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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안 세상

무기력

로얄곰돌이 2022. 9. 16. 16:34

시험 끝난지 이제 며칠이나 됐지? 어느새 열흘도 지났네.

새벽에 일어나서 씻고 아침 간단하게 먹고 도시락 싸서 도서관 가서 착석- 공부 - 점심 - 산책 - 공부 - 저녁 - 산책 - 공부 이런 스케줄을 몇 달간 했더니 몸이 적응해서 그런가 시험 후에 오히려 무기력증이 훅 몰려왔다. 시험 전엔 잠도 쿨쿨 잘 자다가 오히려 요즘엔 잠도 잘 안 오고…

이제는 답안지를 어떻게 썼는지도 가물가물 해져서 복기하면서 괴로워하는 빈도도 확 줄었고 시험은 먼 나라 얘기가 되어가고 있다. Que sera sera 라는 마음 가짐인데 해방감은 커녕 답답하고 힘도 안 나고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음ㅠ 목표가 없어져서 그런가 하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원래 목표나 계획을 갖고 사는 스타일이 아니었잖아?라는 결론만 나온다.

전 직장에서 할 일 없으면 알바나 하라고 해서 다시 출근 중인데 일도 재미 드럽게 없다. 공부할 때만 해도 떨어지면 그냥 하던 일 하면 되지 뭐. 라는 생각도 잠시 잠깐 하고 그랬었는데 다시 해보니까 역시 한번 맘 접은 일은 쉬다 한다고 좋아지지 않는구나. 10년 넘게 재밌게 했던 일인데 이렇게까지 흥미가 떨어질 일이냐;;;

이 무기력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뭐라도 해보자고 스페인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여행 일정을 짜고 있는데 이것도 하다보니 넘 귀찮음;; 일 할 때는 숙소 고르고 여행 정보 찾아볼 생각에 막 신이 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냥 저냥 별 재미도 없고… 돈 쓰는 것도 아깝고, 전에는 호텔 더 좋은 데 고르려고 찾아봤는데 이제는 가성비 숙소 찾느라 시간 허비하고 있고, 혼자 가서 좋은 거 봐 봐야 외롭기나 하지 싶고 그렇다.

그나마 좀 재미들렸다 싶은 건 듀오링고로 스페인어 연습하는 거 하나? 이것도 브론즈 단계에서는 넘사벽 1등 되니까 또 쪼금 시들… 재밌어서 유료로 바꿀까 했었는데 고민 중이다.

운동도 약간 맥이 풀린 것 같음. 지난주까지는 명절 연휴인데도 나가서 뛰고 그랬는데 일요일에 금강까지 가서 세종-백제보 왕복하고 나니까 몸도 쑤시고 다 귀찮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이번주는 한번도 안 뛰었다.(자전거도 겨우 110k 평지 타면서 중간에 한번 드러누움;; 그동안 달리기 한 체력은 어디 갔는지?) 내일 10k 마라톤 대회 있어서 가는데 또 설렁설렁 뛰다 올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최고로 위기 의식이 들었던 건, 어제 집에 가면서 와인 따서 이것 저것 안주해서 마셔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안 따고 냉장고에서 눈에 띈 무알콜 맥주나 하나 까서 마시고 만 일이다. 시험 끝나면 술마시려고 벼르고 별렀는데 술 마시는 게 귀찮아지다니 이거 정말 문제가 있다.

불꽃같은 에너지는 아니어도 뭘 하고 싶다든가 뭐가 되고 싶다든가 적어도 뭔가 먹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이 좀 생겼으면 좋겠다. 시험 직전에 쓴 글들을 읽어보니 참 헛웃음이 나온다. 보름 전만 해도 완전 열정맨이었어. 모든 걸 다 의미부여하고… 그 때가 좋았던가보다.

이런 잡생각도 좀 안 하게 육체노동 알바를 알아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꾸역꾸역 페달 굴려서 간 백제보. 귀찮아서 사진도 안 찍으려다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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