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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로얄의 평범한 여행

경주

로얄곰돌이 2017. 11. 6. 00:54

작년 이맘때 즈음 경주에 갔었는데, 불국사에서 석굴암 올라가는 길 단풍이 정말 멋져서 그걸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또 경주로 향했다.

석굴암 오르는 길은 중간까지 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데, 위를 보면 형형색색 나뭇잎들이 춤을 추고 그 사이사이로 햇살이 비춰들어 환상적인 분위기다. 또 낙엽 덕에 걷는 길도 울긋불긋, 갖가지 모양과 색깔 나뭇잎들이 겹겹이 쌓여서 돌길을 걷는데도 묘하게 푹신푹신한 느낌이 든다.

올해는 단풍의 절정에 방문을 한 터라 석굴암 가는 길은 아직 단풍이 덜 들었지만 경주 시내 전체가 붉게 물들어서 또다른 흥취를 줬다.

이번에는 2박3일 있었는데,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지 않고 그냥 슬슬 거닐면서 도시 구경을 했다. 가는 곳마다 경주는 조경을 정말 신경 쓰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시내에 낮은 집들과 어우러진 왕릉들이랑 그 주변의 널찍한 잔디밭, 또 그 바깥에 늘어선 줄기가 두꺼운 나무들이 어우러져서 고상하고 고풍스러운 멋을 풍긴다. 특히 담장이 쳐지지 않은 월성리 고분군 사이를 비 오는 저녁, 보름달이 뜬 저녁, 해가 쨍쨍한 낮에 걸어봤는데 전부 느낌이 달랐다.

보문단지도 경주월드 쪽에 다소 조잡한 조명만 빼면(그래도 대관람차 정도만 조명을 켜서 과하지 않은 편이다) 운치가 있어서 산책하는 게 정말 즐거웠다. 보문 단지 명물인 벚꽃 나무가 단풍이 그렇게 예쁜 편은 아니라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호텔에서 내려다보니 빨간 점이 수놓인 것 같아 보이는 게 참 예뻤다. 호수는 잔잔하고, 해가 기울면서 호수도 같이 석양에 물들어가는 모습도 넋을 잃고 볼 정도로 멋있었다.

경주하면 떠오르는 맛집들은 줄이 길다고 해서 불국사 앞에 조용한 식당, 모자반과 메밀묵이 들어간 해장국 같은 것들을 먹었는데 웬걸, 다 내 입맛에 맞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경주 찬가를 부르고 있네;;

하나 아쉬운 건 관광지를 연결해주는 버스가 너무 뜸하게 다닌다는 것. 제일 난감했던 건 석굴암에서 내려오는 셔틀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밖에 안 다니는 건데, 시간을 잘못 맞추면 추운데 한 시간을 떨어야 한다. (로얄이는 땀을 흘려서 넘 추운 탓에 대절 버스로 온 분들한테 부탁해서 얻어 타고 내려왔다)

또 관광객이 제일 많은 첨성대 주변에서 신경주역 가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씩밖에 안 다닌다는 것도 완전 낭패였다. 다행히 잡아 탄 택시 기사님이 입담도 좋고 여러 정보를 많이 줘서 여행 마무리가 참 좋았다.

택시에서 들은 얘기를 정리하자면, 경주 사람들은 여전히 박근혜 편이라고(;;) 그리고 전국에서 면적이 두번째로 큰 시다. 큰데 인구는 8만밖에 안 된다. 인구가 적은데도 불구하고 요즘 분양하는 브랜드 아파트는 평당 1000만원을 호가한단다. 서울 등지 외지인들이 별장처럼 사놓는 경우도 많다고...

시내에 대형 마트나 백화점이 없다는 것도 정말 특이한데, 대구, 포항, 울산이 다 30분 내에 있고 부산도 한시간이면 가니까 굳이 필요가 없단다.

또 지붕에 기와를 얹어야 하는 지역을 지정해서 시에서 보조금을 주고 기와 지붕을 만들도록 한단다. 아파트나 학교도 예외는 없다.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이유가 지자체 재정이 빵빵해서인데 방폐장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고(한번 반입하는데 800만원씩 받는다고!) 현대차 부품협력사가 밀집해 있어서라고.(그래도 굴뚝 있는 공장은 하나도 없음)

또 재밌는 건 경주 사람들은 남녀불문하고 고집이 세다고 한다. 로얄이가 생각하기에 보통은 고집이 좋은 건 아닌데 경주 사람은 고집이 세서 다행이다. 고집스럽게 고도의 문화유물을 관리하고 도시 전체를 고도답게 꾸미고 있으니까. 심지어는 신경주역 조경도 여느 역사와는 완전히 차이가 난다. 정원이 시원하게 펼쳐지고(역시 나무를 참 잘 심었다) 멀리로는 산이 둘러쳐져 있다. 역에서 나오면 버스정류장도 정원을 가리지 않고 살짝 비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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