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매트릭스(Matrix), 워쇼스키형제(1999) 본문
근대 철학의 문을 연 데카르트가 그랬듯이 이 영화는 문제설정부터 시작한다.
I was looking for an answer. It's the question that drives us, Neo. It's the question that brought you here. You know the question, just as I did.(나는 답을 찾고 있었어. 우리를 이끌어가는 건 바로 질문이야, 네오. 질문이 바로 너를 여기로 데려온 거야. 너는 그 질문을 알고 있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때까지 의심했던 소크라테스처럼, 그리고 그 이후의 철학자들처럼 영화는 세상에 대해 회의하게 만든다. 인간이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시공간이 사실은 기계들이 인간을 배터리로 사용하기 위해 프로그래밍 해서 뇌에 주입하는 꿈이고, 사람은 편안하고 안락한 '마음의 감옥(Prison for your mind)'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매트릭스를 다시 찾아 본 이유는 요즘 내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대체 삶의 진리가 뭐지? 진리라는 게 있긴 한건가? 사람이 안락한 생활이 주는 안정감에 마취돼 진실을 보지 못하는, 또는 외면하는 이유는 뭘까? 나는 '진실의 사막(The desert of the real)'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조금 더 괴롭게 살고 있다는 위안도 얻고 싶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오라클(예언자)이 내놓은 답은 참 맥빠진다.
I wanna tell you a little secret, being the one is just like being in love. No one needs to tell you you are in love, you just know it, through and through.(비밀을 하나 알려줄게, 바로 '그'가 된다는 건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아. 누구도 네가 사랑에 빠졌다는 걸 네가 말해줄 수는 없어. 넌 그저 그걸 알게 돼. 완전하게.)
결국 세상의 진리는 사랑(그것도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작용인)이라는 건가? 명쾌한 이성이 내놓은 해답이 아니고 지극히 감정적인 답변이라니. 헐리우드 스타일상 어쩔 수 없는건가 싶지만...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더 헷갈린다. 이유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내 스스로가 어쩌면 착각속에 빠져 있는 건 아닌가"라는 의문이 불쑥불쑥 든다는 것. 나는 진실의 사막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마음의 감옥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매트릭스가 나온 지 10년 후인 2009년에 개봉한 <써로게이트>를 떠올려 보면 의구심은 더 커진다. 이 영화에서 인류는 늙어가는 육체를 숨기고 가상 현실 속에서 자신을 대신해 줄 써로게이트(대행자)를 통해 삶을 살아간다. 사이퍼(진실의 사막에서 삶이 고통스러워 모피어스를 스미스 요원에게 팔아넘기고 다시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같은 의사결정이 인간이라는 종족이 가지고 있는 진리는 아닐까?
(으아아아!!! 실컷 다 써놨는데 싹 날아가서 다시 썼다. 어제 새벽까지 술 마시고 3시간 밖에 못 잔 탓에 어질어질한데 영화 때문에 한번, 포스트가 지워져서 또 한번 머리가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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