을 보험사가 할지, 경찰이 할지 결정하고 나면 새 차가 필요하냐고 물어봅니다. 도저히 더 운전을 못 하겠으면 "No", 할 수 있으면 "Yes"라고 말해요. 로얄이는 아직 먼 길을 가야해서 차를 다시 받았는데 싣고 오는데 2시간 정도 걸렸어요. 다행히 주변에 식당이 있어서 늦은 점심도 먹고 몸도 녹일 수 있었지요.

 

기다리다 보면 거대한 레카차가 차를 싣고 옵니다. 운전사한테 다가가면 서류를 내주는데, 칸마다 꼼꼼하게 기록하면 됩니다. 경위는 대충 써도 되지만 본인 연락처랑 Report number는 꼭 써야 됩니다.

 

그럼 모두 안전 운전 하시고, 미국서는 좀 늦게 가도 한국처럼 빵빵거리거나 라이트 깜빡이면서 따라오거나 위협적으로 추월하는 경우는 없더라고요. 자신이 없으면 천천히 달리는 게 최고에요. 또 겨울에는 웬만하면 운전하지 말고 비행기로 이동하시고, 혹시 렌트를 하게 되면 꼭 4륜구동을 빌리고 제설이 잘 되는 고속도로를 이용하세요.

 

(미국, 2013.2.24~201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